이미 벌써 오래전 얘기지만, 내게 신경쓰이던 한 사람이 있었다.
좋아했다고 말하기엔 내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호기심이라기엔 내 마음이 너무 물컹거렸던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을 담배로 기억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는데,
그 사람은 팔리아멘트를 피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생각하건데, 만약 그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그것이 담배때문이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담배를 피웠고,
담배를 피우는 손가락이 내가 좋아하는 각도였고,
담뱃재를 털때 눈썹이 스윽 올라가는게 너무 멋있었다.
그 사람과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고, 알 기회도 없었고, 자꾸 서로의 머릿속에 왔다갔다하는게 거슬릴뿐
더이상 누구도 다가가려는 노력도 하지않고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방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보게됐고, 그 사람은 어김없이 내 눈앞과 머릿속을 왔다갔다거렸다.
신경이 쓰였다.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신경이 쓰였다.
그 사람과 내가 서로 방관하던 감정에 대해 터트린건 그날 마지막 하루였다.
그날..
그날도 지금처럼 코스모스가 피고, 전어가 나오고 찬바람이 살랑거려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가을이었다.
우리는 온전히 하루를 같이 있게됐는데,
우선 국밥을 먹고
조금 걷기로 했다.
오분정도 걷다가 공원이라하기엔 협소한 작은 벤치에 앉았는데
거기서도 그 사람은 담배를 폈다.
내 옆에 잘 앉아있다가도 담배에 불을 붙일때면 멀찌감치 떨어져서 서성이며 담배를 폈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너무 살랑거려서 담배연기가 내쪽으로 불어왔고, 난 이상하게도 그 담배냄새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한시간을 넘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그 사람에게 왜 사냐는 질문을 했다.
죽지못해 산다고 대답했는데, 난 그게 그냥 성의없는, 그냥하는말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갑자기 녹차라떼가 먹고싶어졌고, 우리는 다시 걸었는데
그사람이 발걸음을 멈춘건 코스모스 앞에서였다.
"어? 코스모스다!"
이상하게도 난 그말이 너무나 재밌었다.
고작 코스모스앞에서 발길을 멈추다니.
난 내가 좋아하는 까페에 가려했지만,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있다고해서 그곳으로 가기로했다.
그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곳은 살랑거리는 바람이 그대로 불어오는 창문이 없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때까지 누구 하나 화장실에도 가지않고 계속 무언가 쫑알거렸다.
그러다 내 마음이 예전처럼 다시 흐물흐물해졌다는걸 느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 흔들리는 눈빛을 읽은 것 같았다.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거기에 앉아있던 시간동안 그사람은 담배갑을 모두 비워냈다.
재털이는 수북해졌고, 그 사람의 숨에서 담배냄새가 풍겨져나왔다.
"우리 이제 뭐할까."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우리라는 말도, 자연스레 계속 같이있어야만 한다는 그 말투도.
결국 별로 할게없어서 다음날이 출근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술 한잔을 하기로 했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실내포차였는데, 가는 도중 그 사람은 담배를 한갑더샀다.
거기서 우리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눴고, 난 물렁거리는 내 마음을 들키지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내게 다짐하듯 그 사람에게 말했다.
"나 너 좋아하는거 아니야. 난 원래 유혹에 약한 사람이고, 이 시기에 그냥 널 만나게 된 것 뿐이지. 너이기 때문은 아니야."
그 말끝에 그 사람은 한마디 무심하게 툭 던졌는데, 난 그 말이 너무 슬펐다.
"애쓰지마."
그 말에 겨우 지켜내고 있던 내 감정의 경계선이 허물어졌다.
그러자 그 사람도 내게 단단했던 벽을 조금 내비춰보였다.
"나는 누군가 너무너무 좋아도 지금은 좋다고 말할 수 없어. 난 그래야만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사람의 목소리가 슬펐던 것도 같고, 담배연기가 유난히 매워서였던 것도 같다.
그렇게 하루의 데이트를 끝마치고 그 사람이 날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우겼다.
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헤어지고 싶지않은 마음에 그 사람의 고집을 굳이 꺾지는 않았다.
걷는내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발걸음은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걸음을 늦추지는 않았다.
걸음을 멈추면 우리가 해야할 많은 일들도 멈춰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집앞에 다다랐고
한번만 안아보자는 말에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품 안은 담배냄새로 가득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담배연기처럼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이별하게 됐다.
집에 오자마자 그 사람이 피는 담배를 검색했다.
포털사이트에는 그 담배가 단종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써있었다.
하지만 그 밑에는 '헛소문'이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 담배는 여전히 편의점 가장 꺼내기 쉬운 자리에 수북히 쌓여있고, 없어지지 않을 모양이다.
식탁위에 있는 오빠의 담배를 보니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담배피는 남자를 좋아한다.
확언하건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것은 그 사람이여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담배를 폈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혼자 조용히 이렇게 말하겠지.
'애쓴다.'
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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