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신主神이 전 세계를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통치함에 있어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최고로 높은 하늘에 앉아서 지상에 있는 자는 모두 소신小神으로 하여금 쫓게 한다. 또 부여족이 논하여 말하기를 종교는 하늘에 절하는 것이니라 했다."
이런 글이 처음 나오는 것은 박은식이 1911년에 지은 [단조사고] 위에 옮긴 것은 대종교 2대 교주 김교헌이 1923년에 지은 [신단실기]. 둘 다 출처가 동일하니 그것은 바로...........
[만주지지]. 일제가 만주는 물론 시베리아의 지리, 신화와 전설 등 온갖 정보를 모아 놓은 책. 이게 만들어진 때는 1889년, 지은이는 "대일본제국육군참모본부" -_-; 물론 저 내용은 동시베리아에 있는 야쿠트족의 전설을 적은 건데 단군으로 바꾼 거임.
어디서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 있는 건 오타인데, 박은식의 단조사고는 만주지지의 내용을 옮기면서 한자를 오타를 냈음. 근데 신단실기에는 이 오타를 그대로 넣었음.
그리고.........
규원사화는 주신 다음에 "환인"만 넣고 그 오타도 똑같이 베꼈음 -_-;
내용은 둘째 치고 한자가 오타 포함 똑같은데 어쩔?
(2) 규원사화 단군기에는 "백두산"이 처음 등장하는 기록으로 "광종 10년 압록강 바깥 여진을 백두산 밖으로 몰아냈다"고 함.
근데 다른 기록에는 그 기록이 모조리 성종 10년임. 당시 고려는 계속 북진 + 여진족을 쫓아 내고 있는 중이라서 합당한 기록임. 광종? 평양 이북 개발 막 시작함.
이게 오타가 난 기록은 딱 하나, 1823년에 쓴 [해동역사] 속편 지리고.
규원사화가 해동역사를 베끼다 오타까지 베꼈다고밖에 볼 수 없음.
(3) 규원사화 [만설]에는청나라에 대해 중국 점령 후 막북(외몽고) 병탄했다고 함. 헌대 청이 외몽고를 통합한 건 1690년.
... 규원사화는 1675년에 북애자가 썼다고 함.
(4) 규원사화 [만설]에는 경주 첨성대에 대해 "천 수백년이 지났다"고 함.
...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632~647)에 세워진 것임. 1675년에 쓰여진 거면 "천수백년"이 나올 수 없음.
(5) 규원사화 [서문]에는 "조상의 옛 땅이 적에게 넘어간 지 이미 천년이다"고 함.
근데 발해의 멸망은 926년. 규원사화를 쓴 게 1675년이면 천 년도 안 됐음. 규원사화가 지어진 때를 1920~30년으로 잡으면 정확히 천 년 전임. 위에 첨성대 건이야 그보다 수백년도 더 전에 만들었다 쳐도 발해 건국을 698년 쯤으로 잡는데 건국되기도 전에 멸망했다는 거임?
(6) 별자리 어쩌고 하는데, 규원사화의 "단군조선"은 환단고기의 단군조선보다 절반이나 짦음. 환단고기에서는 80년에서 100년 넘게 산 단군도 규원사화에서는 50도 못 채움.
환단고기의 별자리 어쩌고로 따지면 규원사화는 위서임 -_-;
(7) 환단고기를 세상에 퍼뜨린... 아니 지은 이유립은 규원사화가 위서라고 함. 그 정도로 두 책의 차이는 한 쪽을 위서로 만드는 수준임. 일단 단군조선의 역사가 두 배나 차이나면서 각 단군이 한 건 너무 비슷함. 단군의 수는 똑같은데 환단고기에서 25대 솔나가 시작될 때 규원사화의 단군조선은 멸망.
(8) 규원사화를 세상에 내 놓은 윤덕영은 순종비의 숙부로 경술국치 때 순종비가 옥새를 내놓지 않자 치마 속에 숨긴 걸 벗겨서 뺏음. 일제강점 후 자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임
(9) 단군릉 운운하는데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에서 평양은 대륙에 있음. 지금 평양에 단군릉이 있다는 것 자체가 환단고기와 규원사화가 틀렸다는 걸 말 해 줌. 애초에 북한은 고조선의 중심이 요동에 있다고 계속 주장하다가 단군릉 발견으로 팀킬한 거임
....
왜 친일파나 짱꺠들을 그렇게 욕 하면서 언제나 친일파가 쓴 책에 犬일본제국이 쓴 걸 베껴서 우리 민족의 숨겨진 역사 운운 하는 거임? -_-;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