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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data_392697
    작성자 : 프로세르핀
    추천 : 3
    조회수 : 366
    IP : 211.178.***.164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07/05/05 09:36:48
    http://todayhumor.com/?humordata_392697 모바일
    [펌]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얼마전 가족 모임때 언니가 짐짓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돈은 좀 모아놨지?’



    혼기를 꽉 채우다 못해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왕창대바겐세일을 들어가도 모자랄 판국의 노처녀에게 돈을 모아놓았느냐는 질문은 딱 한 가지를 뜻한다. 어쩌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에 골인할 경우, 혼수 문제로 결혼을 하네 못하네 하는 상황만큼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20대 후반만 하더라도 혼수 문제가 불거지면 ‘그럼 없던 일로 하던가요!’ 라고 외칠 수 있다. 하지만 달걀 한판에 두 알이 더해지면 ‘어떻게든 해 볼께요’ 를 넘어서 아예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니로 말 할 것 같으면 평소 [혼수를 바리바리 싸 들고 가야 할 결혼이라면 아예 혼자 사는 게 낫지 그 무슨 병신삼용이 같은 짓거리냐] 를 외치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팔보채를 우겨넣다가 말고 띵한 눈빛으로 언니를 쳐다봤다. 그때 언니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혼자 살려면 기어 들어갔다가 기어 나와도 작은 아파트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거였다. 언니는 이제 나에게 있어 남은 것은 결혼할 때의 혼수가 아니라 평생 혼자 살 궁리가 아니겠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좀 있으면 싱글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명절이다. 주위에 남자가 그렇게 없어? 로 일단 스타트를 끊는 별로 안. 친. 한. 친척들은 ‘내가 하나 소개시켜줘?’라며 지키지도 못할 공수표 남발로 끝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마치 내가 결혼을 안한 것이 그들의 편두통에 8할은 기여하고, 불면증의 67.8%가 다 내가 결혼을 못한 탓이라는 듯이 말이다. 아니 언제부터 그렇게 나를 챙기셨나요? 라고 눈을 흘기고 싶지만 결혼 못한 죄인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일 년 내내 잊고 살다가 명절만 되면 갑자기 이 화목하고도 다정스런 집안에 유일한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게 바로 노처녀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 문제로 부모 속 꽤나 썩이던 사촌 기지배는 어느새 지상 최대의 효녀가 되어있다. 왜냐면 결혼씩이나 한 것도 모자라서 아기마저 덜컥 낳았으니까. 학교 다닐 때는 늘 그녀가 내 반만큼이나 따라갔으면 좋겠다던 친척어른도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그래 안갈꺼는 아니지?’



    그 말 한마디에 아빠는 담배를 태우러 나가고 엄마는 명절에 해준 프로 또 하고 또 한다며 애먼 방송국 욕만 한바가지를 해대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잠이 안 온다. 어떤 날에는 내가 대체 이 나이 먹도록 뭘 했지 하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 볼 때도 있다. 어렸을 때 꿈을 이루기를 했나 그렇다고 어금니 콱 깨물고 한 재산 마련하길 했나. 그도 저도 아니면 근사한 남자를 만나서 이제 식만 올리면 되기를 하나. 뭐 하나 ‘나 이러고 사느라 바빴소이다’ 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 그들이 내 심기를 건드리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 문제에 대해 하다못해 버럭 화라도 낼 주제가 못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농담처럼 들었던 ‘억울하면 시집가던가’ 라는 말이 진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순간이 와 버린 것이다.



    한때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자기애가 지나치다 못해 병적 수준에까지 이르른 인간들의 한심한 놀이터라며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커피숍이건 밥집이건 가리지 않고 코딱지만한 카메라를 꺼내서 45도 얼짱 각도를 하며 끊임없이 브이질을 해대는 여자애들을 볼 때면 골치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서른한 살이 된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 역시도 그러고 있었다. 다만 셀카 보다는 나 이것도 먹었어요 나 여기도 갔거든요 하는 사진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었다. 그렇게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었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지 않고도 여자에게는 이렇게나 다양하고도 즐거운 거기다 럭셔리하기까지 한 삶이 존재한다고. 결혼한 여자들이 기저귀 값에 분유 값을 걱정할 시간에 우리는 네일 케어와 피부 관리를 받고 온갖 맛집이란 맛집은 다 쑤시고 다닌다고. 거기에 명품 가방 하나쯤은 내 돈으로 척 살 형편이 된다고. 나 이것도 먹었어요 나 여기도 갔거든요 에서 이제 나 이런 것도 살 수 있답니다 것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이죠도 곧 추가될 조짐이다. 물론 직장생활 아무리 뼈 빠지게 해봐야 여자들은 진급도, 그렇다고 연봉도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 명품을 사고 나면 한동안은 ‘내가 미쳤나봐’를 외치는 것도 같이 말이다.



    언젠가 조개구이에 소주를 시켜놓고 ‘이 나이에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찐하게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불쌍해’ 라고 하소연하던 친구년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그게 어디 너뿐이겠어? 나도 있잖아 그리고 그 누구냐 연신네사는 A도 그렇지 이태원사는 J도 그렇지 라며 줄줄이 읊어주지 않은 건 지금 생각해도 잘 한 짓인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조개대신 조개껍질을 주워 먹고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듯 남자 역시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건 아무리 팔푼이고 머저리 같은 여자라 하더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 살려면 10년쯤은 수도를 해야 하고 7년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 찾아다니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세속에 살면서 세속적인 건 딱 질색이야 하는 것만큼 우스운 게 있겠는가? 전부는 아니지만 있으면 확실히 삶은 윤택해지고 즐거워진다. 그러나 이제 20대처럼 핸드폰에 남자 이름 몇 개나 저장되어있는가를 가지고 자랑 질을 할 때에 등장하는 선배, 아는 오빠, 나한테 관심 있는 동기 따위로는 해결이 안 된다. 정말 이상한 건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신데렐라를 서른이 넘어서 동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동화가 이지랄 이니까 여권신장이 이 모양이지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현실적이고 냉혹하다는 세인의 평가 속에서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몰랐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사랑 타령을 하고 있다. 그것도 진실한 사랑 말이다. 이 무슨 돼먹잖은 바램인가 말이다.



    만약 내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못한 건 진실한 사랑을, 남자를 찾지 못해서예요’ 라고 한다면 내일부터는 머리는 산발한 채 쇠창살을 쥐어뜯으며 ‘나는 미친 게 아니라 순수한거에요’ 라고 외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나이가 되면 모든 게 다 죄가 된다. 순수한 것도 순진한 것도. 그리고 톡 까진 것도 죄가 된다. 그렇게 놀아 처먹었으면서 그래 멀쩡한 놈씨 하나를 못 낚았다냐?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콧방귀를 끼던 연애 지침서들. 남자를 완전 파헤치다 못해 회떠주겠다고 우기는 책들을 곁눈질로 슬쩍이라도 보는 날에는 한없이 우울해진다. 정말 몰라서 못하는 걸까? 잘 알게 되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서 그래서 지피지기가 되고나면 백전백승의 승전보가 울릴까? 한 가지 골 때리는 사실은 아직도 결혼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이대로 평생 혼자 잘 먹고 잘 살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야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됐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머리에 꽃을 꽂고 널을 뛰어도 그보다는 고운 시선을 받을 것이다.



    누군가가 섹스가 끝난 다음에 담배를 한 대 맛있게 피우면서 내게 말했다.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생각이 많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어. 세상은 단순하게 살아야 해’ 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멋있으려고 애쓴다 애써 하면서 흘려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그 생각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정작 행동으로 옮길만한 기력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행동파가 되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머릿속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느라 진을 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작가 한명이 회식자리에서 ‘우리 죄가 뭔지 아니?’ 라는 질문을 했다. 죄라면 우리가 죄겠냐 우릴 몰라보는 이 세상이 죄지 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린 너무 잘난 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게 죄야. 대충 눈감고 엎어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눈이나 낮아? 뱀의 머리보다 용의 꼬리가 낫다고 누가 그랬어. 우리 같은 용꼬리들은 맨날 위만 쳐다보면서 팔자타령에 세상 탓만 하고 살 거야 이럴 바엔 차라리 머리통이 젖통 같다는 소릴 들어도 좋으니까 그냥 단순하고 무식했으면 좋겠어’



    생각이 너무 많으면 머리가 아프다. 왜냐면 생각은 언제나 지 친구들인 담배와 술을 불러서 나라는 방을 잡아 신나게 놀아 제끼고 더는 놀 힘이 없을 때야 겨우 풀어주니까 말이다.


    ==============================================================================================

    '우린 너무 잘난 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게 죄야. 대충 눈감고 엎어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눈이나 낮아? 뱀의 머리보다 용의 꼬리가 낫다고 누가 그랬어. 우리 같은 용꼬리들은 맨날 위만 쳐다보면서 팔자타령에 세상 탓만 하고 살 거야 이럴 바엔 차라리 머리통이 젖통 같다는 소릴 들어도 좋으니까 그냥 단순하고 무식했으면 좋겠어’

    정말.. 공감되서 퍼왔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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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05 10:56:49  59.29.***.8  수리랑
    [2] 2007/05/05 13:31:47  220.125.***.221  쉩!
    [3] 2007/05/05 14:04:44  221.1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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