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지루하다 안카나,,,,
열기가 한껏 피어오르는 7월의 주말, 그 어느 곳 보다도 한적한 애니게에서 금발의 트윈테일, 아니 두개의 붉은 리본으로 투 사이드 업을 한 소녀가 커다란 별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굴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아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이대로 눈을 뜨면 새로운 사건 또는 흥미로운 일이라도 마법처럼 발생하길 내심 기대하며. 그러나 다시 뜬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기묘한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는 두꺼운 초록색 촉수...였다.
아 씨!! 깜짝이야! 놀랐잖아 민폐공룡!!
퍽퍽, 소녀는 구두굽으로 공룡의 허벅다리를 때렸고, 예기치 않은 공격에 놀란 둘리는 엎드려 있던 자세를 흐트리고 말았다. 그 때문에 둘리위에 앉아있던 카나 또한 자세가 무너져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 이 씨..,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퍽퍽, 소녀는 별장식이 달린 지팡이로 일어나지 못하고 넘어져 있는 둘리를 벼타작 하듯 후두려패기 시작했다. 아야..!! 아악!! 그만 둬!! 그러나 소녀의 공격은 무자비했고 그녀의 구타는 애니게에 새 글이 올라올 때 까지 이어졌다.
헉헉.. 정말이지... 할 줄 아는건 민폐밖에 없는 .. 헉헉.. 구제 불가능한 퍼랭이 공룡... 헉헉.. 아.. 몰라.. 진짜.. 짜증나....!! 털썩, 하고 그녀는 뒤로 넘어지듯 누웠다. 둘리는 끄으윽.. 끄우웁.. 하는 기어들어가는 신음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쳐진 죽어가는 오징어처럼 조금씩 꿈틀거렸다.
한바탕의 몸짓으로 더욱 후끈해진 열기가 다시 한산한 애니게의 공백에 식어갈 무렵,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은 둘리는 여전히 널부러진 채로 시선만 슬쩍 소녀에게 옮겼다. 소녀는 여전히 지쳐보였다.
저기.. 있잖아요... 카나님..??
아, 조용히 해. 나 너 때리느라 지쳤으니까... 말 걸지마. 좀 자고싶어..
..저기요....?
......쿠울.....
둘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멈춰 소녀를 주시했다. 소녀의 흉부가 조용히 간질이는 듯한 들이키는 숨소리에 맞춰 천천히 올라가고.... 귓가에 어렴풋이 맴도는 듯한 내쉬는 숨소리에 다시 천천히 내려간다... 이때 이 상승과 하강의 박자는 일정해야 한다..
둘리는 야생의 감을 살려 소녀의 바이오 리듬을 읽어냈다. 소녀는.. 완벽히 잠들었다!
하 거.. 씨*
둘리는 육두문자를 길거리 테이프 장수가 틀어주는 전통 트로트소리처럼 차지게 뱉었다.
하.. 거 씨댕 진짜.. 니미럴! 나 엄마 없다고 무시하냐...?? 내가 아무리 그래도... 니 대선배야 대선배. 그리고 쒸....,,,펄 너가 때리는 거 하나도 안아퍼 이 가시나야! 내가 길동이에게 맞은 짬이 얼만데 희동이 허벅지만한 니 팔뚝으로 맞아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그냥 귀찮아질까봐 아픈 척 하는거야 이 년아! 어? 그리고 말야.. 마법소녀?? 그 흔해빠진 설정으로 뭘 쳐 인기를 얻겠다고 나처럼 마법퍼랭공룡 정도는 되야지... 응? 그리고 니가 내 전성기 시절을 알긴 알어? 모르겠지?? 쒸.,,펄 이제 태어난지 5년 된 쒜리가..@@@.,,, 카악.,,, 퉤! 안들리지?? 안들려?? 고오뤠.. 이 참에 내가 호잇호잇으로 참교육을 해주지....이리와 개년아!!
승리에 가득찬 표정으로 둘리는 소녀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호...에에에에에에엑!!!!
지금 뭐라고 했냐.
우두두둑. 소녀를 향해 뻗었던 손가락은 어느새 하늘을 바라보며 트위스트를 추고있었다. 호에에에에에엑!!! 어.. 어떻게에에에에에에에엑!!! 우두두두둑. 둘리의 반대쪽 검지도 브레이크댄스를 추는바람에 둘리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뭐..? 개뇬..?? 내가 .. 이런 글리젠도 없는 촌구석 마스코트라고... 그런 말까지 들어야되냐..어..?? 그리고.. 선배?? 넌 지금와선 그냥.... 퇴물 민폐 공룡일 뿐이야!!
퍽퍽퍽퍽, 소녀의 무자비한 구두굽 사커킥이 둘리의 하이얀 뱃가죽에 검은 신발마크를 남겼다. 억억옥억! 둘리의 신음소리가 한산한 애게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내가 어느 곰나오는 애니의 여주인공이냐!! 언제까지 !!! (퍽) 여기는!!!(퍽) 글리젠이!! (퍽) 촌구석 마냥!! (퍽) 헉헉....
소녀의 한탄이 끝남과 동시에 플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는 장마비처럼 이어지던 가혹한 구타도 끊겼다.
끄으으응... 둘리는 소녀에게 머리가죽을 붙잡힌채 헝겊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소녀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던 중, 소녀는 새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어..? 새 글이다! 이 글은 용량이 꽤 큰데?? 뭐지???
[카나 엉덩이 149번 팡팡! 해주고싶다!]
쿠...쿠쿡..!! 둘리는 석고상처럼 굳어진 그녀의 옆에서 비질비질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행동이 자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카나는 천천히 둘리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동시에 석양의 노을과 같은 살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맞은거..,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었지..?
히....히히..히히힣!! 히히하힣!!!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한 둘리의 웃음소리와 함께 애게의 셔터는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