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앞에 취사병 일과에 관련된 글 읽다가 옛날 생각 나서 적어 봅니다.
(오유 첫글~~ ^^)
저는 85년 9월 군번입니다.
논산에서 4주 훈련 받고 부산에 내려가 후반기교육을 6주 받았습니다.
그때는 취사병 주특기 번호가 752였습니다.(요새는 그렇지 않은가봐요)
자대는 충남 지역으로 갔는데, 여기가 좀 거시기합니다.
부대 안에 눌러있지 않고 주로 밖으로 다닙니다.
우리끼리는 그냥 특공짬장이라고 했습니다. ^^
주로 충청 전라 지역을 다니는데, 제 복무기간 동안 포항도 한번 갔네요.
병사들에게 밥을 해 먹인다는, 같은 일이라도 모든 도구와 시설이 갖춰져 있는 부대에서 일을 하는 것과
야전에서 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로 밖을 다니는 부대다 보니 노동 강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차량이 들어가는 곳으로 훈련을 가면 취사트레일러와 급수트레일러가 같이 갑니다.
(트레일러 운전병은 수송대에서 최고참 운전병이 담당)
그런데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오지로 갈것 같으면 그야말로 죽음...
저희는 대대급이어서 식수인원이 대략 350명 정도 됩니다.
거기에 취사병은 저 포함 4명.
후반기교육을 받고 정식 주특기를 받은 병사는 저 혼자. 나머지는 소총수인 100 주특기(지금은 소총수 주특기 번호가 몇번인가요?) 병사 중에서 그냥 차출돼서 근무하다가 별일 없으면 그냥 취사병으로 제대...
어마어마하게 큰 가마솥 네개인가 다섯개인가를 두돈반에 싣고 차량이 갈수 있는 최대한까지 진입해서 적재함의 도구들을 풉니다.
임시 아궁이를 만들고 솥을 건 다음에 대형 무동력 버너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이 버너가 아주 웃깁니다.
밥을 하는 중에 버너 구멍이 막히면 곤란하기 때문에 손질을 무척 깔끔하게 해 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걸 보통 경험 많은 왕고참이 하는데, 그래서 경험이 많은 왕고참 취사병은 취사병보다 자동차 정비병같은 포스도 느껴집니다. 온통 기름 범벅에 끄름 범벅... ㅠㅠ
취사 트레일러를 이용할 수 있는 훈련은 그나마 편한 훈련입니다.
훈련 나갔을 때에 취사 숙영지로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물입니다.
부대 특성상 인가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숙영지를 정하다보니 물 구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운 좋게 수질 좋은 개울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잖으면 한참 뺑뺑이를 돌아야 합니다.
그마저도 안되면 할수없이 급수 트레일러를 이용해서 멀리서 공수해 옵니다.
겨울엔 꽁꽁 얼어붙은 계곡물을 깨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찬물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려면...
도시보다 산은 더 춥잖아요? 눈보라 치는 곳에서 대형 식칼로 땡땡 얼어붙은 동태를 내려치던 생각을 하니... ^^
취사병은 보통 부대 훈련 때 선발대로 먼저 출발합니다.
두돈반 적재함에 각종 도구들을 잔뜩 싣습니다.
그리고 조수석엔 급양 선임하사가 타고(저때엔 경력 15년정도 된 중사였음),
맨 바깥쪽에 저희 취사병들이 탑니다.
그런데 호루를 아무리 꼼꼼하게 친다고 해도(답답해서 일부러 걷기도 하지만),
거친 산길을 가다보면 사막의 폭풍같이 일어나는 먼지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한 두어시간 산길을 돌다가 잠시 휴식을 위해 적재함에서 내리면,
영락없이 밀가루 뒤집어 쓴 새앙쥐 꼴입니다.
한번은 본부중대장이 조수석에 타는 바람에 50 넘으신 주임상사님과 같이 적재함에 타고 산길을 가고 있는데,
"얘들아, 이렇게 먼지 먹으며 군대생활 하는게 힘들지? 그런데 이런게 바로 인생인거 같아. 이게 이렇게 힘들어 보이긴해도 이렇게 이리 들썩 저리 들썩 해가며 사는게 바로 우리 인생이야.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것도 추억이다 생각하고 잘 견뎌. 너희는 30개월이면 제대하잖아. 나는 이 일을 벌써 30년 가깝게 하고 있잖아."
꼭 주임상사님의 이 말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저는 전역할 때까지 수십번의 훈련 동안 적재함에서 단 한번도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피곤에 쩔어서 차량 출발 직후 잠에 골아 떨어지지만,
저는 항상 제일 바깥쪽에 앉아 적재함 밖을 쳐다 봅니다.
차량 밖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한 손으론 적재함 난간을 잡고, 한 손으론 턱을 괴고 물끄러미 밖을 쳐다 봅니다.
지금은 비록 원치 않는 여행(?)을 이렇게 전국 곳곳으로 다니지만,
내 죽기 전에 언제 이런 곳을 내가 원해서 다닐 수 있겠는가, 차라리 지금 재미있게 즐기자... 이런 심정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다른 동료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참 괜찮은 여행을 잘 다녔던 것 같습니다.
취사병은 보통 일반 병사와는 일과가 많이 다릅니다.
일반 병사는 그 부대의 특성에 맞는 훈련이나 교육을 받습니다.
취사병은 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제가 근무했던 부대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달랐던 것은 바로 공수훈련이었습니다.
저희 부대는 일반 사병의 경우 복무기간 동안(당시 30개월) 한번 내지 두번 공수훈련을 합니다.
저는 당시에 일병때인가? 훈련이 있었는데요.
이상하게도 당시 대대장이 공수훈련만큼은 취사병도 일반 병사와 똑같이 받게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하네요.
물론 현실적으로 똑같이 훈련을 받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1/2 ~ 1/3 정도 훈련을 일반 병사와 똑같이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공수 훈련은 저희 여단 내에 훈련교장이 자체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13공수여단의 훈련교장을 빌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취사는 그 부대 취사장을 같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그 부대 취사병들이 저보다 한참 고참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마음이 천사들이어서 심적으로 무척 편했습니다.
아무튼 저희 취사병 네명이 시간을 정해서 취사와 훈련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2주간의 기초 교육을 마치고 마지막 3주차에 점프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산 때문에 기구 강하를 하게 돼서 그게 좀 아쉽긴 했습니다.
첫번째 점프했을 때가 지금도 기억에 선 합니다.
마침 작전 선임하사님이 공수부대 출신이어서 교관을 같이 겸했었는데,
제가 점프할 차례가 되었을 때 이런 말씀을 해 주시더군요.
"너 취사병이라서 힘들었지? 다른 녀석들이 취사병이라서 놀리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지? 이번 기회에 그 놈들 콧대를 멋있게 꺾어 보는거야. 알았지? 잘할 수 있지?"
점프하러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가 공포심 때문에 점프를 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오는 애들이 간혹 있었거든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해도(지금도 그런가?) 취사병에 대한 시선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짬장이라고 놀리는 것은 보통이고 연병장 지나가다보면 돌 던지고, 아무튼 수모 아닌 수모를 많이 겪었습니다. 저 놈은 뭔가 모자라서 취사병을 하는 것이다, 또는 저 놈은 약삭빨라서 취사병을 하는 것이다(훈련 받는게 힘들어서 꾀병 부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뭐 이런 인식인 것이죠. 제가 원해서 취사병을 하는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선임하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래서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외치고는 그대로 점프를 했습니다.
잠시의 공포가 이어지고, 주 낙하산이 정상적으로 잘 펴져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부터는 세상이 이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더군요.
개미새끼만하게 보이는 지상의 물건들하며, 귓등으로 스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부러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향을 돌려 보기도 하고, 먼저 점프한 녀석들 어디로 가고 있나 구경해보기도 하고... 참 재미있었네요. ^^
한번 이렇게 좋은 경험이 생기니까 두번째 점프부터는 오히려 빨리 하고 싶을 정도... ^^
부대 안에서 일년에 몇번씩 전체 회식을 합니다.
이때 저희 부대는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저희 부대 소재지에 쇼를 하는, 지금으로 따지면 나이트클럽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무희 십여명들을 두돈반에 싣고 옵니다.
연병장에 가설 무대를 설치하고는 전 장병들을 집결 시킵니다.
무대 옆에 대기실을 만들었는데, 이 대기실과 두돈반을 절묘하게 연결시켜서 장병들이 못보게 보안을 지킵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한참 띄운 다음에 이 무희들을 무대로 올립니다.
캉캉춤 아시죠? 그리고 그때 입는 옷 아시죠?
그런 옷을 입은 무희들이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연병장은 금방 뇌관이 터진것과 같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합니다.
연예인이나 이런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온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입니다.
막걸리도 적당히 먹었겠다, 평소 시커먼 놈들끼리만 살다가 분가루 냄새나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무대에서 다리 쩍쩍 벌리며(물론 속바지는 다 입었죠) 환상적인 춤을 추니 혈기 왕성한 군바리들이 제정신들이겠습니까?
평소 고된 훈련에 힘들어하다가 가끔이라도 이렇게 풀어주니 그래도 그 맛에 군대생활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군대밥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저때에는 1식3찬이었습니다. 식판이 네부분으로 되어 있죠.
밥, 국, 김치, 그리고 제3의 반찬. 끝.
이걸 사시사철 먹습니다.
아, 일요일 아침은 라면을 먹습니다.
물론 대량급식이기 때문에 면발 탱탱은 절대 안됩니다.
그리고 특식이라고 해서 격일로 빵 하나와 우유 하나가 나옵니다. 아, 건빵이 가끔...
요새는 어떤가요?
당시엔 이게 군에서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음식의 전부라 참 먹을게 없던 시절이죠.
그런데 취사장에서 일하면 먹을거만큼은 충분히 먹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바보짓 일부러 해서 취사장에 오려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훈련을 나갔을 때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밥을 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때에는 씨레이션이 병사들에게 지급됩니다.
뜨거운 물이 담갔다가 먹는, 일종의 즉석 완전식품입니다.
맨밥이 있고 볶음밥, 짜장밥이 있는데 볶음밥이 그나마 약간 먹을만하긴 한데 그것도 한끼 먹으면 딱... 더이상은 별로 먹고싶지 않습니다. 방부제 냄새인지 뭔 냄새인지, 아무튼 이상한 화학약품 냄새가...
요즘 시판되는 군대 식품과는 하늘과 땅차이...
훈련기간 동안 씨레이션이 지급되는 경우가 생기면 취사병 입장에서는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씨레이션이 지급되는 훈련은 그만큼 고된 훈련이라는 것이고, 일반 병사들이 힘든 훈련을 하는 훈련은 당연히 취사병에게 있어도 작업 조건이 매우 열악해집니다. 그래서 씨레이션이 지급되는 훈련이 마냥 좋지많은 않습니다.
생각나는거 몇가지만 얘기해봤는데, 아마 요즘과는 사뭇 다를 겁니다.
아까 그 글에 보니까 요즘은 일 도와주시는 이모님도 계시다는데, 참 격세지감이네요. ^^
저는 군입대 전에 조리의 조자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냥 국방부장관이 가래서 간것일 뿐이었습니다.
그저 고참에게 배운대로, 매뉴얼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군생활동안 배운것은 딱히 없습니다.
칼질 하나는 기똥차게 했는데, 전역한지 30여년이 다 되다 보니까 지금은 영......
가끔 아내 도와준다고 오이나 무를 썰어줄 때가 있는데, 그때 아내가 좀 놀라긴 합니다. ^^
아, 잡채는 잘 만듭니다.
며칠 전에도 잡채 만들어서 먹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맛있다고 무척 좋아하네요.
제 아들이 3월 31일 논산으로 갑니다.
세월 참 빠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