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원님께. 저는 강경선 교수 동생이고 언론사 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문에는 개인적으로 기사를 쓸 수 없어 천의원님께 참조하시라고 보내 드립니다. 천의원님은 제 부친상때 한번 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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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보편적 가치관이나 일반 상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그의 동료 교수이자 30년 친구인 강경선 교수는 그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중의 하나일 것이다.
며칠전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전 후보에게 2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건네 줬다는 보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그 돈을 전해준 사람이 바로 내 세째 형인 강교수라는 소식에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 같으니… 정말 세상물정이나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병신들.” 입에서는 절로 탄식과 욕설만 나올 뿐이었다.
그후 곽 교육감의 발언과 태도, 그리고 형이 밝힌 검찰에서의 진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세인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들이 살아온 인생관과 철학을 회상해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들이었다.
1978년 서울법대를 거쳐 대학원을 마친 형은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형은 지도교수가 마련해준 해군사관학교 법학 교수직을 마다하고 해병대 장교로 자원 입대했다. 집에서는 왜 편하고 좋은 자리를 박차고 힘든 길을 가냐고 부모들이 야단을 쳤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해군, 해병대, 한미연합사 정보장교로서의 5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형은 서울대 부설 한국 방송통신대 법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그후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가 된 당시 지도교수를 통해 교수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서울법대 교수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형이 거절하자 1년 뒤 이번엔 비서를 직접 집에 보내 같은 제안을 했다. 하지만 방송통신대학은 서민들을 위한 평생 대학이고 우수한 교수들이 좋은 직장을 찾아 떠나면 이 학교는 언젠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총장의 제의를 정중히 사양했다.
1980년대 중반 형은 나름대로 훌륭한 인재들을 기용하기 위해 노력하던중 유펜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베니아)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대학 친구인 곽노현씨에게 방송통신대학 법학부를 키워 나가자고 제안했고 곽교육감도 이를 흔쾌히 수락해 지난해까지 두사람은 함께 방송통신대 교수로 활동했다.
형은 학교에서 적잖은 월급과 출간된 저서들을 통해 상당한 인세를 받고 있었지만 늘 가난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줄곧 형집에서 기거하던 나는 형이 늘 돈 여유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도 부천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에 날아든 편지들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보육원과 고아원 등에서 보내 온 편지를 뜯어보니 형은 몇 명의 아이들에게 학비를 대주고 있었다. 함께 사는 내게도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아 나도 모르고 있던 사실들이었다.
1980년대 중반 내가 형이 있는 방통대 사무실에 들렀다가 옆방에 있던 곽노현 교수를 처음 만나 인사를 했다. 그와의 만남에서 특별한 기억은 없다. 다만 곽교수는 친구지만 형을 존경한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잘못되면 아이들을 형에게 맡겨 키워달라고 할 정도로 형에 대한 신뢰감은 각별했다.
그후 형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선교활동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 그리고 부천에서 과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돈이 부족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날릴 판이었다. 당시 나는 결혼해 분가한 만큼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곽교수가 1억2천만원을 아무 대가없이 줘서 집을 사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의 가치로라면 아마 10억원 정도는 되었을 큰 돈이었다.
곽교수는 그후 여러 사회활동을 하게 되었다. IMF사태가 터졌을 때 TV 방송 좌담회에 출연한 곽교수는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한 것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날의 주제에서 벗어난 쌩뚱맞은 얘기에 의아해 하는 모습이었고 그 장면을 보는 나도 왜 저런 말을 할까라는 답답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지만 곽교수는 혼자서 엉뚱한 말만 계속해 나갔다. 그는 돈보다 사람의 가치와 생명을 진정으로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몇해 전 형이 LA를 들렀다가 전혀 생각지 않은 말을 내게 했다. 20여년 전 네가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학비를 대준 사람이 바로 곽교수였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라면 아마 1,500만원-2,000만원은 족히 될만한 적잖은 돈이었다. 나는 고맙게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바보같이 사는 사람이 형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다시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해 곽교수가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다는 뉴스를 보게 됐다. 형도 이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세상물정과 정치를 모르는 이 엉뚱한 사람들이 또 무슨 바보같은 짓을 하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차례에 걸쳐 형에게 자문을 해주었다. 큰 정치를 하려면 성경의 “잠언’대로 할 것이고 한국의 세태에 맞는 소인배 정치를 하려면 권모술수에 기초한 사마천의 ‘사기’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며칠 전, 내가 우려했던대로 큰 일이 터졌다. 왜 선거법상의 법적 시효가 완료된 상황에서 어리석게도 돈을 주게 되었을까. 법과 원칙으로 살아온 형은 왜 돈 심부름을 하게 되었을까. 여론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는 두 사람을 보면서 그야말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이 두 사람이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상식적 판단처럼 정치적 술수로 후보를 매수했다면 인간의 손에 의해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불사하고 자살의 상황까지 몰리게 된 박후보에게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돈을 줬다면 다소 어리석고 세련되지 못한 감은 있지만 세상에서 보기 힘든 정말 선량한 일을 했다 칭찬해야 할 것이라고.
두 사람의 개인 성향이나 삶의 방식, 철학, 종교관 등으로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곽 교육감과 형의 구명을 위한 나의 단순한 바램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황금만능주의에 젖은 대다수 사람들은 누가 이 시대에 수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흔쾌히 주겠냐고 비아냥대며 말하겠지만 그들은 자신으로 인해 한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된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 생명을 지키고 봐야 한다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신념을 위해서라면 돈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돈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몇 안되는 괴짜들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전북 이리에 사는 사람인데 교회를 지으려 한다. 교회 부지는 내 농지를 내놓을 생각인데 건축 비용이 없으니 돈을 줄 수없겠느냐”고 한 생면부지의 사람이 형에게 부탁하자 형은 고심끝에 은행에 가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수백만원을 인출해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냥 줘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대형 교회에 가서 청을 했지만 고작 받은 게 30만원이었다고 했다. 이 얘기는 형수를 통해 내가 전해들은 것이었다. 그후 내가 그 사람이 누군줄 알고 그 큰 돈을 줬냐고 묻자 형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일지 몰라서 줬다고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두 사람이 내게 보여준 것은 정치나 실리보다는 인정에 더 끌리는 바보들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정말 어리석으리 만큼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며 살아왔고 아마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거라 생각한다. 그 두 사람이 실정법을 위반했는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알 수 없고 검찰과 법원의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제까지 걸어온 인생역정을 통해 볼 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리지키기에 연연해 할 만한 그런 속물이 아니고 자신이 살기 위해 허위 증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곽 교육감이 정의와 법, 도덕에 철저한 강 교수가 떳떳치 못한 돈이었다면 그것을 전달했겠냐고 말한 것은 내가 보기에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진실이라 확신한다. 형이 어렸을 적 내게 가르쳐 준 말이 생각난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말을 빌어 “거짓말은 장난으로라도 하면 안된다. 자칫 습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LA에서 강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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