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고, 아이는 친정 엄마가 봐주고 있습니다. 늘 죄송하게 생각하고,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월 150만원씩 드리고 다달이 건강식품이나 화장품들을 선물합니다. 명절이나 여행을 가실때면 몇십만원 씩 용돈을 드리기도 하구요. 제 월급의 대부분이 친정에 들어갑니다.
학생때 알바시작한 후 부터 직장을 구하고 결혼 후까지 늘 친정 살림에 보태왔습니다.
결혼은 선을 보라는 것을 싸워 연애결혼 했습니다. 어느 추석엔 용돈을 드리지 않았더니 (그 전달에 50만원을 따로 드렸습니다) 핸드폰이며 집, 남편 직장에 전화를 해서 연락을 끊었습니다. 네가 멋대로 결혼한 것도 봐줬는데 명절에 성의 운운 한 이유가 컸습니다.
1년 좀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임신하고 그쪽에서 막달에 화해를 청해왔습니다. 출산, 직후의 이른 복직, 일련의 과정에서 약해져 있었기에 화해하고 주중에는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는 데려오고,일주일치 옷과 음식을 준비해서 일요일 밤이면 함께 딸려보내는게 1년 반 정도 반복되었습니다.
돈은 드리지만, 아이 보는게 힘들다 해서 8개월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을 보냈지만, 그래도 아이를 봐주시는 데 늘 감사했고 그래서 남편이 먼저 모시고 해외여행을 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혼자/ 친구들과는 두번 해외여행을 보내드렸지만,친정 엄마가 패키지가 아닌 해외여행을 원해왔기에 남편이 배려했습니다.
무리했지만 비싼 숙소를 잡고, 이동수단도 힘들지 않게 준비하고 좋은곳에서 좋은것을 드시고 쉬시라는 뜻에서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이지만 별도의 방을 잡아 늘 아이는 따로 저희가 보고 재우고 씻기고 밥한숟가락 먹이는 것 조차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여행하는 내내 면세점에서 갖고싶은 것을 사드린다 했더니 본인 돈으로는 생전 사본적도 없는 샤넬이 왜 없냐 계속 불평하고 다른 브랜드 매장에서 폭언을 해도 참고 다독이며 다른 제품을 계산했고 치타가 돌아다니는 사파리 안에서 신신당부를 했지만 아기 옆의 창문을 내려도 화를 내지 않았고 참기름을 팔지 않는 국가라고 설명해도 듣지 않아 마트를 3곳이나 시간을 할애해 돌아다녔고 그래도 아무말 하지않고 참았습니다. 남편도 잘 참아주어 고맙습니다.
마지막날 그러시더군요. 남편 앞에서 "이렇게 다니니까 너무 좋다. 외교관 사위를 맞았어야 맨날 이렇게 다니는데'
남편 얼굴이 굳고, 저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사위 앞에서 무슨 말이냐고 하니 "아니 왜 이런 말 할 수도 있지, 이렇게 여행 오니 좋기는 한데 외교관 사위였으면 다들 좀더 편하게 다니잖아"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걸 본 본인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듯 합니디.
귀국길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화장실을 간다더니 앞에서 기다리는 저. 사위. 아기를 두고 먼저 가버렸습니다.
외항동에서 트레인을 타고, 심사대를 걸쳐, 세관에서 세관 신고서를 갖고있지 않으니 그때서야 전화기를 켜고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저희에게 전화를 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찾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쓰러진 사람은 없는지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었습니다.
잠시 친정에 들러 짐을 정리하는데 이번에는 교회 목사에게 줄 면세품이 (3천원짜리 초콜릿 5개) 없어졌다고 면세 계산을 해준 제가 물건을 빼돌렸다고 화를 내더군요 이리저리 찾다.. 면세품 꾸러미 아래를 뒤집어보니 바로 있었습니다.
남편도 아무말 없이 친정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기가 보고싶고 걱정되지만 전화를 하면 말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연락을 안하고 있습니다
친정은 "외교관 사위를 들일 수"있는 집이 아닙니다. 재산도 없고, 은행 모기지 이자 역시 근근히 갚고 있으며, 아이를 맡길 때 그래도 남편 눈치를 덜 보며 친정에 돈을 줄 수 있어 안심이 된 게 사실입니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돈을 버는 사람은 저 혼자 뿐이었고 그렇다고 제가 사짜가 붙는 전문직이나 초 고학력도 아닙니다. 정신지체 검사를 받지는 않았기에 정신지체는 아니라 주장하는, 그레이 에어리어의 장애인 손위 형제가 37 살이 되도록 9급 공무원 장애인 전형을 준비합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말하기조차 힘든 더 심한 일도 많았고, 그만 맞고 싶어서 자살 시도를 했고 10년 넘게 우울증 치료를 받았습니다.
국립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을 때 외교학과를 지원하면 대학 입학금을 주지 읺겠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무슨 외교학과냐고, 무슨 외교관이 될 수 있겠냐며 들어가면 방법이 있겠지 싶어 다른 과를 선택했고 결국 학비는 부분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충당했고 결국 고시가 아닌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구요.
이런저런 블러핑을 치며 선 시장에 내보내 '팔아치우려' 했지만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우울증 약도 끊을 수 있었습니다.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 하면 좀 나아지겠지 해서 더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외교관 사위를 들였으면 더 편하게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었을 거란 이야기를 사위 앞에서 너무나 태연히 말하는 데 모든 맥이 풀립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오랜 기간 정신적으로 뒤틀려온 나를 놓고...
남편은 더이상 아무 이야기를 히지 않습니다. 제가 버는 대부분의 돈은 아기와, 아기를 봐주는 친정에 들어가기에 여행의 모든 비용은 남편이 벌어온 돈입니다.
아이보는 아줌마를 들이고 연을 끊는게 답인 것을 아는데
솔직히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무섭고 두렵고 많이 베풀어주신 시댁 어른들이 원하시는 단 한가지가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 것인 점도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