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나는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갔다. 인터폰의 화면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긴 머리를 땋아 한 쪽 어깨에 내리고 검은 정장을 입어 깔끔한 맵시다. 혹시나 싶어 누구시냐고 물어본다.
"퇴마사 토죠 노조밉니다~"
화면 속 여자는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투리 억양인 것으로 보아 지방 출신인 것 같다.
"아, 어서오세요."
나는 현관문을 열어 토죠 씨를 맞이했다. 작은 화면 속이 아닌 실제 두 눈으로 보는 토죠 씨는 더 예뻤다. 화면 속에서는 느끼지 못한 신비스러운 아우라도 함께.
"저는 니시키노 마키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니시키노 씨~"
나는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 토죠 씨를 거실 소파에 앉혔다. 토죠 씨에게 드릴 음료를 준비하는데 토죠 씨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와~ 집 억수로 넓네예!"
"예.. 뭐 그렇죠..."
"내도 이런 집에서 살고싶다!"
나는 토죠 씨에게 토마토 주스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토죠 씨 맞은 편에 앉았다.
"제가 토죠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건요...."
"아, 그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데이."
"네?"
"제가 니시키노 씨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느꼈거든예."
"....네? 뭘요?"
그러자 토죠 씨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토죠 씨의 행동에 의미를 알 수 없어 가만히 앉은 채 토죠 씨의 행동을 바라보기만 했다. 토죠 씨는 망설임없이 어디론가 걸어갔다. 마치 제 집인 것처럼. 갑작스런 토죠 씨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토죠 씨를 따라갔다. 토죠 씨는 헤매이지 않고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누가보면 여기가 토죠 씨의 집인 줄 알았을 것이다. 토죠 씨가 도착한 곳은 내가 방금 있었던 방이었다.
"여... 여긴..."
"자, 엽니데이~?"
"자..잠깐만요!"
토죠 씨는 문을 열려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얘 알았는지, 그거 물어볼라고 그러십니꺼?"
"아... 예..."
"지는 퇴마사니까예!"
"...네?"
토죠 씨는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불이 켜지지 않았으니까. 스탠드도, 양초도. 방을 밝게 하려했지만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방은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곳이었다.
"방이 어둡네예~"
"아, 저, 이 방은 불이 안 켜ㅈ...."
토죠 씨가 전등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이 밝아졌다. 어라, 어째서?!
"어... 어떻게...?!"
"와 그라시는데예~?"
"저... 그, 그게... 아까까지만 해도 이 방엔 불이 안 켜졌거든요...."
토죠 씨는 아무 말없이 그저 미소만 지었다. 토죠 씨의 생각은 전혀 알 수 없다. 그 미소 뒤에 무엇이 있는 건지.
예고없이 밝아진 방 안. 방 안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또렷이 보인다. 아까 전까지는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였는데.
"귀엽게 생깄네~"
아이의 얼굴을 본 토죠 씨가 말했다.
"야자와 니코에요."
"음~ 니코구나."
"아, 불편하신데 서있지 마시고 의자에 앉으세요!"
나는 의자를 들고 침대 옆에 놓았다. 토죠 씨는 의자에 앉고 한숨을 쉬었다.
"이래 예쁜 아가, 우짜다 이래 됐을꼬..."
토죠 씨는 니코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지..."
나는 고민에 고민을 하다 어렵게 입을 떼었다.
"제가 니코를 처음봤을 때부터 니코는 어딘가 몸이 안 좋았어요. 검사를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나는 말을 하면서 토죠 씨를 흘깃 쳐다보았다. 토죠 씨는 아무 말없이 니코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니코가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전 무시하고 놀렸는데, 진짜로 니코가 혼자 있게 되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너무 무서워하더라고요... 무언가를 보면서..."
"무언가를 보면서예?"
"네. 니코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어요. 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니코는 무언가를 정확히 보면서 무서워하니까... 전 뭔가가 있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니코의 눈엔 보이는 그 것. 토죠 씨에게도 보이는 걸까. 퇴마사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얼마 전에 퇴마사를 부른 적 있어요."
"다른 퇴마사예?"
"네. 혹시나 싶어서, 부른 건데..."
"흠...."
다른 퇴마사를 부른 적 있다는 말에 토죠 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사실 전에 다른 퇴마사 분을 모셨을 땐 니코는 깨어있었어요."
"깨어있었다고예?"
"네."
다른 퇴마사를 만났을 땐 니코는 깨어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생활은 못 했지만. 그 분을 만나 의식을 받았지만 니코는 좀 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니코는 눈을 뜨지 않았다. 확실히 죽은 건 아니었다. 목숨은 붙어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의학적 소견으로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그래서, 그 퇴마사는 뭐라고 하던가예?"
"별 일 아니라고 하던데요."
"하."
토죠 씨는 기가 차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렸다. 토죠 씨 반응을 보니 별 일이 아닌 것 같다. 갑자기 마음 속에 여유가 사라지고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심각한가요?"
토죠 씨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나도 토죠 씨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향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일까. 니코와 토죠 씨에겐 보이나 나에겐 보이지 않는 그 것.
"금마, 순 엉터리구마."
"네?"
"우리 의뢰인님 사기당했다고예~"
"사기요?"
"제가예, 그런 놈들 많이 봐왔거든예. 보나마나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뭐 그런 사람들 때문이라고 했겠지예~?"
"아, 네! 맞아요! 그 분이 니코 아버지때문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럼 그 사람은 야자와 씨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어떻게 아셨습니꺼?"
"그건 제가 말했죠. 그 분이 물어보시더라고요."
"하아~"
토죠 씨는 긴 한숨을 흘렸다. 그리곤 무슨 생각에 잠긴 듯 팔짱을 끼고 오른손을 턱 밑에다 대었다. 허공을 바라본 채로. 나는 토죠 씨의 모습을 보다 문득 의심이 들었다. 만약 이 사람도 가짜라면?
"있죠. 토죠 씨."
"네~"
"전에 제가 뵈었던 분이 가짜라면, 그럼 토죠 씨도 가짜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예."
토죠 씨는 내 말에 쿡쿡, 웃었다. 정말 내가 말한 대로 토죠 씨도 가짜인걸까?
"그럼 당신을 어떻게 믿죠?"
"흐음~"
토죠 씨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잠깐의 정적 후에 토죠 씨가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의뢰인님 너무 의외네예~"
"네?"
뜬금없이 무슨 소리실까? 설마 가짜란 걸 들킨걸까. 그럼 내가 의외로 눈치가 빠르다는 말인걸까?
"의사선생님이 퇴마를 믿으실 줄은 몰랐는데예~"
토죠 씨의 말에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그걸 어떻게...?"
토죠 씨는 웃으며 말했다.
"지는 퇴마사니까예!"
퇴마사인 거랑 무슨 상관이지? ...아무튼 사기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니코를 평범한 생활을 하게 만들 수 있을 지도. 그럼, ...다행이야.
"어떻게 된 건가요? 니코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건가요?"
"당연하지예."
"그걸 어떻게 알죠? 딱 보니까 알겠던가요?"
"뭐, 일단...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생전에 사랑했던 딸을 괴롭히겠습니꺼."
"아, 그렇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토죠 씨는 허공을 보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토죠 씨가 그 다음 말을 하기까지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107명이나 가지고 있겠습니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