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임진왜란의 장군에서는
'신각' 이라는 장군님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다들 임진왜란의 ' 첫 승 ' 을 이순신 장군님의 ' 옥포해전 ' 이라고 알고들 계셨지요?
하지만! 그것은 해전에서의 첫승이었지, 임진왜란 통틀어서의 첫승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을 통틀어서 첫승의 장계를 당당히 선조왕에게 올린 장군님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신각 장군님입니다.
이 분은 본관은 평산, 아버지는 신경안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신경안의 아우인 신경민이 아들이 없자,
신경안은 자신의 아들을 아우에게 입양시킵니다. 즉, 대를 물리기위해 아우에게 아들을 준 것이지요.
신각은 이 작은아버지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밑에서 차차 무력을 키워나갑니다. 그리고는 무과에 급제하여
명종 말기에 무관직에 첫 임관을 하게되죠. 그리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선조 초기에는 연안-영흥
부사를 거쳐 1574년 경상 좌수사, 1576년 경상 우병사에 역임하였습니다. 1586년 강화부사를 거쳐(당시 조선
은 강화도=요충지 라는 인식이 깔려있어서 강화부사를 역임하였다는건 이분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것을 증명
해주는 셈이죠.) 이듬해 경상도 방어사가 되십니다. 그런데 경상도 방어사를 역임중에 영흥부사때에 약간의
뒷돈을 빼돌리는 사실이 발각되어 파직되고 맙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각은 다시 기용
되었습니다. 새로 뽑아서 다시 키우는것 보다 원래 키우고있던 캐릭터를 다시 쓰는게 더 편리하듯 선조도 이
와 같은 방법을 쓴 것이죠. 이때 수성대장 이양원의 부관급인 중위대장에 올랐다가, 한강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도원수 김명원장군의 밑으로 들어가죠. 그런데 이 인간관계가 아주 미묘하게 작용할줄은 꿈에도 몰랐
겠죠. 당시에는.. 어쨋든 한강방어선에서 방어를하다가, 크게 패하고 신각과 김명원, 이양원은 뿔뿔이 흩어
집니다. 그러다 이양원과 신각은 다시 극적으로 규합하여 패잔병들을 모으고 한강 주변에서 왜군들의 수70급
을 베는데 성공합니다. 임진왜란 첫 승의 순간이죠( 이 전투에서 이양원은 전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승전
의 장계를 써 올리는데, 이때 김명원 장군이 승리의 전장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신각은 김장군을 보자
껄끄러웠을 겁니다. 그리고는 승전보를 올릴때 김명원 장군의 이름을 쏙 빼버리죠. 이양원, 신각만이 그 장
계에 이름을 올렸고요. 또한 신각은 김명원 장군이 패전당시 제일 먼저 발을 뺐다는 내용도 덧 붙입니다.
이에 김명원장군이 신각에게 원한을 품고 또한 자신의 패배한 죄와 또 전장에서 도망친 죄를 만회하려고
이 둘을 탓하는 장계를 먼저 올리게됩니다. 내용인 즉슨, 신각과 이양원이 먼저 등을 돌려 퇴
각하자 군사들도 너도나도 퇴각했다는 이야기를 쓴 것이죠. 운명의 장난일까요? 김명원이 쓴 장계가 먼저 당
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장계를 본 선조는 열폭하여 당장 의금부도사를 파견해 그 자리에서 그 둘의 목을
벨 것을 명하죠. 그리고 의금부도사들이 떠나자마자 첫승의 장계가 올라옵니다. 신각장군의 이름으로 된..
그것을 본 선조가 아차! 하고는 선전관을 다시 보냅니다. 의금부도사들의 명령을 중지시키려고요.
여기서 선전관과 의금부도사의 재미있는 헤프닝이 벌어집니다.
선전관 " 멈추시오! "
의금부도사 " ? "
선전관 " 어명이오! 멈추시오! 신각을 죽이지 말라는 어명이오! "
의금부도사 " !!!!!! "
선전관 " 아.. "
참.. 종이쪼가리 하나 먼저갔다고 이런 결과를 낳을줄이야 꿈에도 생각했겠습니까? 아무튼 우리에게 첫승을
안겨다준 처녀승장의 최후는 이렇게 어이없었습니다. 참고로 김명원장군은 살아남았고요. 그 당시엔 장수를
죽이기에는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씁쓸하지 않습니까? 도망간자는 살고, 이긴자는 죽고.. 꼭..
지금의 우리나라를 보는것 같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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