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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best_387122
작성자 :
StarDream
★
추천 :
11
조회수 : 4348
IP : 203.247.***.141
댓글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9/12 23:42:45
원글작성시간 : 2011/09/08 12:16:37
http://todayhumor.com/?humorbest_387122
모바일
[펌][장편,브금,재탕] 껌 [ III ]
10시 10분.
예상대로 10시가 넘어서야 도착을 했다.
눈이 빠져라 나를,
아니 치킨을 기다리고 있을 딸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택시, 택시!”
역 앞에 늘어서 있는 택시 중에 하나를 붙잡는다.
“문래동이요.”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는다.
기사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부쩍 추워졌어요. 그렇죠? 문래동 어디로 모실까요?”
“그러게요. 밤 되니까 더 춥네요. 문래역 1번 출구 쪽으로 가 주세요.”
내 말이 끝나고, 택시가 움직였다.
서울역 앞이라 비교적 차량이 많은 편이었다.
“저 아저씨, 신촌 로타리 말고, 후암동 쪽으로 가 주세요. 급해서 그런데 조금 빨리 가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그러죠. 어디 출장이라도 다녀오시나 봐요?”
“예, 당일치기로 강원도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정말 피곤하네요.”
택시가 남대문 경찰서를 끼고, 후암3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상대로 차량이 거의 없는 한산한 도로였다.
“그래도 어떻게 저녁은 드셨나 보네요. 껌을 씹고 계신 걸 보니.”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지 않았다.
점심 먹고 씹은 껌을 여태 씹고 있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출출함이 느껴진다.
집에 가면 무슨 요리를 먹을지 생각해봐야겠다.
“무슨 껌 씹으세요? 향이 참 좋네. 방금 씹으신 것 같은데, 저도 하나만 주시죠. 허허.”
기사가 넉살 좋게 웃는다.
하지만 선뜻 건 낼 수 있는 껌이 아니었다.
“음... 이 껌은 웬만하면 권해 드리기 힘드네요. 마치 마약과도 같은 껌이라.”
“아, 그런 껌 좋아합니다. 운전장이에게는 껌이 참 중요한데, 그런 껌들이 졸음운전도 방지하고 좋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계속 씹게 만드는 이 껌의 중독성이 운전수와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 껌을 뱉었을 때 느꼈던 그 이상 증세,
그리고 찝찝한 가게 주인의 경고, 등을 생각했을 때 이 껌을 주기는 힘들었다.
“허허허. 드리고 싶어도 제 입에 있는 게 마지막 껌입니다. 강원도에서만 파는 것이니, 어디 구하기도 힘
들 거고요.”
내 말을 들은 기사가 살짝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한다.
차는 어느새 영등포 로타리를 타기 시작했고 문래역까지는 10분도 채 안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끼이익.
차가 급정거를 했다.
몸이 크게 휘청거린다.
“저 새끼가 신호도 못 보나! 야 이 개새끼야!!”
안전벨트가 아니었으면 다칠 수도 있을 상황이었다.
목이 약간 뻐근했지만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아, 괜찮으신가요? 요즘 하여튼 자전거 때문에 미치겠다니까요.”
“아, 예 괜찮습니다. 늦은 밤에 자전거는 조금 위험하죠.”
기사가 다시 엑셀을 밟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딸에게 사줄 치킨에 관한 생각이었다.
역에서 가까운 교촌치킨 쪽으로 많이 기울긴 했지만 말이다.
-아그작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운전석에서 난 소리였다.
난 기사를 쳐다보았다.
“질겅, 질겅.”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향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아, 아저씨 설마?”
내 시선을 느꼈는지 기사 멋쩍게 웃기 시작한다.
“아아, 밑에 떨어졌던 거예요. 어차피 버릴 거, 제가 그냥 손으로 털고 입에 넣었습니다.”
차가 급정거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껌 하나가 밑으로 떨어졌었나 보다.
용케 그걸 기사가 주운 모양이고.
“아, 뭐 떨어진 거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정말 맛있군요, 이 껌.”
“후우... 뭐 어쩔 수 없죠. 단, 뱉을 때 고생 좀 하실 겁니다.”
“....질겅, 질겅, 질겅”
기사는 대답하는 대신 연신 껌만 씹어댔다.
내가 처음 껌을 씹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
......
“아, 여기서 세워주세요.”
-끼이익
문래역 1번 출구 앞에서 택시를 멈췄다.
“질겅, 질겅, 예. 7000원 나왔네요. 질겅, 질겅, 와, 이거 단 물이 계속 나오네요?”
지갑에서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 기사에게 건 낸다.
그리고 거스름돈을 받은 후 문을 열었다.
“아 참, 그 껌 삼키지는 마세요.”
“예? 왜요?”
“처음 껌을 준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삼키면 안 된다고.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허허허. 알겠습니다. 그러죠 뭐. 감사합니다, 손님~.”
반응이 그저 그렇다.
오주임처럼 씹다가 삼킬 게 눈에 훤했다.
어쨌든 택시는 제 갈 길로 갔고, 나 또한 몸을 움직였다.
......
......
-딩동, 딩동
“은비야 아빠 왔다~”
10시 30분.
결국 예상했던 시각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놈의 치킨이 나오는데 10분이나 걸릴 줄이야.
“자기 왔어?”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나를 반긴다.
“아빠~~~ 치킨, 치킨!”
아내 바로 뒤에서 내 딸 은비의 소리가 들린다.
“은비 너~ 맨 발로 현관에 나오지 말랬지! 어서 들어가.”
아내가 딸을 나무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겨운 집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후우. 오늘 정말 피곤했어. 재수 없게 당일치기 출장이라니.”
“그러게 말이야. 피곤할 텐데 어서 씻고 나와.”
“아빠, 치킨, 치킨!! 무슨 치킨 사왔어?”
귀여운 여덟 살 배기, 내 딸 은비가 다리에 매달린다.
누굴 닮았는지 보면 볼수록 예뻐 죽겠다.
“짠~ 은비가 좋아하는 교촌치킨~”
은비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와아~ 교촌이다. 아빠 짱!”
“은비야. 손 씻고 먹어야지. 잘 밤이니까 콜라는 조금만 마셔야 해. 알았지?”
“응응, 알았어.”
귀여운 딸의 모습을 보니 쌓였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자기 밥은 먹었어?”
아내가 내게 물었다.
“아, 밥 아직 못 먹었어. 집에 뭐 맛있는 거 있어?”
옷을 벗으며 내가 말했다.
왠지 어제 마트에서 산 ‘3분 정통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다.
“그런데, 밥도 안 먹고 웬 껌을 그렇게 씹고 있어?”
“아아, 그냥. 나 어제 산 스파게티 좀 해주라. 물은 조금만 넣는 거 알지?”
껌에 대한 대답을 대충 얼버무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 받아놨어~”
문 밖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빨리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밥을 먹으려면 껌을 뱉어야 할 텐데,
아까처럼 몸에 이상이 올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밤새 껌을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물 밖으로 손을 내밀어 아까처럼 퉤 하고 껌을 뱉었다.
“......”
괜찮았다.
침이 고이지도, 머리가 아프지도, 오한이 나지도 않았다. 단순히 과민했던 탓이었을까?
아까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 뱉을 때는 단 물이 거의 다 빠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
......
목욕을 마치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밖으로 나왔다.
은비가 즐거운 표정으로 신나게 치킨을 먹고 있었고, 아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그, 은비야, 옷에다가 닦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 하니.”
“으응, 알았어.”
먹는 모습을 보니 배가 몹시 고파온다.
“자기야, 어서 와. 배고프겠다.”
아내가 자신이 있는 식탁 쪽으로 손짓을 한다.
식탁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스파게티가 눈에 들어온다.
“와, 마트에서 산 것치곤 엄청 먹음직스럽네. 거 봐 잘 샀지.”
식탁 앞에 의자를 빼 앉았다.
치킨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은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은비가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입 주위가 양념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은비의 귀여운 볼을 손으로 살짝 꼬집어 본다.
“세 개에 만원이나 하는데 이정도 때깔은 나와야지. 어서 먹기나 하셔~”
아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크를 움직여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유별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나쁘진 않았다.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가 살짝 미소 짓는다.
행복하다.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
......
“은비야 이빨 닦고 자야지.”
“에에? 아까 닦았는데 또?”
“콜라 마셨잖니. 또 치과 가고 싶어서 그래?”
“아앗, 알았어, 닦을게. 이잉.”
......
......
침대에 몸을 뉘이자 마자 잠이 쏟아진다.
이미 시각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6시에 일어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온다.
“피곤하지? 자기 밥 먹고 바로 자서 배 나오겠다.”
“으응... 뭐... 배 나오면 나랑 이혼할거야?”
“어휴. 말 하는 것 좀 봐.”
아내가 나의 옆구리를 꼬집는다.
“나 먼저 잘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는 내일 해 줄게.”
“알았어요. 낭군님. 어여 주무셔요.”
애교 섞인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왠지 껌이 꿈에 나올 것 같다.
......
......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
......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
......
-따르르르르릉
“......아, 뭐야......”
-따르르르르릉
“자기야, 전화 좀 받... 아 내 핸드폰이구나.”
-따르르르르릉
“오주임이잖아? 이 새끼가 분명히 새벽에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오.”
-따르르르르, 딸칵
“여보세요? 너 미쳤어? 지금 몇 시야!”
- ......
“여보세요? 왜 말이 없어! 졸려 죽겠는데. 빨리 용건 안 말 해?”
- ......껌......좀 주세요.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건방진똥덩어리'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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