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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2편>
<3편>
"그렇다고 해도...자기 자식이잖아요, 아들이잖아요.”
“작년이었어요. 명절을 친척집에서 보내고 오래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온집안에 날벌레가 날아다니더군요. 그 다음엔 악취였어요. 온 집 창문을 열어놓고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2층에서 나는 냄새였어요. 난 그때까지만 해도, 내 아들의 방문을 열던 그 순간까지만 해도, 군것질거리를 몰래 가져갔다가 썩힌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침대 밑이었어요. 거기서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어요. 갈색으로 짓물러버린 작은 시체를 끄집어내선 창밖으로 던져버렸어요. 그리곤 방에 병아리를 데려온 걸 혼쭐을 내주려고 돌아섰지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냄새는 더, 더, 더, 심하게 제 발목을 붙들었어요. 난, 그 강아지를 정말 가족처럼 사랑했어요. 우리 애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죠. 믿었어요, 우리 애들은 사랑스러운 애들이었으니까.”
그녀는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는 듯, 먼 곳을 응시했고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구역질을 하는 나를 끌어안고 있었고, 딸애는 강아지 시체를 보고 빽빽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요. 그 애는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아세요? 번뜩거리는 눈알을 굴리면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어요.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데굴데굴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 흔한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 말이라도, 거짓으로라도 잘못을 빌었다면 그 애를 이해해보려고 했을 거예요.
난 그 애한테 돼지라고 소리쳤어요. 이 돼지새끼, 저리 비켜,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내 눈 앞에서 꺼져버려! 네 어미한테나 가버려! 하고요.
그리곤 그걸 치우느라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애가 보이질 않았어요. 감쪽같이 없어졌죠. 내가 한 말이 있으니까, 남편은 나한테 책임을 떠넘겼고 난 눈물범벅이 돼선 이웃집에 달려가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애를 찾으러 뛰어다니기 시작했죠. 그 앨 어디서 발견했는지 아세요?“
“........아니요.”
“돼지 우리였어요. 이제 좀 몸집이 커진 그 가여운 돼지를 죽이곤 그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어요. 이웃사람들 모두 그 광경을 목격했죠. 여기저기서 구토를 해댔고, 어떤 사람은 신을 부르짖으며 무릎을 꿇었어요.”
“............그럴 수가........”
“선생님, 그 애가 그렇게 된 건, 그 일을 저지른 건 순전히 내 탓이었을까요? 우리의 핏줄이 잘못된 걸까요? 한가지 확실한 건, 난 그 애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애한테서 내 가족을 지킬 자신이 없었어요.”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 교사는 아직까지도 이 소문들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소년은 단지 피해자일 뿐이었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면 소년의 앞날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소년을 낳은 어머니가 진작 놓아버린 희망의 끈을, 그녀는 아직 놓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져서 하늘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빛 하늘을 불길하다는 듯 올려다 본 소년의 어머니는 찻잔을 달그락 거리며 치우기 시작했다. 교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제 돌아가세요. 진실을 알려드렸으니,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하고 축객령을 내렸다.
교사가 떠나자마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소년의 동생이 정원으로 뛰쳐나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서로 손을 잡고 뒤뜰로 걸어가는 모녀의 다정한 뒷모습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느게 옳고, 어느게 그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들의 모습이 더이상 보이지 않자, 그곳에 서있을 구실도 사라졌다. 그녀는 차로 돌아가 힘없이 차문을 열고 주저앉았다.
구명줄처럼 핸들을 꼭 붙잡고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그때, 드르륵....드르륵....익숙한 진동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울리기야 몇분 전부터 울리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자각한 것이었다.
그녀는 여덞통의 부재중 전화가 모두 같은 번호에서 왔다는 걸 확인하고 서둘러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번의 신호음이 들렸고, 낯선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교감님 부부 아시죠?"
교감 부부는 소년을 맡아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잖아도 오늘 오후에 약속이 있었다. 교사는 시간을 확인하며,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서
얼른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았다.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교감님이랑 마지막으로 통화하신 분이라서요."
"그런데요."
"이쪽으로 좀 와주셔야겠는데요."
"거기가 어디죠? 조금 뒤에 약속이 있어서요, 거리가 멀면...."
"만나기로 하신 분이 교감님이신가요?"
"그걸 어떻게?"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경찰서입니다."
경찰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차를 세우고 가물거리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흐려지는 초점을 잡기 위해서 그녀는 멍한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불타오르는 노을...
마치 넘실넘실 춤을 추는 지붕 위의 불길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
"당신, 지금 뉴스 봤어요? 운전중이래도 잠깐 세우고 틀어봐요."
소년의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거실을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옆에선 딸은 인형을 끌어안고 쿠션에 몸을 파묻고 불안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주택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큼지막하게 잡히자, 소년의 어머니는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음량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게 높이고 전화기를 그쪽에 댔다.
"들려요? 들리냐구요. 다 죽었대요, 그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까지!!"
"엄마 소리지르지마...무서워....."
"빨리 집으로 와요."
"엄마아...."
소년의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뉴스화면을 쳐다봤다. 딸이 달려와서 품에 안겼지만 그녀에게는 딸을 안아줄 정신마저 없는 듯했다.
그녀는 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앵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갑작스런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합니다. 폭발 당시 집안에는 최 교감 부부와 그 아들이 있었고, 최 교감이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한명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진화작업이 신속히 이뤄지고 있으며....."
땅거미가 내린 집 주변은 암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많은 유리창들이 오늘따라 섬뜩하게 느껴졌다.
소년의 어머니는 일어나서 창문마다 커튼을 치고 잠그기 시작했다. 1층의 단속을 끝냈다고 생각한 그녀가 2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
딸아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오....오빠...."하고 누군가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보고 있는 곳은 조금 전에 커튼을 친 창문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달려가서 딸을 품에 안으며 뒷걸음질쳤다.
끼이익....
어둠 속에서, 문이 혼자서 끼긱대며 열렸다.
보지 않아도, 확인하지 않아도, 소년의 어머니는 누가 찾아왔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기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지만, 전화기는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전화기가 있는 곳과 문 쪽을 힐끔거리며 거리를 쟀고, 딸을 2층 계단에 올려놓고 전화기를 향해 달렸다.
"학교에서 배웠어요. 가족이 있는 집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라면서요."
우뚝.
소년의 어머니는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아 소녀처럼 가늘고 고운 목소리, 그러나 높낮이도, 감정도 품고 있지 않은 나직한 목소리가 집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 이쪽으로 오세요."
공포에 질린 모녀의 눈에, 번뜩이는 빛이 스쳐갔다.
섬뜩한 빛을 품은 소년의 그림자가 어둠을 등지고 그들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
웹툰식으로 그려보려고 그려봤는데, 어렵기도 하고 시간도 너무 많이 걸려서 이미지만 완성했네요.
그건 그렇고...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스릉흠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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