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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2편>
<3>
소년은 여전히 학교에 나왔다. 그는 여전히 긴 머리칼 안에 숨어서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와 어울리는 사람은 교사 한명 뿐, 선생님들도 그를 슬글슬금 피했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티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교사는 제자의 개인적인 일에 신중을 기했지만 소문은 음식냄새가 퍼져나가듯 소리없이, 그러나 빠르게 학교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누구의 입이 가벼웠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지나가다가 들었어요.'
'누가 그랬는진 몰라요. 난 그냥 들은대로...'
'걔네 부모가 떠들어댔는지 누가 알아요? 엄한 사람 잡지 마세요.'
누구의 입이 무거웠는지만 밝힐 수 있었다. 교사들의 입을 통해, 아이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학부모들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는 전달되었고 조금씩 변질되어 갔다.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 안에는 진실과 과장이 멋대로 뒤섞여 있었다.
체육 수업이 끝난 직후였다. 소년은 우르르 무리 지어 들어오는 아이들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는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교사는 창문을 통해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걸음이 느렸기 때문에 소년은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체육 수업을 가르친 선생님이 손을 확성기처럼 만들어서 입에 대고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줄넘기 가져가야지, 하는 따위의 부름이었으리라.
막 현관으로 들어가던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소년은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한 아이가 발끈하며 소년의 어깨를 탁, 하고 밀었다.
"야. 돼지. 선생님이 부르시잖아."
"네가 뭔데 잘난척이야?"
"맞아. 돼지 주제에."
순식간에 소년은 포위당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소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서서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돼지. 돼지. 돼지 소년. 큭큭큭."
어느 아이는 웃고 있었고, 어느 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소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편들어주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교사는 더이상 못보겠는지 창문을 열고, "너희들!"하고 소리쳤다.
"선생님이다."
"도망치자."
소년은 친구들이 놀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가만히 서있었고, 교사는 그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답답했다.
괴롭히지 말라고 소리라도 질러보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린 양 처럼 도망도 못치고 당하고만 있지 말라고.
하지만 이번에도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고작 열살, 초등학생이었다. 진실을 알려주고 매서운 충고를 해주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녀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늦겠다. 들어가봐."
소년은 그녀를 수업 종이칠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수업 종이 치고 그녀가 창가에서 떠난 뒤에야 그도 자리를 떠났다.
느릿느릿 복도를 걸어가는 소년의 머리 위로 스피커에서 나온 멜로디가 울려퍼졌다.
특이한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지 과묵하고 소극적인 성격이라고 여겼었다. 그 원인은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교사는 수업을 받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복도에서 쳐다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다. 소년은 모범생처럼 얌전히 앉아서 칠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열심히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소년과 비슷한 아이는 이 반을 통 틀어서 단 한명도 없었다. 그는 새카만 강물에 둥실 떠올라,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의 주변에만 소리가 차단되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열살 소년 특유의 부산함도 장난기도 사라져 버렸다.
'학교 생활이 문제였었나...'
가족 문제도 문제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마음앓이를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교사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소년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빈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에 생각했다. 소년한테 친구를 만들어주자고.
친구 후보 1번은 반에서 가장 친구가 많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명준이었다.
교사는 명준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을 끔찍이 아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책임감도 강하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주는 착한 아이였다. 겉도는 아이에게 소개시켜주기에 적당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는 명준이를 조용히 불렀다.
명준이는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자기를 부르는 선생님의 예쁜 얼굴을 올려다봤다.
"명준이 오늘 바쁘니? 선생님이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괜찮아요."
"그러면...선생님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요?"
"오전에 너희들이 운동장에 있는 걸 봤어."
".....죄송해요."
"아니야. 혼내려는게 아니야."
명준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교사는 명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서 그를 진정시키고 다시 물어봤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모두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반이 더 화목해지고 학교 생활이 더 재밌어질 것 같아. 명준이 생각은 어때?"
".......걔두요?"
"그 친구가 싫은 거야?"
"아니요. 싫은 건 아닌데...걔는......."
"괜찮아. 말해봐."
"걔는........무서워요."
"무서워? 왜?"
"걘 사람이 아니래요."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애들이 그랬어요."
"하지만 명준아. 다른 친구를 놀리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다른 아이들이 놀린다고 해서 너도 같이 그러면 되겠니?"
"죄송해요...."
명준이는 선생님 품에 안겨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명준이가 착한 아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울리려던 건 아닌데...그녀는 명준이를 꼭 끌어안으며 울음을 달래주었다. 교사는 머뭇대며 한가지 질문을 더 꺼냈다.
"있잖아...너희들 그 애를 왜 돼지라고 부르는 거야?"
"모르셨어요?"
아이는 오히려 되물었다.
상담을 마치자마자 교사는 차로 달려갔다. 급하게 운전대를 잡고 아스팔트에 타이어 자국이 날 정도로 커브를 꺾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초등학생들이 낙엽처럼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문방구 앞에서 그녀의 차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제자를 무심히 지나쳤다. 운전을 배우고 이렇게 신호를 무시하고 속도를 높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도로 위를 아슬아슬 위태롭게 달려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소년의 친부모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끼이익...
그녀는 비뚜름하게 주차한 차에서 용수철 처럼 튀어나왔다. 곧 그림같은 저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정원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녀 옆에선 그녀의 딸이 자기 키 만큼이나 작은 물뿌리개를 들고 있었다. 소녀의 주위로는 새로 심은 꽃들이 꽃잎을 벌리고 햇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교사를 발견하자마자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는 딸을 자기 뒤로 숨기듯이 돌려 세우고 말했다.
"자꾸 찾아오지 마세요. 설마, 둘째까지 저희에게서 빼앗으실 셈인가요?"
"제가 빼앗았다고요? 어머님께서 놓아버리신거 아니었나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아들을 버린 매정한 엄마라고 손가락질 하려고 오신 거예요?"
"묻고싶은게 있어서 왔어요. 알아야겠어요."
소년의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가서는 정원과 이어진 창문의 커튼을 모조리 내렸다. 교사는 이대로 돌아가야되는 건가 포기하려고 했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작은 쟁반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걸 정원의 야외 테이블에 내려놓고 교사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말씀하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교사는 눈을 빛냈다.
"혹시, 학교에서 별명이 뭔지 아시나요?"
"입이 가벼운 사람들은 어딜가나 있죠.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행을 먹고 사는 괴물 같아요. 정작 자기한테 그런 일이 닥치면 금세 허물어져 버릴 거면서, 남의 일이라고 히히덕대며 좋아하죠. 전에 옆집에 살던 여자의 아들이 우리 애들하고 같은 학교에 다녔어요.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아니, 결국엔 이렇게 됐을 테지만요."
그녀는 아들의 별명이 돼지인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애들 아빠가 어려서 목장에서 자라서 그런지, 애들이 조금 크고나니 동물들을 키우고 싶어했어요. 처음엔 평범하게 강아지로 시작했죠. 그러다가 저렇게 그럴싸한 우리까지 만들더라구요.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키웠어요. 닭과 병아리를 데려다가 키우고, 토끼를 데려오고....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데려온 게 귀여운 새끼 돼지였어요. 덩치 크고 살집 많은 돼지는 아무래도 무서워할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 보기 좋으라고 일부러 고르고 골라서 가장 작은 새끼로 데려왔어요."
"그게...왜...?"
집에서 돼지를 키웠다고, 멸시를 담아 돼지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소년을 돼지라 부르는 아이들의 눈과 부모의 눈에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납득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런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부자동네에서는 더욱이.
소년의 어머니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평온한 목소리로 교사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 애가 마지막으로 죽인 동물이에요."
그 순간 그들의 등 뒤로 소방차 한대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는 사이렌 소리가 길게 메아리쳤다. 소년의 어머니는 첫번째 소방차가 지나가고 불과 몇 초 뒤에 연이어 뒤따르는 두 대의 또다른 소방차를 보고 있었다.
"처음엔 작은 병아리에서 시작했겠죠. 병아리를 사오면 한두마리씩 사오는게 아니니까. 그 작은 동물이 몇마리쯤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죠. 그 다음엔 우리가 키웠던 강아지였어요. 강아지는 집안에서 키웠기 때문에, 밖에서 키우는 병아리처럼 갑자기 사라지는게 불가능했어요. 그리고... 그 뒤로는 모른 척 할 수가 없게 됐죠."
"그런............"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척 했던 거예요, 우리 둘 다. 특히 남편은 믿고싶지 않아 했죠. 결혼하기 전부터 자긴 아들을 꼭 갖고 싶다고 했거든요. 자기를 쏙 빼닮은 아들을....그 애의 이상한 점들이 혹시라도 닮았을까 무서워했던 거예요. 자기 핏줄에서 유전된 걸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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