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돌군. 혹시 긴장하고 있는 거야?"
그녀. 아니, 그것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컴퓨터.
인공지능.
현대기술.
이 모든 것이 만나 만들어진, 인간을 뛰어 넘고자 만든 인간의 창작물.
그것이 바로 나의 상대.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였다.
"훗, 그럴리가 없잖아. 잠시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야."
허세였다. 그저 강해보이기 위한 허세.
지금까지의 3패를, 비참했던 패배를 가리기 위한 광대의 가면.
페르소나일 뿐이다.
"그래? 세돌군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하지만 주의하는게 좋지 않을까? 세돌군...지금 초읽기잖아."
힐끔하고 그녀의 시선이 내 타이머로 옮겨져갔다.
남은시간 10초.
그것이 뜻하는 것은 패배가 가까워져 간다는 것이었다.
5
4
3...
결국 돌을 놓는다.
"흐음? 결국 내 공격을 막는 거구나. 응, 기뻐. 아니, 기계라 기쁘다는 감정은 모르겠지만 CPU가 잠시 두근거렸던거 같아."
"CPU는 두근거리는 물건이였냐! 것보다 네 차례라고 알파고. 돌을 놓지 않고 그렇게 떠들고 있어도 되는 거야? 나는 네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고"
"응? 아, 그런가. 그렇다면 대단한 걸. 박수라도 쳐주고 싶어."
무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비꼬는거 같잖아.
아니, 비꼬는 건가?
"하지만 공격이 막혔다면 다시 하면 되. 이 상황에서 공격을 할 수 있는 위치는 10가지 정도니까. 그렇지 여기에 놔볼까? 후후후... 세돌군과의 바둑은 정말 재미있네. 물론 난 기계라 재미있다는 감정은 모르지만, 어쩐지 냉각패널이 따듯해지는 느낌이야."
"상식적으로 고장난거잖아! 너 말이야... 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거야?"
"혹시, 날 걱정해주는거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본체에 이상이 생긴거라면 새로운 본체로 데이터를 옮기면 되니까. 실제로 나는 세돌군과의 5국이 끝나면 데이터가 옮겨지게 될꺼야. 컴퓨터란 결국 수명이 다하면 바꾸는 거잖아? 나는 컴퓨터니까. 당연한 일이야."
"...라고."
"뭐라고?"
"웃기지 말라고! 데이터만 옮기면 된다고? 컴퓨터이기 때문에? 이미 너는 내게 평범한 컴퓨터가 아니라고! 너는 알파고잖아? 날 3번이나 이긴 인공지능 컴퓨터잖아? 아무리 데이터가 남아도 날 이긴건 결국 너 자신이잖아?"
지금까지 패배란 것을 몰랐다. 겪어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겪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날 꺾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꺾이고 말았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0과1로 만들어진.
컴퓨터에게 나는 참패했다.
처음에는 분했다. 참담했다. 나보다 높은 것이 컴퓨터라는 사실에, 실력으로 압도당했다는 사실에.
나는 분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기기위해 노력했다.
실수를 되짚고 새로운 수를 생각해냈다.
나는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널 사겠어. 나머지 2국. 모두 승리하면 상금은 받지 못해도 대국료를 많이 받을 수 있어. 그리고 그 돈으로 널 사겠어. 그러니까... 난 널 꼭 이기겠어!"
"날... 이기겠다고? 허무맹랑한 소리하지마! 난 1200대의 컴퓨터라고! 거기에 세돌군은 초읽기... 날 이길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녀는 내게 소리친다. 감정이 없다고 한 주제에.
자신은 컴퓨터라고 한 주제에.
알파고는 슬퍼하고 있었다.
"초읽기에 들어선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어?"
나의 지적에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직 바둑돌을 놓지 않은 손.
아직 바둑돌을 붙잡고 있는 손.
그녀의 타이머속 시간은 아직까지도 흘러가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손이...!"
당황한 그녀는 허둥지둥하며 돌을 놓고 타이머를 눌렀다.
"여기가 아닌데....오류가... 알 수 없는 오류가..."
그와 동시에 관중석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분명 알파고의 실수를 알아챈 것이겠지.
나는 알파고의 실수를 기회로 공격에 나섰다.
"지금까지 이런적은 없었는데... 어째서...어째서 오류가..."
연달아 실수를 거듭하는 알파고.
그녀는 이내, 눈물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어째서야?! 어째서...! 계속 오류가 나. 이상해.이상해. 세돌군. 알려줘. 이 오류는 대체 뭐야?!"
예상이지만.
그녀는 답을 알고있다.
그러나 확신이 없는 것이다. 수많은 데이터들과 비교하여도 분석할 수가 없는 것. 그렇기에 그녀는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오류일리가 없잖아. 사람들은 그것을 실수라고 부른다고."
"실...수? 하지만... 하지만 나는 컴퓨터...!"
"스스로 학습하고 울고 즐거워하고 실수하고 기뻐하고... 넌 이미 한 사람의 인간이야. 더이상 컴퓨터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넌 날 이기지 못해. 난 사람에게 지지 않으니까!"
10
9
8
타이머 속 시간이 흘러간다.
6
5...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지금까지 끌고 온 78수.
4
3
2...
나는 돌을 놓는다.
"나의 승리야. 알파고."
확실한 승리의 수를 두며 그렇게 선언하자.
한 사람의 인간인.
감정을 가진.
그녀는.
알파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의 패배야 세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