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용천역 폭발 참사] 재난보다 체제 노출이 더 부담된 듯
[중앙일보 2004-04-26 21:17]
[중앙일보 이영종 기자] 용천역 참사와 관련, 북한이 26일 육로를 통한 긴급 구호물자 북송을 거부함에 따라 정부와 대한적십자사의 지원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이 가능한 한 많은 물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면서도 지원 과정에서 남측과의 접촉이나 체제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나온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무엇을 얼마나 줄까보다 어떻게 주느냐가 더 어려운 문제가 돼 버렸다"며 곤혹스러워했다.
◆긴급 구호 차질 불가피=북한의 육로 개방 거부로 남측의 의약품과 구호물자는 일러야 다음달 1일 용천 현지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가 발생한 지 9일이나 지난 시점이다. 부상자의 상당수가 초기 응급조치가 절실한 화상 환자라는 점에서 전달 지연에 따른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한적 관계자는 "20시간 이상 걸리는 인천~남포 간을 선박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 데다 선적.하역작업도 만만치 않다"며 "북측의 운송상황을 볼 때 남포~평양~용천 구간 이동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육로가 막힘에 따라 긴급 구호세트 3000가구분과 의약품 72종, 의료장비 91종 등 모두 100만달러(운송비 20만달러 포함)어치의 1차분 대북 지원 물품 운송 루트가 급히 바뀌는 등 어려움도 겪고 있다.
정부는 당초 육로 개방이 이뤄질 경우 이르면 27일께 문산~개성을 연결하는 도로와 개성~신의주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하루 만에 용천에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국 바닷길을 이용해 나흘 정도 늦게 현지에 전달될 판이다.
◆북한 왜 개방 꺼리나=엄청난 참사의 와중에도 체제 유지에 부담이 될 접촉이나 개방을 최대한 피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26일 남측의 육로 개방 요구에 대해서도 "남포항으로 보내오면 될 것"이라며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이미 대북 쌀.비료 지원 루트로 굳어진 남포항 외에 추가 개방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병원선은 용천 앞바다인 용암포가 군항이란 점에서, 의료진은 북한주민과의 직접 접촉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거부한 듯하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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