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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자친구는 지난해 말에 잠깐 들른 카페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요. 그 사람은 서른한 살이었고. 저는 열아홉 살이었죠.
우리가 만난 카페는 지난해에 수능을 망친 제게, 저희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곳이고요.
프렌차이즈가 아니라 가게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 따듯한 느낌의 목재로 장식된, 아늑한 분위기에 원두도 좋고 커피가 되게 맛있어서 단골 손님이 많은 곳이에요.
제 남자친구도 이 카페의 단골이에요. 그래서 만날 수 있었어요.
첫만남은 정말 선명하게 기억나요. 수능을 망쳐 유난히 춥게 느껴지던 11월 말에, 카페 오픈 손님이란 걸 해보고 싶어서 제 생활패턴 치고는 꽤나 일찍 나갔던 날이 있어요.
그런데 전 분명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 저보다 먼저 온 손님 한명이 있더라고요. 카페 가장 안쪽 책장 옆 자리에서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남자 손님 하나가 서류 뭉치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커피 향기가 고소했어요.
곧 그 고소한 향은 제 커피의 캬라멜 달달한 향에 섞였지만요.
그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는 아빠와 마주 앉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라 아쉽게 입맛만 다셨어요.
그 뿐이었어요.
2번째 만남은 포켓몬 고를 할 겸 살 게 있어서 점심 쯤 나왔다가 손이 너무 추워서 핫초코 한 잔을 시켰어요.
그 자리에서는 전에 본 그 남성분이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부러 앞자리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그 남자 앞자리 바로 옆책장에 책을 꺼내러 갔죠.
절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는 그저 본인 일에 열중해 있었죠. 그래서 흘금흘금 볼 수 있었어요.
짧게나마 바라보고 읽던 책을 갖고 돌아와서 그냥 전에 읽던 곳부터 2챕터 가량을 읽었죠.
아니, 사실 제대로 안읽고 넘겼어요. 그래서 우숩게도 그날 읽은 부분만 기억이 안나요.
그 다음엔 한동안 못만났어요. 제가 잘 들르지 않기도 했고, 서로 시간도 안맞았거든요.
그러다가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밤을 새다시피 하던 날, 졸음을 참고 아침 일찍 친구를 만날 겸 갔던 그 날에 한번 더 만났어요.
손님은 여럿이 있었고. 그 당시에 저는 옅은 감기에 걸려서 숨소리가 색색거렸어요.
무얼 먹을 지 고민하는데, 사장님이 감기에 좋다며 레몬차를 추천해주시더라고요.
이번에도 제가 좋아하는 자리에 그 손님이 앉아있었어요.
주위 테이블은 다른 손님들이 앉아있어서, 책을 고르는 척 슬쩍 무얼 마시는지 봤어요.
반쯤 먹은 레몬차가 머그컵에 담아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가 그 머그컵을 집어서 한모금 마셨어요.
전 괜시리 찔려서 손에 집히는 책 아무거나 꺼내갔고요. 그게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요. 그냥 그랬어요.
책은 펼쳐만 놓고 그 사람을 구경했어요.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왔어요.
애석하게도 친구가 시야를 살짝 가렸죠. 그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챙겨서 떠났고요.
눈치 빠른 제 친구는 제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리더라고요.
음흉하게 웃으며 좋아하냐고 묻는 친구의 말은 부정했어요.
당시에 심장은 절대 지금처럼 떨리지 않았거든요. 그냥 관심이 있는 정도였어요. 관심이 어느 정도 있을 뿐이었죠.
솔직히, 사랑이라기엔 조금 모자라지만, 그래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친구는 저를 끌고 나갔어요.
그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제대로 꾸며본 적 없는 저에게 이런저런 화장품을 사서 안겨줬어요.
그 후로 한동안 서툴게 꾸미고 거의 매일 오픈 시간대에 갔어요.
커피값이 쌓여서 무시할 수준이 아닌데도, 일부러 아침 일찍 보고 싶어서 갔어요.
제 취향과는 하얀 피부 빼고는 맞는 게 하나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데. 그냥 제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올해 1월 중순에, 저희 아버지와 데이트 삼아 점심 때 나왔다가 그 사람을 봤어요.
근처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아버지랑 팔짱끼고 나왔는데 그 사람을 만났어요.
신기하게도, 그 사람은 오랜만에 뵌다며 저희 아버지랑 참으로 반갑게 인사했어요.
아버지께서 대학 시절에 한창 시위할 때 같이 나선 친구의 조카래요. 되게 애매한 사이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아는 사이인 게 신기했어요.
여하튼 그 날, 그 사람도 카페에 들르는 길이라 같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이름과 나이부터 시작해서, 카페에 들르는 시간, 여자친구의 유무, 그리고 제대로 된 목소리도 알게 됐어요.
정말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는데도 울림이 예쁜 이름이었고, 여자친구가 없다는 말이 너무 기쁘게 느껴졌어요.
나갈 때 사장님께 인사하던 목소리만 들어왔는데. 귀 기울여 낮게 울리는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너무 설랬어요.
그 날부터는 그분이 주로 들르는 시간을 알게 되서 2주에 한번은 마주쳤어요. 그분이 매일 들르는 게 아니라 만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2월 말까지는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가, 나름 꾸미는 게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이래저래 말 걸기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말을 트고, 친해지고, 전화번호도 받고, 친해지다가.
4월이 되고 대학에 들어와 동기들과 술을 진탕 마셨어요.
완전히 취해서, 가까운 곳에 사는 동기 손에 이끌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러고는 딸꾹질하고 울먹이면서 무척이나 추하게 고백했어요.
다시 생각해도 동기한테 너무 미안하네요.
하여튼 자기가 고백해놓곤 울고있는 저를 당신은 참 열심히 달래줬네요.
당연히 당신의 답은 거절이었어요. 당신에 비해 저는 너무 어리고, 아버지를 뵐 낯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다음날 저는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한동안 카페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연락을 전부 끊고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쓸데없이 젊은 심장은 절대 그 마음을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당신이 일하는 법원 주변을 기웃거렸어요. 딱 하루만 그렇게 해서 미련을 털어버리려 한 거였어요. 정말 만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민폐라는 걸 알면서도,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그 사람을 무작정 잡았어요.
바쁜 당신에게는 참으로 길, 그리고 제게는 너무 짧게 느껴질 20분 동안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요.
그 내용은 비밀로 하기로 약속해서, 말하지는 않고 삼킬게요.
다행히 그 사람도 제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어요. 다만 너무 이성적이라 제가 마음을 쌓아갈 때 접으려 했다나봐요. 근데 그게 잘 안됐데요.
제가 그저 제 감정에 취해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 사람은 이것저것 따졌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속물적인 생각을 잡아먹었데요.
그래서 다행이에요. 사람의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사귀게 됐어요.
저희 부모님이나 제 남자친구의 부모님이나, 저희가 사귀는 걸 몰라요. 아니, 어쩌면 짐작하고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있어요.
제가 중반부부터 많은 부분을 생략해서 상당히 어설픈 이야기가 됐네요. 술자리 끝나고 쓰는 글이라 상당히 엉망인데, 오타 최대한 없게 노력했으니 읽는 분들께 양해 부탁드릴게요.
지금 이걸 쓰고 있다는 건 제 남자친구도 알아요. 그래서 어설프게 쓰기로 했어요.
발전 과정은 나중에 언젠간 제정신일 때 남자친구 허락받고 써보게요. 지금은 차마 그 때의 마음을 써내리지 못하겠거든요.
지금 봐도 오글거리는데. 내일 아침에 보면 지울 것 같네요. 새벽 감성을 믿고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 자리는 요즘엔 주로 둘이 마주앉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서로 너무 바빠서 정말 조금 같이 있다 헤어지네요.
그리고 그렇게 마주앉아 남자친구는 일하고 전 과제하죠...
출처 | 카페 사장님 사랑해요. 그러니 울아빠한테 나랑 남자친구 사이를 알린다고 놀리지 좀 마세요. 쒸익쒸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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