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가 이 세상과의 작별을 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와 아내는 대학교 시절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이 학교에 들어올수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성적 면에서는 어느 방면으로나 부족하고, 성격도 밝다기보다는 음침한 편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밑에서 꾸준히 익혀온 기술직을 내세워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저와는 달리 간단하게 이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고, 어쩌면 이 곳보다 몇 단계는 더 높은 학교를 골라도 무리 없이 들어갈 정도로 그런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처음 우리가 우연찮게 마주했을 때에는 서로에게 대하여 관심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별로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둘 다 그런 생각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며, 그녀가 지향하는 꿈과, 제가 목표로 하는 꿈이 서로 닮아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이후부터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커플이라 불릴 정도로 가까워진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도중, 그녀가 갑작스레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간의 기능도, 심장의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장기간의 수술로 목숨을 연명해온 점이었습니다.
그녀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까지,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볼 때면, 항상 행복하게 웃는 얼굴로, 결코 고통스런 기색따위는 내비치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만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 뒤, 그녀가 의식을 되찾은 이후부터 저는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장난도 치며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으나, 자칫 잘못해 몸을 자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광경을 뇌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지금에서는 확실히 알지만 그 때는 알지 못했던 그녀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일 겁니다. 결코 그녀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웃게 해주고 싶다, 그것 외에 아무런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큰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결혼해 달라고 하자!
누군가의 재촉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 날 당장… 은 그녀의 집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소심한 성격은 여전히 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나흘 밤낮으로 밤잠을 설친 후에야 결국 그녀의 집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들은 몇 가지 조언을 듣고는 너무나도 대책없이 찾아왔고, 고백 방법이 황당했던 터라 그녀도 그녀의 부모님도 적잖게 놀란 기색이었죠.
확실히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기 그지 없는 고백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상대도 확인하지 않고 다짜고짜 웨스트라이프의 My love를 부르기 시작했으니까요. 결국 그 노래는 장모님이 듣게 되는 당황스런 결과를 낳았지요.
집 안에 들여보내진 저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움츠려 있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 두 분 다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머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습니다.
"자네에 대해서는 딸에게 자주 들었네. 같은 꿈을 가진, 아주 멋진 남자가 있다고…… 하지만 자네도 우리 딸과 친하다면 알고 있겠지? 그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아. 언제, 어떻게, 갑자기 덜컥 죽어버릴지 몰라.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갈 수도 있겠지."
자신의 딸의 상태에 대해, 그것도 자신의 딸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말씀을 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순간 기세가 꺾였지만, 저는 이미 그녀에게 평생을 받쳐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동안 어머님의 반대가 계속되었으나, 끝끝내 제 결심을 알아채신 것인지, 허락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큰절을 올리는 순간까지 한 마디도 하시지 않은 아버님은 결혼식날 눈물을 보이시더군요. 저같은 놈에게 딸을 보내는 심정 때문이었을지, 어떤 마음인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부모님은 너무나도 쉽게 허락을 내리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말이죠.
'니가 행복하면 다 된거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모아, 아내와 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아내가 종종 '돈 어디서 났어?'라며 두 눈을 부릅뜨곤 했지만, 적당히 얼버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아내는 최고로 무섭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다며 부탁해왔습니다. 그녀의 몸 상태를 생각해 볼 때, 아이를 갖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가 된 그녀는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아이를 갖는 것을 고집했죠. 저는 그럴 바에 입양을 하자, 그런 말을 했지만 어디 제가 이길 수 있는 대상인가요, 제 아내라고 하는 사랑스런 사람이.
결국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배 속에서 점차 부풀어 오르는 나의 자식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내는 항상 배를 쓰다듬으며, '나의 진주야. 건강하게 자라주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부풀어가는 배를 조개에 비유한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내의 뱃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는 제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니요, 제 자신에게 증오를 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아내의 몸 상태는 아이를 갖지 않은 채로도 길어봐야 8년, 짧으면 3년 정도를 살 수 있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운이 좋아서 죽음을 피해간다고 해도, 수명은 더욱 짧아지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될 지도 모르고, 최악의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인,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글귀가 그녀에게 새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걸 이제와서 떠올리다니, 남편되는 자로서 한심하고 나약하고 쓸모없기 그지 없어, 아내가 고통에 시달릴 때면 하늘에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만약 하늘이 있다면, 제 아내를 저의 사랑스런 보물을 이 세상에 남겨주십시오….
그러나 이 하늘이란 것은 어찌도 무심한지,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 그 날 저의 필사적인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내는 분만의 쇼크를 이겨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아 힘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저에게, 한 간호사가 다가와 아이를 보여주며, 아내가 마지막으로 전해달라고 했다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과 보낸 시간은, 행복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창피한 것도 잊은 채, 아이를 부여잡고 펑펑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내의 기일이 되기 며칠 전, 오징어와 과일음료 몇 병을 들고 산소를 찾았습니다. 과연,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기 때문인지 산소는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분명 작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잡초들이 자라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마치 생전에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던 아내가 꽃이라고는 구경하기 힘든 이 장소에서 잡초라도 키워보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키운 것 같은 생각이 들러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아내의 무덤을 마주보고 앉아 준비해온 두 잔의 잔에 음료를 한가득 따라놓았습니다. 나 홀로 '건배'를 외치고 음료를 들이켰습니다. 제 손에 잡힌 잔에 담긴 음료는 계속해서 줄어만 가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내의 음료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제가 죽는 날까지 아내가 음료를 마시며 웃음짓는 모습은 볼 수 없겠지요.
그렇게 혼자서 음료를 홀짝거리고 있자니 도중에 졸음이 쏟아져 그 뒤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혼미한 정신을 다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주변은 온통 흑빛으로 뒤덮인 후였습니다. 아이들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고, 회사의 준비도 해야하니 이만 산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루가 다 가도록 아내의 곁에 붙어있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못다한 이야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같이 말하고 싶은 것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저는 그렇게 맘 편하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슬플 따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끄러운 것을 참아가며 아내에게 고백하며 불러주었던 그 노래, 웨스트라이프의 My love를 들으며 아련한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과연 제 아내는 정말로 저와 함께해서 행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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