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어제다. 내가 퇴근한지 얼마 안 돼서 작은방에 들어가 잘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주안역으로 가기 위해 신도림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신도림 맞은쪽 길 가에 앉아서 자전거를 조립해 파는 노인이 있었다. 자전거를 한 대 사가지고 가려고 조립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할부로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소라급 하나 가지고 할부를 하려오? 비싸거든 투어니급을 보오.”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은행가서 돈뽑아올테니 조립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조립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조립하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체한다. 차 시간이 바쁘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반차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조립한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려. 차 시간이 없다니까‥‥‥.” 노인은 “가서 노브렉픽시나 타오. 난 안 팔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조립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토크값대로 조여야지, 조이다가 놓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조립하던 것을 숫제 거치대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블로그에 올릴사진을 찍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노인은 또 조립하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바텀브라켓 나사산이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바테잎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감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자전거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딸랑이도 안달아줬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벽에걸린 데로사 프레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미케닉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드러운 코팅장갑과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집에 와서 자전거를 내놨더니, 아내는 얼마짜리냐고 야단이다. 전에 타던것보다 좋아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좋은거 아니라고 둘러댔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면, 탑튜브가 너무 부르면 페달링할 때 허벅지가 잘 치이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싯포스트가 너무 안 높으면 무릎이 펴지지 않고 무릎나가기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지오메트리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등짝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로드사이클은, 데칼이 떨어지면 쪽을 대고 물수건으로 겉을 씻고 뜨거운 인두로 곧 다리면 다시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 알루미늄은, 데칼이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프레임에 데칼을 붙일 때, 질 좋은 스티커를 잘 띠어서 풀을 흠뻑 칠한 뒤에 비로소 붙인다. 이것을 “데칼 붙인다.”고 한다. 카본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카본차를 사면 입문급의 것은 얼마, 그보다 나은 것은 얼마의 값으로 구별했고, 구덧 구포한 것은 3배 이상 비쌌다. 구덧 구포란, 덧대고 말리기를 아홉 번 한 것이다.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남이 보지도 않는데 아홉 번씩이나 덧델리도 없고, 또 말만 믿고 3배나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이태리장인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감성 자전거를 만들어 냈다. 이 자전거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헬멧과 클릿슈즈라도 사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쪽 데로사 프레임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으로 날아갈 듯한 헤드튜브 끝으로 우담바라가 피어나고 있었다. 얼마나 비싸길래 안팔리고...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우담바라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자전거를 조립하다가 유연히 헤드튜브 끝의 우담바라를 바라보던 노인의 심란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와이프가 북어를 뜯고 있었다. 전에 MTB샀을때 더덕북어로 쿵쿵 두들겨서 맞던 생각이 났다. MTB를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라쳇 구르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어제, 자전거 조립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