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인진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던 기억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군대 제대하고 복학 때까지 운동과 알바로 소일하던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 하던 알바가 피시방 야간알바여서 퇴근 후에 점심 무렵까지 퍼질러자고 있었는데, 같은 집에 살아도 서로 나누는 대화가 하루에 세 마디를 넘지 않던 남동생놈이 왠 일로 다급하게 저를 깨우더라구요. 뭔 일인가 해서 쌍욕을 하면서 일어났는데, 일어나서 보니 이놈이 비라도 맞았는지 홀딱 젖어있었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제가 자고있는 사이에 이상한 교회 같은 곳에서 전도를 온 모양이었어요.
제가 깨어있었거나 혹은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면 적당히 대꾸해서 돌려보냈을 것인데, 동생 성격이 워낙 순하다보니 모질게 거절하거나 싫다고 말을 못하고 그냥 집안까지 들인 겁니다. 거기다가 당시에 저희 집 문에는 '천주교 신자의 집'이라는 십자가 모양의 스티커를, 사실은 할머니 돌아가신 이후로 아무도 성당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진작 떼었어야 옳지만, 잡스러운 전도를 방지할 목적으로 떼지 않고 그냥 붙여놓은 상태였는데, 그걸 무시하면서까지 초인종을 누른 양반들이었으니 상대방들도 여간내기들은 아니었겠죠.
어쨌든 그렇게 집에 들여놓여놓고서는 한 시간 넘게 요상한 설교를 듣다가, 그쪽에서 '세례를 받으시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바람에 알겠다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요상한 남자가 한 명 더 와서는 자기를 화장실로 데려가더니 자기 머리에 손을 얹고 요상한 주문 같은 걸 외우더만 양치할 때 쓰는 컵에 물을 받아 머리에 부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기들과 함께 자기네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더래요. 그 때쯤 되어서야 덜컥 겁이 난 동생놈이 '형이 방에서 자고 있는데 형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둘러대고는 와서 절 깨운 겁니다.
듣고 보니까 웃기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울먹거리고 있는 동생 얼굴을 보니까 화도 나고, 한참 꿀잠자다 도중에 깨버린 짜증까지 더해져서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동생 손에 이끌려서 거실로 나가보니까 웬 남녀가 앉아있다가 절 보고는 떨떠름한 얼굴로'안녕하세요' 하더군요.
이쯤에서 이후의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 외모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매우 까칠하게 생겼습니다. 모든 일에 아무런 협조도 하지 않을 것처럼 생겼죠. 무슨 일을 할 때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방해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게 생겼습니다.
전도하러 온 두 사람은 제가 방에서 자고 있는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누구세요?'하고 물으니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교회에서 좋은 말씀 전하러 나왔습니다'하면서 요상한 팜플렛 같은 걸 내미길래, 받지는 않고, '교회요?'하고 퉁명스레 대꾸하고는 두 사람 얼굴만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오줌이 마려워져서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싸고, 오줌을 싸고 보니 목이 말라서 냉장고에서 우유를 한잔 마시고, 우유를 마시고 보니 입이 텁텁한 것 같아서 양치를 했죠.
제가 양치를 하니까 동생이 슬그머니 옆에 오더니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방에 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더라구요. 전도쟁이 년놈들은 그러는 동안 거실 바닥에 앉아 멀뚱히 있는데, 제가 양치하는 와중에도 화장실 문 열어놓고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굉장히 뻘쭘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분이 세례를 받으시고 어쩌고... 형님분하고 같이 어쩌고...'하는데,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아무 대꾸도 안하고 계속 양치만 했습니다.
양치 끝나고 동생더러 '점심 뭐 먹을래?'하니까, 자기는 짬뽕이 먹고 싶답니다. 그래서 집 앞에 중국집 새로 생겼는데 나가서 먹자고 하고 동생하고 같이 나갔습니다. 전도쟁이 년놈들도 얼떨결에 따라나오기는 했는데, 제가 아예 본 척도 안하고 동생 데리고 중국집으로 가니까 우물쭈물거리다 차마 따라오지는 못하고 봉고차 타고 가더라구요.
짬뽕 먹으면서 동생을 엄청 놀렸는데, 동생이 자기도 창피한 건 아는지 대꾸도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되서 짬뽕만 먹더라구요. 보기 좀 안쓰럽기도 해서 거기서는 그쯤하고, 저녁에 부모님하고 저녁 먹으면서 또 놀렸습니다. 아버지는 다 큰 놈이 한심하다고 혀를 끌끌 차시고, 어머니는 '우리 착한 귀염둥이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면서 전도쟁이 년놈들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셨죠.
아, 오해가 있을까봐 밝힙니다만, 당시에 동생의 나이가 스물이었을 겁니다. 스무살에 어머니로부터 귀염둥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혹시라도 미취학 아동인가 하고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덩치 저보다 더 크고 전혀 귀엽게 생기지 않았는데 성격만 순둥이인 놈입니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배경입니다.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후, 포기하지 못한 전도쟁이 년놈들이 다시 저희 집 초인종을 누르면서 시작됩니다.
그날은 안타깝게도 제가 집에 없었고, 어머니는 마침 장을 보러 나가셔서 공교롭게도 동생 혼자 집에 있었답니다. 근데 동생도 며칠 전에 당한 것이 있어서인지 문을 열어주지는 않고 '형이 그런데 가지 말래요'하면서 제 핑계 대면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네요. 전도쟁이들도 이번에는 동생 혼자 있는 것 같으니까 끈질기게 문 앞에서 '그러지 말고 문 열고 얘기하자'는 식으로 계속 사람 귀찮게 하고 있는 와중에..
장을 보러 나가셨던 저희 어머니께서 돌아오십니다.
왠 처음 보는 남녀가 집 문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대번에 상황을 파악한 어머니는, 시끄럽다는 주위사람들의 불평에 나름대로는 꾹꾹 눌러담아왔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눌러담은 목소리조차 시끄러워 이따금 아버지로부터 핀잔을 듣곤 했던 그 남다른 목청의 리미트를 완전히 해제하셨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목격했던 윗집 아저씨가 후일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뭔가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고 했죠.
'이 개새~들이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뭐 대충 이런 식의 내용이었을 겁니다. 어머니도 당시에 너무 흥분하셔서 정확히 뭐라고 쏘아댔는지 잘 기억을 못하시겠다고 하셨죠. 아무튼 쌍욕이었을 겁니다. 목청이 워낙 크니까 윗집 아저씨까지 무슨 일인가 해서 내려오셨는데, 이 아저씨로 말씀드리자면 인근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시던 분입니다. 그러다가 본인의 아버지로부터 크게 재산을 상속받으신 이후에는 퇴직하시고 팔자 좋게 유유자적하시던 양반이죠. 저희 아버지와는 하루 건너 이틀 꼴로 술마시러 온 동네를 쏘다니던 술친구이시기도 했구요. 그러니까 그날 오후에도 집안에서 하릴없이 홀로 시간 보내시다가 아래층에서 뭔가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리니까 내려와본 겁니다.
앞에서는 멀쩡히 생긴 아줌마가 태어나 들어본 적 없는 놀라운 샤우팅으로 자기들한테 욕을 퍼붇고, 윗층에서는 키가 180이 넘는 수염난 근육 거구가 '재수씨, 뭔일이대요?'하면서 건들건들 내려오니까 전도쟁이 년놈들도 아마 상당히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뭐라 대꾸도 못하고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다가, 결국 아랫집 아줌마랑 그집 꼬맹이들까지 계단 아래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니까 더이상 못 버티고 냅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답니다.
근데 저희 어머니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 개새~들이 날 더운데 왜 이집 저집 쏘다니면서 헛짓거리들을 하고 돌아다니냐, 콱 된장을 발라벌라' 하시면서, 장바구니 속에 있던 된장을 꺼내서 쫒아갔답니다.
전도쟁이들은 너무 당황스러웠는지 봉고차 시동걸고 얼른 떠나려는데, 저희 어머니께서는 기어코 그 봉고차까지 쫓아가 뒷쪽 번호판 주변에 된장을 발라놓고 돌아오셨답니다.
저는 운동 갔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머니는 그제까지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말씀하시는 내내 씩씩거리셨죠. 그러나다 대뜸 봉고차 옆에 붙어있던 교회 이름을 봐놨다며, 거기 어디어디에 있는 교회인데 지금 그 교회 문앞에 된장을 바르러 갈거니까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셔서 말리느라 혼이 났습니다.
아무튼 된장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습니다만, 그후로도 여전히 그 교회에서는 남녀가 짝을 이뤄 이집 저집 전도를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날 자기들을 끝까지 쫓아와 기어코 봉고차 뒤쪽에 된장을 발라놨다는 걸 모르는 건지, 며칠 뒤엔가 집 앞을 지나가는 그 봉고차를 슬쩍 봤더니 그 때 어머니가 발라놨던 된장이 말라붙은 채로 여전히 있더라구요.
글을 짧게 재밌게 쓸 줄을 몰라 재미없이 긴 글이 되었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 생각해도 재밌는 기억입니다. 동생놈을 평생 놀려먹을 구실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