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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신형 제네시스 시승기 실내에 앉아 얇은 카드키가 놓여있는걸 확인하고 시동 버튼을 눌렀다. 전자음만 나지 않는다면 시동을 걸었다는 사실은 운전자만 알았을게 분명하다. 너무 조용해 다른 승객은 눈치도 채지 못챌 정도기 때문이다. 렉서스를 능가하는 수준의 정숙함이다. 차를 발진시키는 느낌도 차분하다. 진동도 없는데다 조용함은 마치 시동을 걸지 않고 움직이는 것만 같다.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가는 길은 너무 좁았다. 카메라 버튼을 누르니 차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서라운드 뷰’가 작동한다. 이 또한 깔끔하다. 세단의 서라운드뷰는 카메라 위치가 낮아 보이는 면적이 좁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화상 프로세싱이 잘 돼 있어 꽤 넓은 부분이 왜곡 없이 보였다. 이 부분은 업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도로에 나가니 앞유리에 비춰지는 속도와 내비게이션이 인상적이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 기능인데, 차선변경을 할 때 사각지대에 차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신기하긴 한데, 앞유리에 있는 그림을 차선 변경할 때 볼 수 있을까 싶어 불필요한 기능으로 보인다. 차를 가속해본다. 과연 현대차 양웅철 부회장이 말한대로 밟으면 밟는대로 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감탄은 잠시 뿐, 얕은 언덕길을 가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벌써 힘이 부친다. 핸들에 달린 변속버튼(패들시프트)으로 기어를 한단 낮춰본다. 정숙했던 엔진은 갑자기 카랑카랑한 전형적인 현대차 엔진 소리를 토해낸다.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고충을 토로하는 듯한 소리다. 엔진에게 미안해서 도저히 더는 밟을 수 없겠다. 독일차들은 더 듣고 싶어 자꾸 더 밟게 되는 엔진 소리를 내는데, 소리 크기는 비슷하지만 질감은 정반대로 느껴진다. 이 차는 무려 315마력. 꽤 강한 엔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안나가는건 잘 이해가 안됐다. 아마 성인 남성 3명이 앉은 탓도 있겠지만 사양표를 보니 공차중량이 2톤이나 됐다. 덩치가 더 큰 에쿠스 3.8(1915kg,334마력)보다 85kg이나 무겁고 힘은 약하기 때문인 것 같다. AWD모델에 282마력 3.3엔진을 장착해서는 좀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다. 연비는 최근 판매되는 동급 차중 가장 떨어진다. 시승차의 공인연비는 8.5km/l인데 시승 내내 켜져 있던 트립컴퓨터가 나타낸 연비는 5km/l를 조금 넘겼다. ◆ 현대차 최신 기술의 집약체 강남 도로의 정체가 시작돼 도로가 답답해졌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켰다. 이어 뒷사람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뒤로 돌아보면서도 걱정은 없다. 차가 알아서 앞차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 차에 장착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이전에 비해서 한단계 진화했다. 이전 제네시스는 시속 30km 이상에서 정속주행할때만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번 제네시스에 장착된 크루즈 컨트롤은 완전 정차상태에서부터 작동하기 때문에 정속주행보다 오히려 막히는 시내에서 더 유용하다. 크루즈컨트롤만 동작시켜 놓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는데도 차가 알아서 정지하고 가속을 했다. 하지만 수신호를 하는 공사장 인부가 갑자기 나타나 그대로 들이받을 뻔 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볼보와 달리 아직 사람을 인지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전방을 살피고는 있어야 한다. 이 기능은 독일 콘티넨탈의 기술로 만든 부분인데 꽤 깔끔하게 동작한다. 흥분한 승객들이 이산화탄소를 너무 내뿜은 걸까. 갑자기 'CO2 농도 측정기가 동작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화면에 표시됐다. 이런걸 굳이 왜 알려주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이 기능이 있어 실내 공기를 깨끗하게 해준다고 자랑했다. 이는 아마 재작년 그랜저에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는 문제가 크게 제기되었던 것을 감안해 만든 기능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건 일산화탄소(CO) 측정기가 아니라 이산화탄소(CO2) 측정기여서 좀 엉뚱해 보인다. 이어 접어든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꾹 밟고 차를 미끄러뜨리려 하는데 여간해선 미끄러지지 않았다. 타이어도 편평비가 좋고 서스펜션도 우수하게 제작돼 차가 그다지 기울어지지 않는다. 핸들은 가운데 부분에선 직진을 돕고 급하게 돌리면 더 많이 꺾이는 가변 기어식 R-MDPS를 적용했는데, 이 덕분에 핸들 조작감도 꽤 좋아진 느낌이다. 제네시스에는 현대가 자체 개발한 H-TRAC이라는 이름의 4륜 구동 시스템이 장착됐는데, 이 덕택에 코너에서도 덕을 본 것은 아닌가 싶었다. 현대차의 여러 연구원들에게 물어보고 있으나 이 시스템은 후륜:전륜의 비율을 100:0에서 0:100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고 하는 연구원이 있는가 하면 50:50이 한계라는 연구원도 있다.
하지만 LSD(좌우 구동축간 회전 차이를 보정함)가 없고, 좌우 바퀴간에 토크배분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대차 직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BMW와 유사한 트랜스퍼 케이스 방식으로 동작하고 있어서 기대가 컸는데 실상은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이같은 차가 4륜구동을 험로주파 목적으로 할리는 없고 결국 고속 주행시의 안정감을 위한 것일텐데 자유롭게 토크를 배분하지 못한다니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 이다. 아직은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과정' 정도로 보는게 좋겠다. ◆ 훌륭한 차란 무엇인가 제네시스는 ‘좋은차'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독일차들 상당수는 시끄럽지만 좋은차고, 렉서스는 조용하고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에 좋은차다. 로터스는 작고 빠릿해 훌륭하다. 단지 나쁘지 않은 차를 ‘훌륭한차’나 ‘좋은차'라 하는건 좀 부족하게 느껴진다. 추구하는 방향이 있고 이를 최고로 달성하면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좋은 차'가 된다. 그런데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방향은 뭐였을까. 제네시스의 길다란 보닛이나 각 문짝 비율을 보면 영락없는 BMW다. BMW는 실내 공간이 좁은 것으로 유명한데 커다란 엔진을 넣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차체의 상당부분을 엔진룸으로 할애하기 때문이다. 긴 보닛에 짧은 트렁크 디자인은 결국 승차 공간을 뒤쪽으로 밀어낸 디자인이므로 실내공간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공간을 넓히는 기법인 ‘캡 포워드(승차공간을 전진시킴)’의 반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신형 제네시스는 가장 큰 엔진이 겨우 3.8이면서 이렇게 넓은 엔진룸을 둔다는건 의외다. 미국 시장에는 5.0리터 제네시스를 판매하긴 하는데 그 때문이라기엔 숫자가 너무 적다.
BMW는 이같은 디자인의 넓은 엔진룸이 갖게 되는 문제점, 즉 전륜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5시리즈의 가장 낮은 사양인 518d(국내 미출시)부터 보닛과 휀더, 엔진 블록 등 상당부위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현대차는 넓은 엔진룸을 그대로 유지한채 계열사 현대제철이 새로 개발한 '철'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에는 포스코의 철을 이용해왔지만, 최근 나오는 현대기아차의 신차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열사를 돕고자 현대제철이 내놓는 강판을 대거 적용하고 있다. 무게가 기존 대비 250kg이나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형 쏘울과 신형 제네시스 등 최근 현대기아차에서 내놓는 차들은 무게가 무거워지고 엔진은 연비 위주 세팅으로 바뀌며 최대 출력이 약해지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 흐름과 정반대로 달리는 셈이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의 부당함도 문제지만 현대제철이 현대차 발목을 붙잡는 현실이 안타깝다.
차량 가격이 이전에 비해 크게 높아진 점도 문제다. 신형 제네시스의 판매 가격은 옵션과 트림에 따라 4660만원~7210만원이다. 이전 모델 (4338~6394만원)에 비해 322만원~812만원 가량 인상된 셈이다. 최상급 모델 후륜구동도 6960만원으로 에쿠스 기본 모델(6880만원)보다 비싸다. 차량 자체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느끼는 경험도 아직 멀었다. 이 차를 구입해서 장기 시승을 하기 위해 강남의 유명한 매장을 찾았는데, 영업사원은 손님에게 언성을 높이고 특정 차종을 강요하기도 했고, 계약서를 쓰는 동안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등 수입차 매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 외관에서 BMW, 아우디, 볼보가 뒤섞인듯한 이미지를 주고 실내도 BMW를 대놓고 어설프게 베낀 듯한 느낌이 드는 점도 고급차 소비자들에게는 좋지 못한 경험으로 느껴질 듯 하다. 돈을 적게 내고 고급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사는 것은 말하자면 '염가 시장'이고, 돈을 더 주고 오리지널의 경험을 사는 것이 바로 '프리미엄 시장'이다. 그런 면에서 신형 제네시스는 아직 '프리미엄'에 올라서지 못했다. 그동안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기술을 한데 모아 내놓는 차로 현대차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지표라 할만 했다. 그런데 지금 만든 차는 그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만 같다. 최선을 다한게 아니니 기술 지표라 할 수도 없고, 마땅히 추구한 방향이 없이 여기저기서 좋은 것을 한데 모았으니 좋은차인지 아닌지 평가하기도 어렵다. 다만 나쁘지 않은 차임은 분명하고 장차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발전의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 ||||||||||||||||||||||||||||||||||||
김한용 기자 [email protected]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http://motorgraph.com) > 한줄요약 - 좋지만 훌륭하지는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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