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지상최강의 소원수리를 시전한 상병 아저씨 SSUL' 이 베오베에 간 기념으로 두번째 썰 올려봅니다.
절대 공모전 준비하다가 귀찮아져서는 아니구요,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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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2년 10월, 선선해지기 시작한 가을날, 어느 토요일이었다.
군단장님의 특명으로 유해발굴 실시 + 호국훈련을 겸하게 되어 상병생활에 실로 애로사항이 꽃피는 나날인데다가,
북녘의 임진강 포격드립으로 대대장병들의 대북적개심이 고취된 상황이었다.
(여담이지만 우리부대를 포함, 파주 전방 사단이나 9사단 출신 장병들에게 대북전단 살포단체(대표자 박모씨)는 정말
북괴만큼이나 악랄한 존재였다. 전방사단은 자기 섹터에서 풍선 띄우는 사람들 저지하는데에다가
풍선 날아온다는 비보만 접수되면 일과 내내 비상대기에 돌입하고, 후방의 애꿎은 9사단은 역풍맞고 떨어진 전단 수습하는 데 뺑이를 쳤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주말은 소중한 법,
점심식사로 나온 소불고기를 놓고 나는 한 달 위 선임인 취사분대장과 함께
'소불고기 ㅋㅋㅋ 고무줄 ㅋㅋㅋ 아놔 ㅋㅋㅋ' '너 취사지원 콜? ㅎㅎㅎ' 이러고 놀고 있었다.
수송후임과 '타이어 때우는 지렁이고무 씹으면 이런 느낌이냐?' 하며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애들 뭐 재밌는 거 보나? 싶어 어슬렁거리며 생활관에 들어오니 어김없이 당직사관의 본부중대 집합.
인자한 군수보급관님은 "점심도 맛나게 먹었고 막사청소 한바퀴 돌고 쉬자 ^^ 이생키들 왜 막사 앞에 꽁초를 버려두냐?" 라며
우리들을 주말작업에 투입하려 했고, 우리는 "아놔 저거 작전장교가 야근하면서 피우다 버린건데..."라는 불만을 집어삼키며,
그래도 군수보급관님은 인자하므로 이거만 하면 PX에서 냉동고를 통째로 꺼내와도 뭐라 안할거라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청소작업에 투입되려는 그 찰나에 상황을 보고 있던 선임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딱 한 마디 던졌다.
"실상황 진돗개 둘이랍니다."
"실상황 진돗개 둘이랍니다."
"실상황 진돗개 둘이랍니다."
전부 ?!????! 한 상황이 되어 다시 생활관으로 복귀, 허겁지겁 전투복으로 환복했다.
물론 나는 후임들 엉덩이를 걷어차며 단독군장을 채우면서 빠르게 지통실로 향했다.
지통실은 정신이 없었다. 교환대, 상황병, 당직사령 전화 모두 겁나 울려대기 시작했고, 화상회의에서도 뭐라 떠드는 듯 했다.
"진돗개 둘? 뭔 상황이랍니까?"
"이거 봐봐. 전화 오면 같이 좀 받아주고."
분 단위로 전문이 오가고 있었다.
XX시 XX분 - 남북관리구역 북측 전진초소에서 미상 총성 3발 발생한 것 청취
경의선도로는 개성공단으로 통하고, 군사분계선을 전후한 이 경의선도로를 '남북관리구역' 통칭 CIQ라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아무튼 남북이 대치한 곳이다보니 초소가 남, 북 모두 있는데
북측 초소에서 총성이 발생, 병사 한 명이 경의선도로를 그냥 냅다 뛰어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일단 상황 자체는 몇 시간 후에 해제되었다. 추후에 알게 된 자세한 내막은 이렇다.
탈영한 병사는 배고픔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3인 1조로 초소에 근무하던 중 자신의 분대장과 소대장을 쏜 후
무작정 도로를 통해 뛰어 내려왔고, 남측 초소에서는 근무자들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북측 병사를 안전하게 후방까지 데리고 내려왔다.
우리는 후에 CCTV로 자세한 내막을 교육받고 당시 근무자의 증언도 들었지만, CCTV내용이 군사대외비 ~ 어떤 건 III급이었기 때문에
자세하고 리얼한 상황묘사는 생략한다.
탈북한 병사나 민간인이 귀순할 경우, 우리 측에서의 대응도 표준 지침이 있다.
일단 안심시키고, 목이 마르면 수통을 주어 목을 축이게 하고, 숨겨둔 무기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
이렇게 신변을 확보하면 가까운 막사로 데리고 가서 밥과 부식을 제공하는 것도 지침에 전부 나와 있다.
이 북측 병사도 막사로 와서, 점심식사와 육개장사발면, 초코파이와 맛스타를 받았다고 한다.
북측 병사는 허겁지겁 자기한테 준 음식을 전부 다 먹고, 자신을 데려온 경비대장한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병사 : 남측에서는 병사도 이런 밥을 먹는가?
대장 : 그렇다. 오늘 병사들이 먹은 점심식사다.
병사 : 믿을 수 없다. 북한에서는 중대장도 이렇게 먹기 힘들다.
이 다이얼로그를 본 후, 저는 지렁이고무라고 느꼈던 소불고기가 누구에게는 지상락원의 그 어떤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깊이 뉘우쳤습니다.
사실 중요한 건 이 사건이 언론을 탄 후에 저희 반대쪽 끝 모 사단이 "우리도 탈북자 안전유도 성공!" 했는데
그게 국군역사상 길이 남을 '노크귀순' 사건이었던 덕분에....
저는 휴가 나와서 '야 귀순자 내려왔었음 쩔지?' '어? 너네가 노크귀순임?' 이 얘기를 수십번도 넘게 반복했다는 겁니다.
- 끗
다음편은 '제대하고 6개월, 갑자기 육군본부가 나를 찾았다' 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