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군의 대대적 침공에 자중지란으로 패색이 짙던 남명조정은 크게 패해 도주했다. 본거지 광동성에서 광서성(오늘날엔 광서족 자치구가 있다)의 오주(梧州)란 곳으로 쫓겨났지만 그마저 계속된 청의 추격에 연달아 계림(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중국 관광지인 구이린이다), 평약 등을 전전한다. 이때부터 수년동안 청과 숨바꼭질을 벌였고 영력제는 이곳저곳을 쫓겨다니니, 얼떨결에 중국 중남부지방 대장정을 벌인 셈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도망다닌다고 해서 청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광서순무 구식사란 이가 자청하여 청에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구식사와 수천병력은 장렬하게 전사하고 만다. 그것이 중국 중남부에서의 최후의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완전히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한 영력조정은 당시 전란의 영향이 끼치지 않았던 운남(雲南)성으로 향하게 된다. 이 운남성은 중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미얀마, 베트남, 태국 등과 국경을 접해 여차하면 외국으로 튈 수도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린 결단이었다.
앞서 말했듯 이 운남일대는 당시 남명의 세력권이었으며 청이 손대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바로 그곳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항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허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 운남마저 맹추격해온 청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운남의 성도(省都), 곤명(昆明)도 점령당하고 만다. 이때 또 다시 남명조정에선 도망갈 궁리를 하는데 제일 힘을 얻고있던 주장은 운남성의 바로 윗동네, 사천성으로 천도하자는 의견이었다. 허나 여기에 태클을 거는 이가 있었으니 앞서 여러번 언급한 바 있는 재상 마길상이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사천성으로 향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는데 이유인즉 이러했다.
"사천은 본래 장헌충의 소굴이었던 곳으로, 그곳 인심은 흉흉한데다 지금은 청의 영토가 되어있소. 시행해선 안될 말이오."
언뜻 보면 그럴 듯하나 사실 그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그때 영력조정엔 저번 글에 나온 이정국, 손가망과 같이 각자 장헌충과 이자성의 부장출신들인 장수들이 많았는데 특히나 장헌충의 부장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헌데 이제 본래 그들의 출신지로 향하게 되자니 그곳을 기반으로 세력을 마련해두었던 그곳 출신지 장수들의 군권과 세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신가하다. 아무튼, 재상인 마길상이 반대하니 일이 시행될리가 없었다. 그리고 마길상은 의견을 하나 내놓았는데 사천성보단 당시 버마로, 즉 오늘날의 미얀마로 가자는 안이 그것이었다. 그곳 버마에서 힘을 빌려 국토를 탈환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유인즉, 제 아무리 우리의 세력이 협소하고 궁핍하다고는 하나 명색이 대명제국의 황제인데 어찌 외국에서, 그것도 한때 우리에게 조공을 바쳐오던 나라에서 망명살이를 하겠냐는 질책이 그 사유였다. 허나 마길상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반론을 제기하는데, 검국공 목천파(沐天波)란 인물만 있으면 우린 든든하다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이 검국공 목천파란 인물은 운남의 군벌로 조상대대로 운남지방에서 지내오던 목(沐)씨 가문의 사람이다. 그의 조상은 운남에서의 영향과 세력을 인정받아 명 초기, 명 태조 주원장으로부터 검국공이란 작위를 하사받고 운남에서의 자치권을 인정받았던 것인데 그 작위는 대대로 내려와 이 이야기의 배경인 명 말~남명 때에까지 계승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엔 운남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외국들에까지 압력을 넣을 정도로 힘이 있었다고 하니 그 위세를 알만하다 하겠다.
이것이 마길상이 그토록 자신 있어하던 이유였다. 그리하여 결국 1660년 쯤, 650여명의 영력제 일행은 버마로 도주한다. 먼저 버마 국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것이고 망명을 요청했을 것이다. 당시 버마의 국왕은 '망백(중국식 음역이다)' 이란 이로, 이 영력제 일행의 소식을 접하자 크게 고심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없이 그저 동정심에 그들을 받아줬다간 지금 중국의 새 주인이 된 청이 무슨 해코지를 하려 들지도 모를 노릇이었을테니 말이다. 현재 중국의 대세는 이미 망해버린 명이 아니라 청인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우선은 만나보기로 결정한 망백은 영력제 일행의 망명을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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