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이종사촌이 단짝친구 같았던 소진에게
소진이에게.
안녕, 소진아. 나 승희야. 우리 초등학교 때부터 꽤 자주 편지 주고받았었는데, 지금 내가 이런 일로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됐네. 오랜만에 네가 보내줬었던 편지들을 읽어봤어.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도 우리 서운한 일 있으면 편지로 사과도 하고, 약속도 되게 많이 하고 그랬는데 기억나?
우리 대학교 졸업하면 같이 살기로 했었잖아. 서로 여러 문제로 많이 힘들어 했어도 나중에 같이 살 그날 생각하면서 힘내자고. 그때는 우리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면서 살자고. 고양이나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고 네가 면허 따면 주말에 뮤지컬도 보러 가고 전시회도 다니면서 그렇게 재미있게 살자고 그랬는데, 너 이렇게 떠나버리면 나 혼자 남아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 이제 힘들면 누구한테 투정부리고 누구한테 이야기하고 누구한테 기대야 하는 거야?
사촌이어도 생일도 한 달 밖에 차이가 안 나서 친하기도 했지만 우리 서로 의지도 많이 하고 충고도 해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친구이자 가족으로…. 그런 너를 보내줘야 한다는 게 사실 나는 아직도 못 믿겠고 믿기 싫어. 죽을 만큼 힘들어도 가족이랑 내가 있어서 산다는 말 나 평생 못 잊을 거야. 나도 네가 있어서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이겨낼 수 있었어. 그런데 이제 너 없이 내가 어떻게 버텨야 할까? 소진아 너무 보고 싶어. 나는 네 목소리를 잊어버릴까 봐 그게 겁이나. 네가 부르던 노래 들을 때마다 네가 너무 보고 싶다.
여름방학이면 네가 대전으로 오고 겨울방학이면 내가 안산으로 갔는데, 이제 방학 되면 너무 허전하겠다. 명절에 시골에서도 너 없이 너무 허전할 것 같아. 시골이라 놀 데가 마땅치 않아서 집앞 냇가에 자주 갔었잖아.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사촌동생의 세발자전거와 킥보드를 빌려타고 냇가를 따라 마을을 돌며 까먹던 찐 밤 생각나? 되게 맛있게 먹었었는데, 이제는 같이 먹을 수 없겠네. 너 이제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수학여행 가기 전에도 머리 아프다고 그랬잖아. 그 전에도 천식으로 한참 고생하고. 네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병원은 갔다왔느냐는 걱정 밖에 못해줬는데 그게 너무 미안해.
장례식장에서 네 영정사진 처음 봤을 때 하고 싶은 말 되게 많았었는데, 이제는 “아프지 마”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어. 장례식장에 상주하면서 앉아있는 내내 네 사진을 바라보는데 딱히 무슨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계속 눈물이 나더라. 나는 내가 눈물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죽을 만큼 보고 싶고 죽을 만큼 울었던 것 같아. 네가 춥고 무서웠을 순간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어. 널 위해 할 수 잇는 게 구조되길 기다리는 거 밖에는 없다는 현실이 미치게 답답하고 나 자신이 미치게 한심했어. 넌 추위도 많이 타는데 얼마나 추웠을까. 나만큼이나 겁이 많은 넌 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직 해보지 못한 것도 많고 해볼 것도 많고 하고 싶었던 것도 많을 텐데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구조하러 와주기만을 얼마나 믿고 기다렸을까. 가슴이 뭉개진다는 말 솔직히 이해 못 했었는데, 이제는 매우 잘 알 것 같아. 난 아직도 가끔 너에게 카톡을 보내. 네가 보지 못한다는 것도 아는데 괜히 카톡 한 번 보내보고 바뀌지 않을 것도 아는데 괜히 네 프로필 사진 한번 더 확인해보고…. 나 진짜 못됐다. 한편으로는 너 마음 편하도록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못 보내주겠어. 보내주면 정말로 네가 멀리 떠나버릴 것만 같거든.
슈즈디자이너가 돼서 네 구두는 평생 내가 책임진다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니까 네가 구두 말고 단화 만들어 달라고 했던 것 생각난다. 내가 꼭 너한테 어울리는 예쁜 단화 만들어서 선물하러 갈게. 사랑해 소진아. 다음 생에서도 우리 사촌이자 친구로 만나자. 그래서 그 땐 꼭 둘이 해외여행도 가보고 바다도 가보고 기차여행도 해보고 워터파크도 가자. 난 매일 꿈꾸니까 내 꿈에 많이 놀러와.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 너무너무 보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음에 또 편지할게. 안녕.
젤리를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수학을 좋아하고 빙수를 좋아하고 과일은 밥보다 더 좋아하는 소진이에게. 그런 너를 좋아하는 승희가.
이소진양은
단원고 2학년 10반 이소진(17)양은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어했다. 5살 남동생을 마치 엄마처럼 돌보다가 갖게 된 꿈이었다. 소진이는 맞벌이하느라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매일 아침 남동생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줬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동생에게 밥과 간식을 해서 먹였다. 공부도 가르쳐줬다.
남동생은 그런 누나를 좋아해서 늘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 아빠 말은 안 들어도 누나 말만큼은 정말 잘 들었다고 한다. 둘째딸인 소진이에게는 2살 많은 대학생 언니가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날인 4월15일 밤 9시 엄마와 아빠는 소진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딸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날 오전 학교로부터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는 애타게 전화했지만 소진이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4월22일 물 밖으로 나온 소진이는 지금 경기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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