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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어느 캐나다 국회의원의 눈물 2004.4.18.일요일
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국에 있었다면 그야말로 평범했을 20대 후반 되는 남잡니다. 지난 대선때는 마음속으로나마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했고, 노무현의 파병결정에 실망했으며 탄핵때는 그야말로 울부짖었으니까요. 여기 시간으로 4월 15일 아침에 (그러니까 한국은 15일 저녁) 출근하기전 부모님이 보유하신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의 총선결과를 접하였지요. 경상도의 한나라당 싹쓸이와, 전혀 압도적이라 할 수 없는 우리당의 승리에 절망반 희망반으로 출근을 하여,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얍실히 무시한 채 인터넷 한겨레와 오마이 뉴스에 접속을 하였답니다. 대강 한시간가량 뉴스를 훑은 다음 캐나다의 유력 일간지들의 한국총선 보도와 결과에 대한 평가를 보려고, 전국지인 Globe and Mail 웹사이트에 접속했답니다(관련제목은 South Korean Voters Avenge Impeached President 이더군요). 그런데 캐나다 유력 국회의원의 사진이 최상단에 대문짝 만하게 걸려있고, "속보 - Breaking News" 라는 표시 밑으로 "Something Just Snapped"(적절한 한국표현을 찾기가 힘들군요)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것이었습니다. 이 연방하원의원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이름은 스벤드 로빈슨(Svend Robinson)이고 제가 살고 있는 광역 밴쿠버시의 제3의 도시인 버나비시 지역구 (정확히는 Burnaby-Douglas 지역구 -- "백광열" 씨라는 분이 이 지역구에 지지난번 총선에 출마했다가 로빈슨의원에게 고배를 마셨죠)의 연 7선 의원입니다. 약관 25세의 나이에 첫당선이 되어 그후 25여년동안 계속 7번을 당선되었으니 대단하지요. 소속은 New Democratic Party(NDP, 신민당) 으로 이 당은 캐나다 정치 스펙트럼에서 좌파로 분류되어 있고, 연방차원 에서는 별로 인기가 많지 않은 당입니다만(현재 전국적으로 연방 하원의원 몇석 안되고, 또 집권 경험도 없습니다), 로빈슨 의원은 항상 소수자의 편에 섰던 의원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재(목재산업은 British Columbia주 최대 산업입니다)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시위하다가 감옥에도 갔었고, 동성애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헌신했으며(로빈슨 의원 자신이 게이이며, 캐나다 최초의 이른바 "커밍아웃"을 한 국회의원이기도 합니다. 최근 일련의 동성애자들의 법적 결혼 허용은 로빈슨 의원의 공이 가장 크지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을 찾아가 아라파트를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아라파트를 지지하면서 이런 말을 했죠 --"나는 유죄입니다. 편을 든 것이 유죄이지요. 하지만 반드시 편을 들어야 한다면 압제자 (Oppressor)의 편이 아닌 약자 (Oppressed)의 편을 들겠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당내 외교위원장의 자리를 잃기도 했습니다-- 좌파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었지요. 또한 최근 북한 관리였던 "리성대"씨의 캐나다 망명이 캐나다 정부의 "전범거부" 조항에 의해 거부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발벗고 나서기도 했고, 한 시위 도중에는 연방경찰의 총에 다리를 맞는 부상을 입기도 했었습니다. 한마디로 약자를 위해, 그들의 권리보호에 힘쓴 소수자의 수호신에 다름 아니었지요.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니, 이 로빈슨 의원이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연방정부가 주관한 경매장에서 대강 $5-6 만불정도 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훔쳤다는 것입니다. 절도는 부활절 주말이 시작하던 금요일에 있었고, 로빈슨 의원은 자신의 표현대로 "something just snapped" 하여 반지를 훔쳤지만 바로 후회하고, 주말 내내 반지를 돌려주기 위해 연락을 해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월요일에 경찰에 반지를 반납하며 자수했다는 것입니다. 목요일 (15일) 아침에 공식 인터뷰를 했나보던데 울면서(혹은 울음을 눌러가면서) 용서를 구하더군요. 최근에 너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발표할 단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97년경에 절벽에서 추락하여 중상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심리학자/범죄학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생사를 넘나들만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같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생기기도 하고, 그 스트레스를 푸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과음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약에 빠지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회견도중, "I am human and I have failed"라는 말도 하더군요. 그리고, 캐나다에도 임박한 총선의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밝히고, 현직 의원직도 치료를 위해 병가를 냈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일로도 죄값을 피하려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도 했고. 기사를 읽으며 너무나도 놀라워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캐나다 총리인 Paul Martin, 연방신민당 당수인 Jack Layton, 그의 지역구 경합자인 모모씨등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며 동정을 금치 못했습니다. 시민들, 지역구민들의 반응을 보면, 그도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벌써 뉘우치고, 자수까지 했으니, 다시 그가 출마해도 기꺼이 그를 찍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는 그가 티비에 나와 우는 것을 보며 그와 함께 같이 울었다고 하더군요. 나는 속으로 울었구요. 여러 생각이 제 머리를 교차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보호자이자 대변자로 정치력을 발휘하며 일생을 살아온 그의 인간적인 면모. 반대로 사회적 약자를 핍박하며 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천억을 좆나 해쳐먹고, 지금도 좆나 잘살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역 국회 인간말종들... 너무나 복잡했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입니까 도대체. 왜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들을 심판하지 못하고 백명이 넘게 뽑아주는 것입니까? 왜 아직도 우리는 스벤드 로빈슨과 같은 의원을 가지지 못했습니까?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 평생을 소수자 인권을 위해 싸워온 투사. 자신의 과오를 눈물로 뉘우칠 줄 아는자. 죄값을 피하려 하지 않는 자. 참회로써 동료 의원들과 지역구민들에게 다시 지지를 얻는 자... 이번 선거에는 로빈슨 의원은 출마하지 않을 것 같군요. 버나비에 신축중인 아파트에 내년말쯤 입주예정 되어있는데, 그 다음 선거에는 꼭 출마 했으면 합니다. 그런 의원의 지역구에 사는 것도 인생에 있어 작은 행복인 듯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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