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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라는 독특한 환경, 거기다 천연의 석유 자원을 가지고 있는 베네주엘라는 환경이 차베스를 탄생하게 함. 본래 80년대 초반까진 베네주엘라는 남미에서 비교적 계층 격차가 적은 나라였다고 함. 허나 80년대 후반 페레스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로 국영으로 운영되면 석유 회사는 국제 자본에게 넘어가고, 개방중심 경제 개혁으로 대규모 농장을 뺀 나머지 농민들이 몰락 빈민층과 극빈층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함.
이에 빡돈 사람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하고, 그걸 본 차베스가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다 실패함.
남미는 7,80년대 시카고 보이라는 신 고전 경제학을 수학한 인재들을 대거 파견,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함.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이 이들을 적극기용. 이에 농민이 망가지고 극빈층이 늘어가자 총을 들고 싸우거나(자파티스타), 혹은 중남미 지역의 마약 카르텔처럼 범죄자로 전락함. 본래 1차 산업과 석유등 천연 자원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이다 보니(몇몇개 나라들 빼고)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가 맞지 않는 나라들이었고, 미국 자본과 남미 독재자 혹은 우익 정권과 결탁, 노골적으로 자원을 독점. 볼리비아나 아르헨티나의 민영화는 뭐 다 알려진 것들이고..
그래서 2000년대 들어와 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좌파 정권 일색으로 돌아섬..
자, 미국과 한 대륙에 있다보니 당연히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곳이고, 한국과 같은 2.3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보니, 착취라는 개념이 자본가 vs 노동자의 개념이 아님. 미국 제국주의 vs 민족주의(정확히 말하자면 저항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함. 즉 한국의 상황과 다르다 보니, 소수 엘리트 계층(미국 시다바리)과 빈곤층 대립 성향이 강하고, 저항하는 대상도 명확하니까 투쟁 방식도 한국의 상식과는 다름. 간접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이란 사회의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이 환경에서 차베스라는 독특한 인물이 나옴. 그는 집권하자 마자 에너지 자원을 국유화하고 그 자본으로 빈곤층을 위해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주거 안정을 실시하고, 엘리트 계급 즉 관료 집단과 대립하면서, 빈곤층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간접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제도화 하려고 함.
"차베스는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민중의 의사를 왜곡하고 특권계층의 이
익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당시 베네수엘라의 많은
지식인들은 대의제도가 부패와 경제불황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차베스의 견해에 쉽게 동조할 수 있었
다. 차베스와 그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대의제도 대신에 대중의 의사
를 신속하게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사회적 부가 형평하게 분배되지 않아도 계층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푼토피호식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유지
될 수 있었다. 석유 수출수익과 외자유치를 통해 확보된 재원으로 사회복지
정책을 광범위하게 시행했으므로 국부의 불공평한 분배로 인해 야기되는 사
회적 문제들이 표출될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푼토피호 정권은 석유수출
수익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별 무리 없이 기존의 정책을 견지할
수 있었다.89) 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상황이 달라졌고 이러한 상
황의 변화를 감안하여 차베스는 대중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이 참여민주주의였다."(KIEP 차베스 에너지정책의 형성배경 및 전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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