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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겨울도 다 끝나가고 봄을 앞둔 시기. 아직은 차가운 밤공기에 으스스 몸을 떨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하치만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머, 히키가야네?" 하치만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고 있는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있었다. 길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베스트 3안에 들어가는 상대와의 만남에 하치만은 반사적으로 켁 하고 신음을 흘리고 만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싫은 얼굴을 하면 누나 상처받는데~" 하루노가 키득키득 웃으며 하치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풍만한 가슴이 드러나는 흰색의 목폴라 니트. 지퍼를 잠그지 않은 채로 덧입은 검은색 재킷. 팬티만 겨우 가릴 것처럼 짧은 짙은 보라색 미니스커트. 그리고 올리브색의 팬티스타킹……. 수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사고, 남자의 마음을 뒤흔든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길고 늘씬한 다리에 하치만의 시선이 고정된다. "……오늘은 옷차림이 평소와는 많이 다르시네요." "그런가? 뭐, 오늘은 바람이나 쐴까 해서 편하게 입고 나온 거니까." 하치만의 물음에 하루노가 대답했다. 하지만 하치만이 마음속에 품은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어지러운 마음은 전에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후우……." 깊고 뜨거운 한숨을 내뱉는 하치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하루노의 다리를 향해있다. 그리고 그런 노골적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할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아니다. '하긴, 오늘은 치마가 좀 짧긴 하지…….' 속으로 쓴웃음 지은 하루노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라~? 별일이네. 히키가야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누나의 다리를 쳐다보고. 드디어 누나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걸까~?" 하루노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다소 짓궂게 느껴지는 음색이었지만, 짧은 미니스커트 아래로 쭉 뻗은 다리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하치만의 행동을 생각하면 오히려 상냥한 편이리라. 눈앞에 있는 연하의 남자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는 하루노가 아니라 다른 여성이었다면 분명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 하지만 하루노의 그런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치만은 말없이 하루노의 다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발기까진 하지 않았지만, 살짝 충혈된 눈과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에 하루노는 그가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성욕 때문이라고는 하나 언제나 자신을 꺼리고 피하려 들던 그가 자신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은 솔직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대꾸도 없이 누나 다리만 쳐다보기야? 히키가야는 그렇게 누나의 다리가 좋아?" 하루노가 재차 하치만에게 묻는다. 그러나 하치만은 그녀의 다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여전히 말이 없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계속 얼굴을 찌푸리는 하치만. 평소의 그와는 너무도 다른 그 모습에 하루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가 자신의 아름다운 다리에 푹 빠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와서? 라는 의문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면 달리 짚이는 게 없었다. 여전히 하루노의 다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하치만을 보며 하루노가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코웃음 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록 반 조롱이었지만, 이성의 괴물이라는 불렀던 그조차도 자신의 포로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자신은 유키노시타가의 후계자다. 결혼은 부모가 인정하는 가문에 걸맞은 상대와 하게 될 거라고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인생이 주어진 여동생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히키가야 하치만과 남녀관계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이해자가 되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피하고 꺼려왔던 그가 이렇게 자신에게 빠져 눈도 못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그 이상의 것을 바라게 돼버린다.
'괜찮은 거야?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누나가 히키가야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고~' 눈에 띄게 호흡이 거칠어진 하치만을 보며 하루노가 요염하게 입술을 훑는다. "응?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심호흡을 해대고……. 설마 진짜로 누나의 다리에 욕정 해버린 걸까? 그렇게 누나의 다리가 신경 쓰여?" "네? 어, 뭐, 네……." 당연히 부정할 거로 생각하고 놀린 말이었지만, 의외로 하치만은 하루노의 말에 순순히 긍정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내심 놀라워하면서 하루노는 하치만에 대한 추격을 계속했다. "헤에,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거구나……. 그러면 누나의 다리, 히키가야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줄까?" 오른쪽 다리를 요염하게 살짝 들어 올리며 하루노가 말한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몸에 흥분해 있는 하치만을 놀리고 있는 것뿐이다. 분명 평소와는 명백하게 다른 상태지만, 히키가야 하치만이 어떤 인물인지를 생각하면 위험한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게 틀림없다. 설령 지금보다 더 대담한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라면 분명 적당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거절하리라.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리며 변명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자 하루노의 마음은 한층 더 들뜨기 시작했다. '누나에게 히키가야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 하지만 하치만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 진짜로요? 좋았어!" "……어라?" 하치만은 지금껏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환한 웃음을 짓고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한마디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하루노 누나,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어? 어, 어……." 어안이 벙벙해진 하루노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점점 작아지는 하치만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편의점이었다. "왜 편의점 같은 곳을…… 어? 설마……." 전력질주까지 해가며 그가 편의점으로 향한 이유는 뭘까…….
설마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다리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겠다는 말한 직후 그가 보여준 격한 반응을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몇 분 후,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하치만이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하아하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별로 상관없지만…… 대체 뭘 사러 간 거야……." 그가 무엇을 위해 편의점에 간 건지 확인하게 위해 그의 손을 쳐다본 하루노였지만 하치만의 손에는 무엇 하나 들려있지 않았다. 설마 갑작스럽게 소변이 마려워졌다든가 하는 깨몽 같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나왔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다. 그렇다는 건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무언가를 샀다는 얘기가 된다. "장소는 어디가 좋으려나……." "뭐……?"
장소를 찾고 있다……. 차마 다른 사람들 앞에선 할 수 없는 행위를 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다…….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진지한 얼굴에 하루노가 숨을 삼킨다. "전 적당히 인적이 드문 골목 같은 곳에서 해도 상관없지만, 하루노 누나는 역시 좀 그렇겠죠?" "바, 밖에서 하겠다고!? 누나는 그런 거 무리야!" 일부러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이 봐도 문제없는 일이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보는 사람이 없다면 밖에서 해도 상관없다는 그의 마인드였다. 이성의 괴물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한창 성욕이 왕성한 남자 고등학생인 것이다. 남자 고등학생의 성욕을 너무 얕봤다고 하루노는 후회했다. 도망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농담이라고, 그런 말을 진짜로 믿었냐고 그를 조롱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분명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될 거라고 하루노는 직감했다. 그가 이렇게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일은 분명 두 번 다시 없으리라……. 게다가, 아무래도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모양이다. "역시 그렇죠? 아, 마침 저기에 적당한 장소가 보이네요." 하치만이 손가락을 가리킨 곳은 5층 높이의 러브호텔이었다.
'아아, 역시…….' 예정된 선고에 하루노의 두 손이 갸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하루노의 손을 하치만이 꽉 쥐어왔다. "죄송한데 저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빨리 들어가죠." "어, 어어……." 지금부터 그와 무엇을 하게 될지는 너무도 뻔했다. 마음의 준비 따위는 조금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성욕에 눈이 멀어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숫컷의 모습에 하루노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들어와보는 러브호텔. 고급 호텔이라면 몇 번이나 가본 하루노였지만, 연인들이 성행위를 나눌뿐인 이런 장소에 발을 디뎌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긴장감에 하루노의 심장이 점점 요동치기 시작한다. "오, 여기다 돈을 넣고 빈방을 누르면 되는 건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이곳이 완전 무인 러브호텔이라는 점일까. "아, 돈이라면 내가 낼게." "아뇨, 제가 내도록 할게요." 연하의 고등학생에게 러브호텔 비를 내게 할 생각이 없었던 하루노였지만, 하치만은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 때문에 하는 일이니 돈은 자신이 내겠다며 기어코 하루노의 돈을 거절했다. 평소의 그였다면 거절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빚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을 텐데 이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하루노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언젠가는 한 번쯤 가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히키가야와,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럽고 황당한 이유로 오게 될 줄이야…… 만지지 않아도 느껴지는 얼굴의 열기에 하루노는 자신이 얼굴이 새빨개졌음을 깨달았다. "헤에, 이게 만화에서만 보던 러브호텔인가……." 그런 하루노와 달리 하치만에게 긴장의 모습 따윈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탄스럽다는 듯이 방안을 두리번거리는 하치만. 하지만 그렇게 두리번거리던 것도 잠시, 하치만은 이내 진지한 얼굴로 하루노에게 침대 위에 누우라고 명령처럼 말했다. "어? 누나 아직 샤워도 안 했는데……." "네? 아뇨, 샤워는 딱히 안 하셔도 되는데요." 오히려 샤워 같은 걸 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묻는 듯한 하치만의 얼굴에 하루노가 할 말을 잃는다. 외출하기 전에 씻긴 했지만, 한 시간도 넘게 거리를 돌아다닌 데다가 긴장한 나머지 살짝 땀까지 맺혀버린 상태다. 혹시라도 냄새난다며 그가 얼굴을 찌푸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하루노가 얼굴을 찌푸린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같은 반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자기 남자친구는 땀 냄새를 좋아해서 샤워를 안 한 상태로 할 때가 많다고. 혹시 히키가야도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역시 다리 페치? 땀이 찬 발 냄새 같은 걸 맡으며 좋아한다든가……. 자신이 좋을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한 건 어디까지나 다리였지만, 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더라도 거부할 생각은 없다. 역시 자신은 오늘 이곳에서 순결을 잃게 되는 걸까…….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내 다리만 희롱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직접 넣지는 않고 다리로만 한다든가……? 어느 쪽이든 그와 일선을 넘게 되리란 건 분명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하루노는 하치만이 시키는대로 침대 위에 누웠다. "하루노 누나, 엉덩이를 살짝 들어주세요."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도 태연해 보이는 그의 얼굴. 하루노는 그 열의에 찬 얼굴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실은 낮져밤이 타입이었던 걸까……. "그, 근데 불은 안 끄는 거야?" "네? 불을 끄면 잘 안 보이잖아요. 이대로는 안 되나요?" "어, 어…… 히키가야가 그러고 싶다면…… 좋을 대로 해……." 하루노가 두 눈을 감으며 긴장으로 뻣뻣해진 엉덩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침대 위에 반쯤 올라타 있던 하치만이 씨익 웃고는 하루노의 치마 사이로 자신의 두 손을 집어넣었다. 마치 값비싼 예술품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루노의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을 벗기는 하치만. 하치만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하루노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칙칙한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에 가려져 있던 하루노의 새하얀 다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루노의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이 전부 벗겨지자 하치만이 감동했다는 듯이 크게 심호흡했고, 하루노는 떨리는 마음을 굳혔다. "얘, 누나는 이래 보여도 처음이니까 될 수 있으면 상……." "으랏챠아아아아―!!!" 격한 기합소리와 함께 하치만은 하루노의 촌스러운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을 두 짝으로 찢어버렸다. "에……?" 두 조각 낸 거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 분노를 담아 찢고 찢고 또 찢는 하치만. 그 분노의 포효가 끝났을 땐 하루노의 올리브색 팬티스타킹 역시 완전히 끝장나버린 상태였다. 만족스럽다는 듯이 휴우 하고 길게 숨을 내뱉는 하치만을 보며 하루노는 저도 모르게 벙찐 얼굴이 되고 말았다. 어라……? 어라라……? "……저기, 그렇게 멋대로 찢어버리면 누나 집으로 돌아갈 때 곤란한데……. 미니스커트에 맨다리 차림으로 돌아다니기에는 아직 춥고……." "아,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갈아입을 스타킹을 사 왔으니까요." "……뭐?" 하치만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재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비닐로 포장된 새 검은색 팬티스타킹을 하나 꺼낸다. "…………그럼 아까 편의점에 간 건 콘돔을 사러 간 게 아니라……." "네? 팬티스타킹을 사러 갔던 건데요? 여자친구도 없는데 그런 걸 뭐하러 사겠어요. 아, 스타킹 신겨드릴 테니까 다리를 들어주세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하루노는 하치만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다리를 들어 올렸다. 벗겼을 때의 세 배는 되는 긴 시간 끝에 하치만은 그녀가 입고 있는 흰색 목폴라 니트와 잘 어울리는 검은색 팬티스타킹을 신길 수 있었다. 강적과 싸워 승리한 소년 만화 주인공과 같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하치만은 하루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까 신고 있던 올리브색 팬티스타킹보다 100배는 낫네요." "…………." "솔직히 아까 신고 있으셨던 그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은 진짜 구렸거든요. 보자마자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는데 참느라 큰일이었어요." "…………." 하지만 그렇게 웃던 것도 잠시, 하치만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지며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가슴을 미칠 듯이 답답하게 만들던 원인이 사라진 탓에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한 거냐는 생각에 머리를 감싸 쥐는 하치만. 냉정하게 돌이켜보니 변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아…… 그…… 뭐랄까…… 그 망할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을 찢어버리고 나니까 갑자기 현자타임이 온 것처럼 머리가 냉정해지는데…… 그…… 정말 죄송합니다……. 그 뭐냐……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진작에 침대에서 내려가 하루노와 얼굴도 못 마주치고 있던 하치만이 하루노를 향해 도게쟈한다. 상체를 일으킨 채 반쯤 넋 나간 얼굴로 하루노가 말한다. "……아니, 좋을 대로 해도 된다고 말한 건 나였고. 됐어……." "아, 뭔가 죄송합니다……." "아냐, 누나야말로 이상한 색의 팬티스타킹을 신어서 미안해……. 아, 스타킹 고마워. 잘 신을게." "아, 아뇨……."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침대 위에 드러누운 하루노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좀 더 있다가 갈까?" "……아, 아뇨, 코마치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전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러면 다음에 또 보자." "아, 네…… 정말 죄송합니다……." 하루노를 향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방 밖으로 나간 하치만은 도망치듯이 러브호텔을 뒤로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하루노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핫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유야 어쨌든 러브호텔에 들어와 팬티스타킹까지 벗겨진 상황.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책임지며 기정사실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무드고 뭐고 전부 박살 나버린 데다가 너무 허탈한 나머지 도저히 그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스타킹 색이 그렇게까지 이상했던 걸까……." 다음에 또 올리브색 팬티스타킹을 신은 채로 히키가야와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음에는 속옷도 올리브색으로 입자는 생각을 하며 하루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끝 |
출처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fantasy_new&no=3287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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