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님에 대해 인터넷으로 조금이나마 알아봤습니다.
오유에서 일반 유저가 아니라 특정태도를 고수하고 다른곳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을 오유까지 끌고오려면
본인에 대한 해명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링크를 따라서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 을 보고 납득하고 이해하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장기간 활동하시고 사회인권과 인식의 개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는 모습은 좋아보입니다.
근데 오유 유저분들은 단순한 유머사이트를 찾으시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더 밝고 옳은 생각을 갖기 위해 자연스레 모인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일방적이고 지나친 주장은 부담스럽게 느껴질수도 있을겁니다.
이 기자님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이기자님이 동성애자라서가 아닐겁니다.
무의식중에 반감을 가졌을지는 모릅니다만..
저는 무신론과 이성으로써 인류전반의 개척을 주도하는 과학을 철저하게 믿습니다.
종교들은 언젠가 의미가 퇴색되고 윤리적 규범의 가치로만 남을거라는 다소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같은 사람도 힘들었을 순간에 신을 찾았을 지친 사람들을 인정하고 용인합니다.
개독은 싫어하는 오유지만 기독교인이라고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겁니다.
그런데 왜 이 기자님이 오유에서마저 안 좋은 시선을 감당해내야 하는가?
그건 기사의 질이 안 좋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주진우 기자님은 왜 인정받겠습니까,
발로 직접 뛰시고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밝히려는 진정한 언론인의 모범이 되시지 않습니까.
전 베오베나 베스트에 올라오는 시사게시물 아니면 그닥 보지 않는 일개 유저일 뿐이지만
확실한건 너무 많고 또 중요치않은 기삿거리로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계시다는 겁니다.
방대한 양의 정보들을 취합하여 보기좋고 이해하기 쉽게 내는것이 좋은기사 아닙니까?
사람들이 이 기자님의 기사를 찾아보게 만드시려면 꼭 필요한 정수만을 모아서 정성껏 기사를 보도하시면
인식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주제넘게도 한 말씀 드립니다.
한손#3538
달콤한 우정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철 스님의 주례사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 결혼 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지고 이리 저리 고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논꼽 만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덕보겠다는 마음이 살다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30%주고 70% 
덕보자고 합니다. 
둘이 같이 살며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줘야겠다고만 
다짐하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그리고 번복되는 어제의 각오는 잊은 채 
시시한 욕구를 채우려고 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비웃었지.
굳은 다짐으로 쓰여졌던 약속의 증서는 휴지조각으로 버려지고 또다시 내일을 외치며 도대체 언제쯤 관둘지 모르는 그 공허를 외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거적으로 덮어놓고선
남이 쌓아올린 탑을 남들에게 뽐내는 역겨운 대리만족을 넘어, 마치 그 주인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리는구나.
부끄러움은 잊은지 오래-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다.
검은 밀물은 매섭게 밀려드는데 모래성은 높아져만 간다.
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서 시궁창에서 한심한 꼴로 허우적대는가.
그래놓고 후에 가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의해 꺾이어졌다는 되지 않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인가.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데 어째서 뒷걸음질만 치는가 - 바로 뒤엔 절벽있는데
지금 네가 즐기는 그 쾌락이 죄 많은 너의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그리고 수십배는 더 고통스러울 죄 없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오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퇴보를 반복하는 것인가. 
.
.
.
들어라.
하루의 절반을
눈물로 지워본 적이 없는 이들아.
또한
들어라.
노력없는 희망만큼이나 
또 절망적인 것은 없음을 아직 모르는 이들아.
언젠가는 가장 비참하게 찢길 오만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나태로 찌들어
이제는
끝없이 내일만을 되뇌이는
그 검은 입으로
감히 
너의 꿈을 모욕하지 말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