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참여정부의 평균 지지율은 약 30% 내외였다. 한 때는 한 자릿 수의 정권 지지율을 유지 할 정도로, 국민에게 아~주 무능한 정권으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한 자릿 수의 지지율이 어느정도냐면, 내 기억으론 촛불때 명박이 지지율이 그 정도였던 걸로 알고 있다. 즉 참여정부는 촛불 없이도 촛불을 맞은 정권이라는 뜻이다.
그럼 왜 그렇게 정권 지지도가 낮았고, 왜 그렇게 인기가 없었냐라는 것인데.. 아마 대다수 친노들은 조중동에게 휩쓸려서라고 생각할테지만(당시에 페이퍼 신문의 여론 장악력은 고작 5%에 불과했다. 더구나 지금같이 댓글 여론이 활성화 된 시기도 아니었고 ㅋㅋ), 그 당시 여론 조사 기관들의 조사를 보면 대다수 국민들은 무능과 개혁적이지 못한 참여정부를 질타하고는 했다.
본래 참여정부는 비정규직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당선 된 정권이었다.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 세력들은 순도가 높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로 이뤄졌고, 그 시절에 인터넷 정치 열풍이 불면서 거의 혁명적인 방식으로 당선 된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노통이 그 시절의 공약이나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면 자신이 득표 한 그 수준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되니 지지자들에게도 비판 당하기 시작하면서 지지율이 지지부진해 진 것이다.
미국에 사진이나 찍으러 가지 않겠다라는 노통은 미국에 사진을 찍으러 갔으며, 미상공회의소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했다며 그들을 긴장시킨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을 하면서 그들을 안심시키기에 이른다. 몇몇 음모론자들은 노통이 프리메이슨 회원이라고들하는데, 실제로 그 회원들로 이뤄진 미국의 삼각 위원회에 가서 파티를 즐기는등의 일을 벌였던 일이 있었다. 미국의 전형적인 네오콘이자 수구 꼴통인 삼각 위원회에서 말이다.
이런 저런 일에 비하면 노동 탄압이나 시위 탄압 같은 것들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었을 뿐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들이 많았다는 것.
그 시절 이야기를 잠깐하자면 민노당이 국회 진출했는데 미국쪽 투자회사에서 잔득 긴장하고. 그래서 민노당 의원을 면답한적이 있었다. 그만큼 그때는 시대의 격변기였고, 노통의 탄생은 큰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 왜냐면 삼김 시대가 저물었던 상징으로 486 정치인들이 정계에 진출했으며, 기존의 카리스마 지도자 중심의(패거리 정치) 수준이었던 정치가 합리적 세력의 탄생으로 새로운 시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시대의 모든 것이 밀어 준 대통령은 일견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획기적인 일을 벌이며 기대를 높였으나, 불법 대선 자금에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간 것(본인의 말을 뒤 엎고), 이라크 파병에 측근 비리들로 휘청거리며, 결국엔 탄핵으로 이어지게 된다(이 사이에 수많은 사건들은 그냥 넘기기로 하자!). 물론 탄핵은 지금봐도 ㅄ질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여하간 탄핵을 통해서 정권의 지지율을 올라갔으며 사람들은 적어도 그때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대통령이 권력이 없어서 그런다. 그래서 열우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고 권력을 밀어주는 식의 관용을 베풀었던 것이다. 근데....
참여정부의 시대상은 어땠나? 진보 개혁과 거리가 먼 개발 사업들... 부동산 폭등... 교육 시장화... 서민과 노동자의 몰락... 농민 몰락등. 전 정권들에서 없었던 것들 대부업이나 88만원 세대나등의 문제들이 붉거지면서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는 사람들, 차가운 현실에 이상주의란 벌레가 뛰어들어 부나방이 되었다는 그 열패감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참여정부는 정권 말기에 삼성 공화국이라는 최악의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심지어 소수만 남은 친노들에게서도 지탄받는 대상이 되었다.
자, 그렇다면 참여정부 실패가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우선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다. 본질적으로 이명박의 747 공약은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과 그리 다르지 않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그러나 기성 정치 대립 구조를 정치의 본질로 보는 대중들은 참여정부의 과를 이명박을 정부를 찍는 것으로 인식했으며, 당시의 내수 부진들을 이명박 후보의 성장을 해결책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이것은 당시 신자유주의 개념하에 성장만능론으로 퍼트렸던 참여정부의 과에 의해서 생긴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그 시절의 486들의 정치 개혁론에 대한 회의가 생겨 버렸다는 것이다. 무능한 486, 기대를 배반하는 놈들, 실패한 역사란 인식이 생기면서, 여당의 뻘짓이 야당에게 저절로 이익을 돌아가는 기존의 선거 구도는 약화 되었다. 즉 여당의 대안이 야당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 인식의 실패가 안철수라는 현상을 만들어냈으며, 민주당은 싫지만 새누리당은 더 싫다는 이상한 인식하에 대선 구도가 정착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반을 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2,30대의 투표율(물론 전의 투표보다는 높지만서도 상대적으로..)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사태가 그런데도 문재인과 친노들은 2011년까지 참여정부를 제대로 비판 한 역사가 없었고, 오히려 당 의원들을 협박?해 노통의 묘소에 자주 참배하는 것을 종용했다. 심지어 그들은 번번히 친노와 비 친노라는 헤게모니 구도를 이용 친노에 충성하는 인물을, 정책이든 뭐든 따지지 않고 진골인양 몰아 문재인을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물론 문재인은 2011년까지 FTA등 참여정부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 반성한다는 제스추어를 통해, 친노라는 색을 벗어버리려 했다. 그의 변화는 인정할만하지만 대다수 대중은 대권을 위한 태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친노들의 세력화는 아직도 견고하고,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반성한다는 늬앙스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친노는 이제 구태 세력에 불과하다. 옛 민주당내 패거리 정치와 지역주의 그리고 패거리주의를 깔 땐 그들은 분명 개혁세력을 자청할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은 어떤가? 그들을 대표하는 이념이나 사상 따위, 혹은 시대 정신따위는 없고.. 그냥 민주당의 골방 노인처럼 자리를 차지하며 거들먹 거리고 있을 뿐이다.
즉 그들은 이제 낡은 세력이 되었고 실패한 세력이 되었다. 그걸 국민들이 모르겠나? 뭐 지역주의는 그렇다쳐도 수도권에서 진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그것도 안철수의 지지표까지 끌어 가 놓고 말이다. 이게 얼마나 무능한 일인가?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하고 비슷한 수준의 정권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그 어느 때 보다 뻔뻔하게 비리를 터트려 주시고, 지역주의도 영남쪽에 표를 가져가면서 어느 때 보다 야당에게 유리한 구조였던 게 맞다. 근데 패배했다..ㅋ
이제 친노는 영광스런 미래를 상징하는 세력이 아니다. 그냥 켜켜히 쌓인 패배의 징후들, 민주당을 좀 먹고 있는 세력, 말이 안 통하는 지들만의 종교... 이렇게 상징 될 뿐이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