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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실로 딜레마다. 그들에겐 이미 수많은 \"배신\"의 경험이 있고, 또 승리의 기억도 남아있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는 왼쪽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에 구속되어 있고, 오른쪽에서는 자본주의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랑크 푸르트 선언에서 알 수 있듯,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단 한 가지다.
\"변혁인가, 개량인가?\"
실천은 우리의 전부다.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이랬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찬동하는 반동을 보였다. 혁명을 방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스탈린은 결국 일국 사회주의라는 얼토당토 않은 원칙을 세웠고, 결국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렸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스탈린을 경멸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은 계급을 더 이상 배신할 수 없다. 노동자 계급을 옹위할 것이냐, 의회를 옹위할 것이냐. 자본주의는 이들에게 계속 타협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와 타협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도 안된다! 그렇다면 선택은 단 한가지, \"개혁을 누적시키면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
개혁 투쟁을 어떻게 노동자 계급의 의식 고양과 더불어 혁명적 주체로서 승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이들에게 여전히 혁명의 꿈은 남아 있다. 그러나 한 쪽 발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 묶여 있다. 누가 이들을 체제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인가, 누가 이들을 교조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인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해 물어보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혁명\"에 대해 이들은 얼버무린다. \"사회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라는 물음에 대해 이들은 회피한다. 그저,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라는 어중이떠중이만 내놓는다. 어떻게?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모호한 입장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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