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오유 바로가기
http://m.todayhumor.co.kr
분류 게시판
베스트
  • 베스트오브베스트
  • 베스트
  • 오늘의베스트
  • 유머
  • 유머자료
  • 유머글
  • 이야기
  • 자유
  • 고민
  • 연애
  • 결혼생활
  • 좋은글
  • 자랑
  • 공포
  • 멘붕
  • 사이다
  • 군대
  • 밀리터리
  • 미스터리
  • 술한잔
  • 오늘있잖아요
  • 투표인증
  • 새해
  • 이슈
  • 시사
  • 시사아카이브
  • 사회면
  • 사건사고
  • 생활
  • 패션
  • 패션착샷
  • 아동패션착샷
  • 뷰티
  • 인테리어
  • DIY
  • 요리
  • 커피&차
  • 육아
  • 법률
  • 동물
  • 지식
  • 취업정보
  • 식물
  • 다이어트
  • 의료
  • 영어
  • 맛집
  • 추천사이트
  • 해외직구
  • 취미
  • 사진
  • 사진강좌
  • 카메라
  • 만화
  • 애니메이션
  • 포니
  • 자전거
  • 자동차
  • 여행
  • 바이크
  • 민물낚시
  • 바다낚시
  • 장난감
  • 그림판
  • 학술
  • 경제
  • 역사
  • 예술
  • 과학
  • 철학
  • 심리학
  • 방송연예
  • 연예
  • 음악
  • 음악찾기
  • 악기
  • 음향기기
  • 영화
  • 다큐멘터리
  • 국내드라마
  • 해외드라마
  • 예능
  • 팟케스트
  • 방송프로그램
  • 무한도전
  • 더지니어스
  • 개그콘서트
  • 런닝맨
  • 나가수
  • 디지털
  • 컴퓨터
  • 프로그래머
  • IT
  • 안티바이러스
  • 애플
  • 안드로이드
  • 스마트폰
  • 윈도우폰
  • 심비안
  • 스포츠
  • 스포츠
  • 축구
  • 야구
  • 농구
  • 바둑
  • 야구팀
  • 삼성
  • 두산
  • NC
  • 넥센
  • 한화
  • SK
  • 기아
  • 롯데
  • LG
  • KT
  • 메이저리그
  • 일본프로야구리그
  • 게임1
  • 플래시게임
  • 게임토론방
  • 엑스박스
  • 플레이스테이션
  • 닌텐도
  • 모바일게임
  • 게임2
  • 던전앤파이터
  • 마비노기
  • 마비노기영웅전
  • 하스스톤
  • 히어로즈오브더스톰
  • gta5
  • 디아블로
  • 디아블로2
  • 피파온라인2
  • 피파온라인3
  • 워크래프트
  • 월드오브워크래프트
  • 밀리언아서
  • 월드오브탱크
  • 블레이드앤소울
  • 검은사막
  • 스타크래프트
  • 스타크래프트2
  • 베틀필드3
  • 마인크래프트
  • 데이즈
  • 문명
  • 서든어택
  • 테라
  • 아이온
  • 심시티5
  • 프리스타일풋볼
  • 스페셜포스
  • 사이퍼즈
  • 도타2
  • 메이플스토리1
  • 메이플스토리2
  • 오버워치
  • 오버워치그룹모집
  • 포켓몬고
  • 파이널판타지14
  • 배틀그라운드
  • 기타
  • 종교
  • 단어장
  • 자료창고
  • 운영
  • 공지사항
  • 오유운영
  • 게시판신청
  • 보류
  • 임시게시판
  • 메르스
  • 세월호
  • 원전사고
  • 2016리오올림픽
  • 2018평창올림픽
  • 코로나19
  • 2020도쿄올림픽
  • 게시판찾기
  • 게시물ID : humorbest_360936
    작성자 : ♡생겼어용♥
    추천 : 19
    조회수 : 3070
    IP : 112.201.***.93
    댓글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1/06/07 13:45:15
    원글작성시간 : 2011/06/06 22:15:50
    http://todayhumor.com/?humorbest_360936 모바일
    [BGM] 백선엽 [白善燁, 1920.11.23~]



    BGM 정보 : http://heartbrea.kr/?category=98985&document_srl=460095&mid=recommend




    백선엽 (白善燁, 1920년 11월 23일 ~ )

    은 일제 강점기의 교사, 군인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이다. 만주국의 장교로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에서 복무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았고, 해방 직후에는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활동했다. 이내 소련군이 이북지역에 진주하게 되자, 1945년 12월에 월남하게 된다. 1946년 군정기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활동하였고, 훗날 대한민국의 창군 주역으로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 장군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예편 후에는 중화민국·프랑스·캐나다 대사 등의 외교관을 지냈다. 2009년 3월 23일 대한민국 명예 육군 원수로 추천되었으나, 만주군의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문제가 되어 취소되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수록되었다.





    1. 개요 ¶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장성들중 단연 최고의 능력을 보이며 거듭 승진을 거듭해 결국 초대 4성 장군과 전시의 참모총장 지위에 오르는 등, 한국전쟁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러가지 업적을 이뤄낸 인물이다.

    미군은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고의 지휘관으로 친다. 한미연합사 본청 1층 복도 한가운데에 OUR HERO라고 쓰인 사진이 있을 정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를 평양에서 지냈으며 이후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간도 특설대에 배치되었는데, 이 부대가 한국계 항일유격대를 상대하는 부대였다는 점 때문에 경력에 논란이 있고, 이 때문에 친일파로 평가될 부분이 있다.

    이후 만주군 중위을 지내다가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조만식 선생의 민족주의 운동에 참가 했다가 김일성과 공산당의 득세를 목격하곤 1945년 12월에 월남한다. 그 직후 군사영어학교를 마치고 국방경비대에 입대, 5연대장을 맡았다. 국방경비대가 정식 한국군이 된 이후에는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재직중이었으며, 이때 벌어진 여순사건 당시 공산 게릴라 소탕과 주동자 색출 및 처벌의 재판장이었다(박정희와 사법거래, 모든 정보를 다 부는것에 대한 대가로 살려준다). 1950년 4월에 대령 계급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개성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2. 한국전쟁과 그의 전공 ¶





    2.1. 개전 초기 지연전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당시. 그는 서울에서 아내와 갓난 아이를 만나고 있다가 연락을 받고 급히 복귀해 사단을 지휘했는데, 그의 사단 담당지역은 북한군의 주 공격로 위에 있어 T-34 전차 등 북한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음에도 부대를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차가 몰려오자 일부 병사들은 2차 대전 동안 벌어진 일본군의 육탄특공을 떠올려 폭발물을 들고 달려들어 저지하는 투혼을 벌였는데, 이는 지시한 적도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라 사단장인 그도 숙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육군본부로부터 들려온 소식은 휴전선 전체에서 전면적인 공격이 가해져 1사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일제히 후퇴중이며, 1사단도 퇴각하지 않으면 곧 포위될 것이니 퇴각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로 인해 퇴각을 하지만, 그의 부대는 퇴각중에도 부대를 유지하며 퇴각할 수 있었다. 당시 멀쩡히 퇴각할 수 있던 부대는 1사단과 춘천의 6사단이 유일했다. 이들의 교전으로 전선이 전면적으로 붕괴되지 않고 서울 점령 때까지 그나마 3일의 시간적 여유를 벌었으니, 이때 한국을 한번 구한 일등공신 중 한명이라 할 만하다.

    처음 이틀 동안 긴장과 긴박한 상황으로 인해 발에 못이 박히고도 다음 날에나 전투화를 벗었을 지경이었다고 전해지며, 1사단이 상태가 그나마 가장 양호한 부대였음으로 학도병과 신병들을 계속 보충받아 계속 방어작전에 주력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전황이 계속 악화되어 결국 낙동강까지 후퇴하며, 이 와중에 병사들 속에 섞여 퇴각하던 중 북한군의 추격으로 몇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2.2. 다부동 전투 ¶



    낙동강 방어선에서 유명한 다부동 전투를 겪게 되는데, 북한군은 병력 21,500명에 T-34 전차 20대+14대 가량을 앞세워 전진했으나 1사단의 7,600명 병력이 이들을 8월달까지 지연시켜 미군이 상륙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다. 만약, 이때 다부동 지역이 뚫렸다면 부산까지 그대로 북한군에게 점령당했을테니 사실상 이때 두번째로 대한민국을 구했다고 할 수 있다. 다부동 전투는 팔로군의 실전경험 및 소련 군사고문단의 훈련으로 정예화된 북한군을 전쟁 경험이 극도로 미숙한 농민 징집군으로 이루어진 국군으로 방어, 격퇴했다는 점에서 세계 전사상으로도 드문 전투로 칭송받고 있다. 참고로 이 전투에서 백선엽은 권총을 들고 병사들과 선봉에 서서 적진으로 돌격했는데, 이는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사단장 돌격으로 꼽힌다. 그 외의 사례로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 중 손원일 제독이 직접 소총을 들고 대한민국 해병대와 함께 진격한 경우 정도.

    돌격직전 병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어라. 그동안 잘 싸워주어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2.3. 평양 점령 ¶



    이후, 부산에 미 1기병사단이 상륙함에 따라 1사단은 전력재건을 위해 임무를 교대했으나 미 1기병사단은 9월달즈음 북한군의 공격에 주저항선이 붕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인천 상륙작전이 실시되어 북한군에 막대한 혼란이 벌어지자, 반격부대로서 다시 1사단을 지휘해 다부동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때쯤에는 성공적인 방어작전의 결과로 준장으로 진급했다.

    북한으로 역진공하던 때의 에피소드인데, 미군 지휘관들이 한국군의 전투력을 의심하자 자신이 직접 영어로 설명하며 '1사단의 전투력과 사기가 매우 높아 UN군의 선두에서 평양을 향해 제일 빨리 전진할 수 있으며, 사단장인 자신은 평양에서 어렸을 때부터 살아와 길을 잘 안다. 단지 자신들에게는 미군과 같은 종합적인 화력이 없는 것 뿐이라 만약 1사단에 미군 전차 1개대대를 지원해주면 이들과 함께 선두에서 진격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미군 장군이 '미군은 차량이 많고 기계화되어 이동속도가 빠른데, 보병 뿐인 한국군이 어떻게 미군의 전진속도보다 빨리 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자 '잠을 자지 않고 야간에도 행군해가며 이동속도를 늘리겠다'라며 굳은 의지를 보인다. 그리하여 미군 전차대대를 배속받게 되며, 미육군 부대가 다른 나라 지휘관의 지휘를 받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영국지휘관에게 맡겨진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게다가 약속대로, 실제 1사단 장병들은 야간에도 잠을 자지 않으며 맹행군을 계속해 차량으로 이동하는 미군들을 제치고 전군의 선두에 서게 된다.

    나중에는 미군 전차대대 장교들이 '우리까지 밤에 잠도 안 자고 싸울 수는 없다. 전차는 야간에 사고를 일으킬 수 있고 적의 공격에도 취약하다'라고 하자 전차대대에는 숙면을 취하게 하며 '이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고생을 하고 있으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협조하라'고 하며 배려해줬으며, 실제로 이들은 그 보답으로 주간에 속도를 올려 1사단의 최선두를 따라잡았다. 이때 당시 장교들이 한 말은 정확하게 "전차는 낮에는 호랑이지만 밤에는 고양이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막힌 대답이라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밝힌 바가 있다.

    평양으로 진격하던 당시, 백선엽 장군의 '우리는 간다!'라는 구호에 미군들도 'We Go!'를 외치며 미군 1기병사단과 24사단 등의 부대들과 레이스에 들어갔는데, 이때 당시 백선엽 장군이 '당신네들 원래 소속 부대와 경쟁해도 되겠냐?'라고 묻자 미군들은 '우리는 지금 한국군 1사단이다'라며 오히려 강한 유대감을 나타낸 에피소드가 있다.

    결국 평양점령에 성공하며, 김일성의 집무실에 1사단 지휘소를 차리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북진을 계속해 압록강변에 거의 다다랐지만, 중국군의 반격에 휘말리며 38선 이남으로까지 밀려가게 된다. 이때, 최초로 미국과 북한-중국간의 휴전회담이 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군 장교를 빼놓고 휴전협정을 할 수는 없다며 강력히 주장해 참관인으로 참석했다. 당시 북한군 장군이 백 장군의 일제시대의 복무 경험을 비꼬며 매국노가 감히 이런 자리에 어떻게 나타나냐고 꾸짖는 일이 있긴 있었으나, 스스로가 침략자인 인간들 주제에 그따위 소리를 했다는 것이 웃음 포인트. 이는 당시 백선엽 장군의 전선에서의 전적을 알고 벌인 신경전이라 여겨진다.



    2.4. 빨치산 토벌전 ¶



    휴전회담 도중 동부전선 상황이 악화되는데다 1군단장의 사고사로 인해 긴급히 후임으로 강릉으로 부임했다가, 다시 휴전회담 한국측 대표를 하던 중, 군단장으로 복귀한다. 전투가 뜸해진 1951년. 남한 후방지역, 특히 지리산 지역에 인천 상륙작전 이후로 후퇴하지 못한 빨치산들이 대거 몰려있음이 알려지자 이들을 퇴치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성을 따서 '백 야전사령부'가 창설되어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지며, 성공적인 작전을 마쳐 빨치산 토벌을 완수한다. 작전의 결과로 5,800명의 빨치산을 사살했으며 특히, 투항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절대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사면장에 자신의 사인을 넣어 비행기에서 살포한 덕에 수많은 유격대원들이 사면장을 들고 항복하게 만든다. 최종적으로는 5,700명이 항복하거나 포로가 되어, 통합 11,500명을 토벌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백선엽의 토벌은 빨치산 토벌전의 주요 전기가 되고 있다. 이전 11사단의 견벽 청야 작전이 거창사건으로 대변되는 작전에서 진일보한것으로 평가된다.

    실질적으로 백선엽이 빨치산 토벌에 나선것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으나 진영논리를 제외하더라도 이전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심지어 해당 구역 경찰서장도 회고록에서 11사단과 최덕신을 까고 백야전사와 예하 사단을 칭송하고 있다(…). 백선엽은 자신의 저서 "지리산"을 통해서 자신은 몰랐지만 예하부대에서 벌어진 빨치산 학살이나 여성 빨치산에 대한 난행도 여과없이 기록하고 있으며 만에 하나 자신이 모르더라도 예하부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솔직히 사과하고 있다.

    재미있는건 거창 사건으로 대변되는 양민학살의 실질적인 주범인 최덕신의 경우는 이런 비난에서 벗어나서 영웅시 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월북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북을 택하지 않고 박정희 정권의 고위직으로 일생을 마쳤으면 지금 빨치산 토벌로 백선엽이 받는 비난은 최덕신이 받을것이다...

    라는 주장이 있으나, 최덕신이 칭송을 받는지도 의문이고[6],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월북때문이 아니라[7]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창학살의 진상을 은폐하고 피해자를 도리어 탄압한 박정희 정부는 경상남도에서 굉장히 많은 표를 얻었다.



    2.5. 전쟁 후기 ¶



    그 이후에는 새로이 재창설된 1군단에서 1군단장을 맡고, 미군의 지원으로 1952년에 새로 창설되는 2군단에서 군단장을 맡는다. 그리고 다시 1952년 7월에는 그동안의 전공으로 육군 참모총장에 부임하며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32세였다. 이후 한국군의 규모 확대와 급여, 복지문제 개선과 지원을 확대하는데 애썼다. 이런 저런 활약과 더불어 미군에게도 큰 신뢰를 쌓고, 빨치산 토벌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등 큰 업적을 쌓은 덕택에 미군은 한국군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높게 했으며, 계속 장비지원을 해 세력을 확충시키는 한편[8], 카투사 제도 등으로 미군부대에 한국군 병사들을 배속시켜 같이 싸우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리 전투의 소식이 전해지고, 그 여파로 3군단은 해체되고, 그 이후로 한국군의 작전권은 미군에게 넘어간다. 나중에 백선엽 장군 본인은 '유재흥 장군이 실전경험이 없어서...' 라고 끝끝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유재흥에 대해서는 당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혹평 및 비난이 많고 본인도 그다지 높게 치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임에도 따로 언급하지 않는 면에서 중후한 대인배로서의 면모도 엿보인다. 실제로 백선엽 장군은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수많은 당대 지휘관들이 부하 탓, 상관 탓, 미군 탓을 한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는 회고록 '군과 나'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이기붕에게조차 나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3. 전후활동 및 이야기거리 ¶



    전후에는 대만 대사 등을 역임하고,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뒤 비료회사 사장을 지냈다고 한다. 워낙 영향력 있는 인물이던지라, 훗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영문명으로 'Park'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유명인물. 현재 미 2사단 훈련평가원실 건물 이름이 '백선엽관'이다.

    대단히 정치적이었고 군사 쿠데타를 누구보다도 두려워했던 그럼에도 정치군인 양성에 힘썼던 이승만은 쿠데타 가능성이 높은 군 실력자들을 서로 경쟁시켜서 가급적 힘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수행했는데 백선엽, 이형근, 정일권이 교대로 참모총장이 되면서 상호 견제하는 체제로 나갔다. 이후 정치에 발을 실제로 들였던 건 정일권.

    여담이지만 대식가라고 한다. 2009년 2월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육군협회 관련 행사에 참석한 이의 증언으로는 계속 꾸벅대다가 만찬이 시작되자마자 접시를 순식간에 비워낸 어르신이 백선엽 장군인 걸 나중에 알고 황당했다고.

    한국군 고위장교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친미성향이 짙으면서 실력으로도 대단히 유능했다는 것이 공통된 평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실력은 있으나 미군과 친하지 않아서 찬밥을 먹는 장교들이 많았고[9] 유능하지 않으나 미군과 친한 이유로 과대평가되는 장교들도 있었는데[10] 전선에서도 바쁜 와중에 틈틈히 영어공부를 했고 미군들에게 예의바른 표현을 익히기 위해 미군 표창장에 적힌 찬사문구를 메모해서 틈틈히 외워서감사인사에 써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0년대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에 참가중 물대포에 맞아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참고로 그때 90대 노령인 영감님이었다.



    3.1. 최초 원수 가능? ¶



    2009년에 명예 원수로 추대하려는 계획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령이나 규정을 손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만일 성공하면 한국군 사상 최초의 5성 장군이 된다.

    그러나 친일 경력 의혹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곧, 우리나라 최초의 원수칭호가 친일 의혹이 해결되지 않은 인물에게 섣불리 수여되기 보다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사회적 토론이 선행되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 인물의 혁혁한 전공과, 독립군을 토벌하는 것이 임무였던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던 과오가 너무도 대립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극명한 대립양상을 보아 합의를 보기 힘들 것을 예상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명예 원수 추대가 성사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3.2. 친일행적 ¶



    백선엽은 1941년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해방때까지 간도 특설대에서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다. 최종 계급은 중위. 자신의 자서전인 '실록 지리산', '군과 나' 등에서 해당 경력을 언급했다. 하지만 간도 특설대 경력에 대해 특별히 후회한다고 언급하거나 사죄한 적은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명예 원수 추대가 거론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풀어야할 문제이다.

    참고로 간도특설대는 독립군뿐만 아니라 만주지역의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다녔던 잔혹한 부대이다. 이들은 일개 사병까지도 친일인명사전에

    백선엽이 일본에만 출간한 책인 게릴라 전 관련 서적에서는 솔직히 간도 특설대에 들어간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고 당대와 그때의 고민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으나 이 책 자체는 우에다 신의 컴뱃 바이블이나 기타 다른 저서에 부분 발췌 수준으로 소개될뿐 번역이 되지 않았다.

    유사한 문제들에 대해선, 백선엽 장군뿐만 아니라 많은 친일 의혹이 있는 인사(박정희, 김활란, 김성수, 방응모 등)들의 문제에 대한 청산 및 역사적 평가가 먼저 선행되야 하는데, 이 부분은 2차 대전 종전 후, 드골정부에 의해 수행된 나치협력 인사 청산 방법을 도입하기에는 때를 지나 버렸고 지금 하자니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백선엽 장군은 자신의 부대가 민폐를 끼친 적이 있어서 이 일을 후회한다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고, 김창룡이 고문치사한 것을 수습해 준 적도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바 있다. 백선엽 장군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사실대로 밝히지 않은 것은 5.16 군사정변을 전후한 시점에서의 군내 알력과 자신이 받은 비판에 대한 부분 정도인데, 이 부분은 솔직담백한 그의 회고록에서 이례적으로 유난히 자기미화가 심한 편이다(사실 이 점은 정일권이나 이형근의 회고록은 더 심하다.).


    3.3.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다 ¶



    친일 논쟁과는 관계 없지만, 그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동생인


    백인엽(白仁燁)

    때문에 싸잡혀서 욕 먹는 경우도 있다. 백인엽은 자신의 이름과 백선엽 대장의 이름을 따 선인재단이라는 사립학교 재단을 만들어 인천대학교까지 만들었던 것. 그런데 재단 운영이 개막장오브 막장이어서, 인천지역 고교 평준화 이전 선인고등학교는 (인문계임에도 불구하고) 수준 이하의 학생들만 득실대었다고 한다. 결국 인천대학교와 선인고등학교 모두 막장의 극을 달리는 운영 끝에 94년 인천시에 흡수되었다. 인천대학교는 시립대가 되었고 나머지 학교는 공립학교가 되어서 지금은 선인재단 따위는 없다. 그렇지만 인천 사람들에게 선인재단이라는 단어는 남아있다. 그것도 아주 안 좋은 이미지로. 아무리 동생일지라도 이름을 막 빌려주면 안 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케이스 되시겠다(...)

    예비역 대장이며 육군 인사사령관, 특전사령관, 3군사령관을 역임한 백군기 장군(육사 29기)의 아버지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백군기 장군의 아버지는 이미 작고하신 분. 참고로 백군기 장군은 호남 출신(광주고)으로,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군 내 요직을 역임한 유력한 육군 참모총장 후보였으나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3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퇴역하였다.



    4. 저서들 ¶





    4.1. 군과 나 ¶



    한국전쟁 회고록 한국전쟁 당시 실제 작전 입안자로서 한국전쟁을 회고하는 최초의 회고록이다. 사실 한국전쟁을 회고하는 수기류는 정책적으로 많이 나왔지만 공산권 자료의 미비, 최근에도 문제가 되는 당사자들의 증언 회피, 어른의 사정등으로 객관적인 저서가 나오지 않았던 반면에 6월항쟁 이후에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한국전쟁을 볼수 있는 시기에 나온 최초의 회고록이라는데서 의의가 있다.

    원래 동아일보 경향신문 연재물이었는데 대륙출판부에서 최초로 단행본이 나왔고 앞에 말한 이유뿐 아니라 문장이 수려해서 가독력이 좋아. 한국전쟁에 대해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

    많은 사람들이 이를테면 조우석 잊혀진 걸작이라고 한탄하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책으로서는 의외로 단행본이 많이 나왔다 앞서말한 대륙출판부판, 다른 중소출판부판, 시대정신판 등등... 영문판으로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라는 제목으로 아무래도 클라크의 회고록 제목도용 출간되었고, 조선전쟁 천일이라는 제목으로 일역판도 출간되었다.

    최근 중앙일보에서 이 회고록의 추가 개정판이 연재중이다.



    4.2. 실록 지리산 ¶



    이태의 남부군 출간 이후 동아일보 연재로 토벌대의 입장에서 대국적으로 그린 빨치산 기록이다. 저자 자신이 백야전사 작전에 참가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이태의 남부군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 남한 빨치산 약사-> 자신이 겪은 이야기 후기의 형식인 반면에 이 작품은 백야전사 작전-> 남한 빨치산 약사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단행본은 고려원 출간

    백야전사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태의 작품에 대한 토벌대의 입장이기 때문에 남부군을 읽지 않으면 갑툭튀한 서술이 좀 이상할 정도이다.

    토벌대 사령관 입장으로 썼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겠지만 의외로 객관적이다. 자료 조사를 위해 지리산 곳곳을 다녔고 구빨치산 출신의 참전자들을 일일히 인터뷰했다. 토벌에 참가했던 국군의 잔학행위 증언도 빠짐없이 실어주었다 오오. 대인배, 이런 증언을 소개하면서 토벌작전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


    [1] 혹 이 때문에 일부 시위대가 90 노령의 노인인 백선엽에게 친일파라 비난하며 물대포를 뿌렸다는 소문이 있으나 와전된 것이다. 본인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운동 행진을 하다가 진압용 물대포에 맞은 것.
    [2] 그러나 회고록에 따르면 부대를 유지하며 퇴각한 것은 아니었다. 1사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가 무너져 버리자 포위를 우려하여 참모총장에게 후퇴를 건의했지만 패닉 상태에 있었던 지휘부는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설상가상 인도교가 폭파되자 퇴로가 끊긴 1사단은 그제서야 시흥을 집결지로 선정하고 후퇴를 시작하지만 배도 구하기 어려운지라 몇명의 부관과 함께 마포에서 뗏목을 만들어 겨우 도하가 가능했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많은 장병이 도하에 성공하여 시흥에서 부대의 재편이 가능했으나 본인은 이 일로 상부의 후퇴명령을 어기고 부대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오해를 받아 많이 억울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3] 이때 6사단이 벌인 전투가 바로 춘천-홍천 전투다. 수도권을 치던 북한군 보다는 상대적으로 공격의 강도가 약한데다 부대장 재량으로 병력의 외출, 외박을 제한해 병력이 비교적 많은 상태라고 하지만, 북한군 제2군단을 3일간 저지했고 제2군단장 김광협은 해임당했다.
    [4] 그러나 이 성공적인 방어전에서도 결점은 많아서, 육군본부의 전후 공간사에서는 지휘역량이 아직 부족했고 부대 장악 수준이 충분치 않았던 탓에 조속한 대응에 실패, 더 잘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당시 백선엽이 1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경험도 부족하며 결정적으로 사단장 부임과 거의 동시에 시흥 보병학교에서 교육을 받느라 실질적으로 사단에서 제대로 근무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배은망덕에 가까운 평가다.
    [5] 이는 전쟁 당시 최초의 평양 점령이었는데, 1사단과 평양 점령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7사단 역시 다른 방향에서 같은 날 평양에 입성해 최초 입성부대라며 자랑하곤 한다.
    [6] 하지만 한홍구의 한겨레 21기사를 보면 눈뜨고 못 볼 정도이다.
    [7] 혹자는 월북때문에 그가 70년대 반정부 투사로 인정되기도 한다. 사실 최덕신의 월북은 상당히 지저분한 이야기들이 좀 얽혀있기도 하다
    [8] 그러나 장비지원에 대해 반감을 가진 미군장성도 있었다고 한다. 장진호 전투를 치른 해병 1사단장도 한국군의 무기고가 되는 것에 우려를 가지고 장비지원을 하라는 상부명령을 거절한 사례가 있다. 자기 부하 빼간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9] 노령의 문제도 있지만 김홍일 장군이나 김석원 장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나중에 실력에 비해서 한직으로 밀려난다
    [10] 김교식에 따르면 장도영이 이런 케이스였다고 한다. 장도영 정도는 다행이고 태백산맥에서 자주 나오는 썩은 국군 장교들의 경우 이런 경우가 꽤 많았다
    [11] 물론, 친일 경력자중에서 제대로 사죄한 인물은 몇명 없다. 제2공화국 시절의 국방장관 현석호의 경우는 친일전력을 언급하고 사죄한 몇 안되는 사례. 그리고 전 홍익대 총장 이항녕도 틈틈이 자신의 친일행적에 대해 반성을 해 왔다. 이 양반은 군인이 아니라 일제 말기 창녕군수를 지냈었다.
    [12] 상황자체가 너무 달라 프랑스식 청산방법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이 불가능하다.
    [13] 사실 이 인간은 한국전쟁 때도 막장으로 유명했다. 부하 장교 즉결처분 혐의를 비롯해 온갖 막장스런 사건을 몰고다녔다. 형만한 아우 없다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했다.
    [14] 동양 최대의 사학 재단이었다. - 1990년 당시 도화국민학교, 인화여중, 선화여중, 선인중, 인화여고, 선화여상, 선인고, 운봉공고, 운산기공, 항도실고, 인천전문대, 인천대학 이 있었다. 그 외에도 몇몇 학교가 더 있었다고 한다. - 속칭 마징가제트 체육관 주변(구글어스로 북위 37도 28분 17초 동경 126도 39분 21초 주변을 보라)의 학교들 거의 전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15] 그 악평은 평준화 이후에도 지속되는 선인재단의 운영 속에서 여전히 이어졌으나, 공립고등학교가 된 이후에는 수준이 완전히 달라져서 신흥명문고가 되었다. 막장 선인재단의 전설은 끝난 것이다.
    [16] 저 동네 근처의 고등학교를 저 시절에 나왔거나 또는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백선엽'과 '백인엽'은 똑같은 존재다.
    [17] 일제하 전력이라던가 작전실패라던가, 민간인 학살 관련이라던가하는 문제들, 실지로 이후에 나온 이형근, 정일권의 회고록에서는 자신이 비판받을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18] 심지어는 현리 전투도 객관적으로 기록한다.
    [19] 다만 이 판본은 중국군 개입부터로 순서를 조정했다
    [20] 이를테면 생포한 여자 빨치산을 바세린을 발라가면서 집단으로 검열삭제하는류의 이야기가 버젓히 나온다
    [21] 모 친일파 고발 불쏘시개 책에서는 이 내용을 조작 편집해서 빨치산 토벌때 백선엽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고 뻔뻔스럽게 사과했다는 식으로 그렸다









    출처: 백선엽 - 엔하위키 미러











    이 국군영웅(?)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s. 이글은
    "동양의 베르됭 전투", 다부동 전투을 보신분들을 위해 올린겁니당.
    ♡생겼어용♥의 꼬릿말입니다
    전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11/06/06 23:15:56  122.128.***.140  
    [2] 2011/06/06 23:19:12  59.28.***.197  노비포
    [3] 2011/06/06 23:32:11  122.128.***.16  
    [4] 2011/06/07 00:43:43  222.103.***.70  리볼버오셀롯
    [5] 2011/06/07 01:29:34  116.123.***.90  악진
    [6] 2011/06/07 05:17:32  218.235.***.243  똥고양이
    [7] 2011/06/07 09:16:25  121.166.***.160  쿨박
    [8] 2011/06/07 09:34:41  211.189.***.202  
    [9] 2011/06/07 13:43:44  115.145.***.15  
    [10] 2011/06/07 13:45:15  116.45.***.13  히로준
    푸르딩딩:추천수 3이상 댓글은 배경색이 바뀝니다.
    (단,비공감수가 추천수의 1/3 초과시 해당없음)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769445
    제갈량 인생 최대의 도박.jpg [2] 펌글 우가가 24/09/17 15:21 2169 10
    1769444
    아우디 A4가 드림카라서 샀는데 [3] 펌글 우가가 24/09/17 15:19 1979 10
    1769443
    한덕수 총리 : 어디에 사람이 죽어나가요 !!!! [6] [진진] 24/09/17 14:53 801 16
    1769442
    겨울왕국보다 모아나(스포주의) [9] 창작글 란채 24/09/17 14:50 1310 13
    1769441
    계엄 하려면 해 봐라. [4] 오호유우 24/09/17 13:34 1476 20
    1769440
    제법 그럴싸한 현대 악마 설정 [4] 펌글 우가가 24/09/17 12:35 2929 20
    1769439
    키 23cm인 댕댕이가 보는 세상 [3] 펌글 우가가 24/09/17 11:54 2691 20
    1769437
    갑자기 고객들한테 두들겨 맞는 기업 [8] 펌글 감동브레이커 24/09/17 11:32 1208 43
    1769436
    이걸 먹네 [13] 변비엔당근 24/09/17 11:23 945 16
    1769435
    1950년대 이탈리아의 정력 보충제.jpg [6] 펌글 9일 우가가 24/09/17 10:43 4322 19
    1769434
    혐) 자꾸 발가락에 고름이 차던 이유... [15] 9일 96%放電中 24/09/17 10:39 7737 18
    1769433
    역시 ㅄ들은 유별남 (혐? 주의) [1] 계룡산곰돌이 24/09/17 10:28 1722 22
    1769432
    은행들이 갑자기 대출($) 막은(X) 이유 [5] 펌글 우가가 24/09/17 09:41 5013 26
    1769431
    전투식량 직구 하는 윤석열, 제복 공무원들 격려 [7] 으흐하햐 24/09/17 09:24 1707 18
    1769430
    일본에서 논란이 된 갑질 현 지사.jpg [17] 펌글 우가가 24/09/17 07:24 3175 39
    1769429
    주인 몰래 숨어있는 새끼 닥스훈트 [1] 펌글 우가가 24/09/17 07:19 2733 32
    1769428
    중독의 MZ 세대 [10] 펌글 우가가 24/09/17 07:11 3962 41
    1769427
    [9/16(월) 베스트모음] 안녕하세요! 조빈입니다! 투데이올데이 24/09/17 04:42 2659 14
    1769426
    머리에 8cm 칼 빼내는 수술 [6] 펌글 우가가 24/09/17 03:17 3949 37
    1769425
    ㅇㅎ)호불호 갈리는 코스프레 누나... [10] 96%放電中 24/09/17 02:45 5403 23
    1769424
    포켓몬 피규어 근황 [10] 당직사관 24/09/17 02:39 2486 17
    1769423
    빠니보틀이 좋좋소 차기작을 안 만드는 이유.jpg 펌글 우가가 24/09/17 01:50 3757 33
    1769422
    쿠팡 근황.jpg [9] 펌글 우가가 24/09/17 01:24 3571 36
    1769421
    부먹 찍먹 싸우지 마요 [5] 등대지기™ 24/09/17 00:51 2466 22
    1769420
    '비옥한 땅'보다 좋은 땅은? [9] ㅗㅠㅑ 24/09/17 00:49 2100 17
    1769419
    그나저나 여지없네요.명절때 되면 알바인지 개돼지들인지 모를것들이 난입 [5] 근드운 24/09/17 00:40 1432 29
    1769418
    (김여사 사진, 들끓는 민심) 철면피 행차 / 추석 밥상 점.령. [5] 으흐하햐 24/09/17 00:37 1805 28
    1769417
    총풍사건 [5] 해마폭룡 24/09/16 23:18 1743 34
    1769416
    추석연휴 마동석근황 [9] 펌글 감동브레이커 24/09/16 23:03 3659 39
    1769415
    논란이된 회사내 악질 고백공격 등장한 파훼법 [10] 펌글 우가가 24/09/16 22:31 3272 23
    [1] [2] [3] [4] [5] [6] [7] [8] [9] [10] [다음10개▶]
    단축키 운영진에게 바란다(삭제요청/제안) 운영게 게시판신청 자료창고 보류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모바일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