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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36088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94
    조회수 : 9527
    IP : 119.195.***.230
    댓글 : 16개
    등록시간 : 2012/09/12 03:29:14
    http://todayhumor.com/?panic_36088 모바일
    배경음) 아내가 예뻐졌다. -3부-




    결혼 일주년 기념일이었다. 별 특별한 준비를 하고 싶지가 안았다.
    아내를 위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이 동하질 못하고 어딘가에서 아내와의 단절감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아무준비 없이 일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퇴근 후 집앞, 예전 아내의 얼굴이 가슴에 밟혀 도저히 맨손으론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변변한 선물도 준비하지 않은 염치지만, 내가 사랑했던 아내다. 라며 마음을 다잡고 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산 달랑 한송이의 장미.
    도저히 아내를 위해 뭘 사고싶지가 안았다.

    집 현관앞에 들어서며 난 벨을 누르지 않고 직접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온통 불이꺼진 거실에 붉은 촛불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한 불빛에 어린 아내의 미소.
    아내는 나를 보고는 성큼성큼 다가들어서는 와락안겨왔다.

    "결혼기념일 잊어먹은 줄 알았잖아..."

    "뭐야, 너 울어?"

    내 품에 안겨있던 아내는 내 손아귀에서 장미를 빼앗아 들고는 빙그레 웃음지었다.
    아내는 이제 도저히 누군지 모를 사람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리는 동안 앳되보이는 뺨가가 붉으스름하니 달아올라있었다.
    한참을 기른 긴 생머리가 어깨 한켠만 타고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작은 촛불빛에도
    그 깊은 검정색의 머릿결은 감탄이 터질듯 부드럽고 탐스러워 보였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큰 눈망울이, 어른거리는 불빛을 담은체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다른 말로는 형용이 안됐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더욱 소리지르고 싶었다. 당신 도대체 누구냐고.

    주방테이블에 와인을 따른 잔과 촛불이 하나만 올라서있는 케잌을 올려둔체 나란히 앉았다.
    한참동안 내 옆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와인을 급하게 마셔댔다.

    "천천히 마셔, 술도 약하면서."

    아내는 그러면서도 내 잔에 와인을 또 반쯤을 체우곤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내게 물었다.

    "자기 뭐 소원같은거 없어?"

    "소원?"

    소원? 있다. 너무나 간절한 소원.

    "자기 머리있잖아. 한 이정도로 다시 자르면 안되?"

    내가 아내의 어깨쯤에 손을 얹으며 묻자 아내는 긴머리칼을 만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자기 긴머리는 싫어?"

    "아니, 나 긴머리 좋아하는데, 짧은 머리는 진짜 좋아해. 옛날처럼."

    '예전의 니 모습이면 더 좋고...'

    혹시나 머리가 짧아지면 좀 예전과 비슷해질까 싶었다.
    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그리곤 평소와 다르게 내게 먼저 키스해왔다.


    아내는 다음날 바로 머리를 단발로 커트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연예인의 머리를 했다는데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머리를 밝은 금색으로 염색했다는 것이다.

    "야, 너 회사에서 뭐라고 하겠다."

    "아니야. 괜찮아. 디자인실 서대리도 노란머리 하고 다니던데 뭐."

    회사에서 뭐라고 하는 것 보다도 길거리에서 아내가 팔장을 끼워오는 순간이 더 두려웠다.
    마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과 조금 나이 어린 삼촌처럼 사람들 눈에 비출 것만 같은 어색함. 두려움.

    내 생각이 꼭 틀린 것 만은 아니라는 듯, 거리의 몇몇 남자들 무리는
    우리를 뒤돌아보곤 알수없는 옹아리소리를 내며 사라져갔다.


    반년 뒤 애지중지 하던 장미꽃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가루가되어 거실바닦을 뒹굴렀다.
    아내는 봉오리가 떨어져 가지만 남은 장미를 끌어 안은체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가증스러워 보였다.
    결혼생활, 일년 반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시던 날.

    아내는 분주하게 장을 보며 음식을 준비했다. 평소 집안청소에
    시끄러운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끔찍했던 나는 청소를 도맡기로 했다.

    연애때부터 손맛이 좋았던 아내는 작정을 한듯 주방에 판을 벌여놓았다.
    머리를 말아 틀어 올린 겉모습이 아직 영락없는 대학새내기인데 반해
    손놀림은 종가집 며느리 마냥 앙칼졌다.

    부모님이 도착하실 저녘때가 되어 아내는 추리닝을 벗어 던지곤
    단정한 옷차림으로 바꿔입으며 마중을 준비했다.

    집 근처 역 앞에서 차를 주차한체 십분여가 흘렀을까. 부모님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드셨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잽싸게 빠른 걸음을 하며 어머니의 손에 들린 짐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나도 냉큼 다가서는데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물으셨다.

    "야야 아들, 야는 누구여? 야 누구여 시방?"

    아내가 당황한듯 무안한 표정을 하며 나와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내 대답에 목이 마른사람처럼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셨다.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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