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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36081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91
    조회수 : 14306
    IP : 119.195.***.230
    댓글 : 12개
    등록시간 : 2012/09/11 20:55:06
    http://todayhumor.com/?panic_36081 모바일
    배경음) 아내가 예뻐졌다.




    결혼 3년차.

    다리를 모아 틀어 앉은체 TV를 보고있는 아내.
    드라마에 열중인 얼굴속에 아직 남아있는 예전의 모습이 얼핏 스치는 듯 하다.

    나는 아내의 옆켠으로 다가가 슬쩍 어깨동무를 하며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그런 내 입가에 말없이 사과 한조각을 집어들곤 먹으라는둥 가만히 멈춰섰다.

    내가 사과를 받아 입을 우물거리며 아삭아삭 씹는 소리를 내자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사과 잘 샀지? 응?"

    틀림없이 내 아내다.

    아내는 빈 사과접시를 보고는 "하나 더 깎을까?" 하고 물었지만 나는 별로 생각이 들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아내는 다시 TV로 시선을 가져가며 드라마에 몰두했다.

    가볍게 어깨에 기대오는 아내의 머리에서 진한 샴푸향이 어려있었다.
    위, 아래 입술을 번갈아 삐죽삐죽 내밀며 눈을 가만히 찌푸리는 아내.


    나는 너무도 내 아내를 사랑하지만, 어깨에 기댄 이 여자는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다.


    입사 2년차 시절, 경리실에 있는 아내를 알게되었다.

    내 스스로 아내를 평가하기에 이런식의 표현은 조금 얄궂을지 모르지만,
    내 아내는 평범했다. 정말 말 그대로 평범한 여자. 평범함, 그 자체.

    언뜻 보기에 느껴지는 첫인상, 말투, 목소리, 걸음걸이, 손짓 발짓.

    어깨춤을 간지를 듯 말 듯한 약간은 푸석한 느낌의 검은 머리칼,
    화장기가 보이지만 그닥 노력의 성과가 없어보이는 전체적인 모양세.
    조금 살이 붙었는지 짧은 소매의 블라우스를 입으면 약간 늘어지며 도드라져 보이는 팔뚝 살까지도.

    난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그녀가 좋았다.

    어릴적부터 연애에는 젬뱅이였던 나는 여성들에게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내 아내를 얕보거나 쉽게 생각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난 아내와 있을때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그런 아내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나의 푸념에 맞장구를 치거나 나의 농담에 큰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가 너무 좋았다.

    친구들이 이야기 했었다.

    내 스스로가 여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닌 여자에게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자신 스스로에 대한 비굴함이 날 인기없는 남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그들의 개똥철학을 귀담아 들어보려 노력했다만, 나는 나였다.
    나는 자신이 없다. 없는 자신감을 돈주고 대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신감이란 것은 내겐 너무 어렵고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내에게 만큼은 달랐다.

    아내는 내가 함께하기에 너무 안락했다. 내가 편해질 수 있는 이성을 만난 것에 대한
    환희감에 몇날, 몇일, 몇달을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그녀를 내 운명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은 시간이 지나며 돌덩처럼 굳어만 갈뿐 단 한치의 흔들림도 생기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건냈을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결혼을 승낙해 주었다.

    그녀가 내 것이 되어준 이후로, 세상도 내 것이 되었다.
    출근길 막힌 도롯가에 정신없이 울리는 경적소리도 정겨웠다.
    길막고 어정어정 걷는 비둘기새끼들 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받은 것이다. 그 모든 행복들을.


    결혼 전까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와 장을 보러 나갔을 때였다.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끄는 내 옆에서 아내가 팔장을 건체 느릿느릿 따라 걷고 있었다.

    별 쓸데없는 과자 몇상자와 샴푸 한묶음, 페어 머그컵등을 카트에 싣고
    매장을 이리저리 도는데 아내가 생각이 번뜬 든 것 처럼 내게 말했다.

    "자기! 오랜만에 갈비찜 해 먹을까?"

    "갈비찜?"

    아내가 싱글벙글하며 손끝으로 매장 한 구석을 가리켰다.
    손끝을 가리킨 곳에는 <특별 할인행사 돼지고기 전 상품 25% 세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내는 세일중인 갈비 한 상자를 카트에 실으며 신이 난다는듯 기뻐했다.
    그 모습이 흐뭇한지 옆에서 장을 보던 아주머니께서 아내에게 말을 건냈다.

    "신혼인가봐요? 참~ 좋겠네."

    아내와 난 인상 좋아뵈는 아주머니에게 예의상 고개를 꾸벅하며 웃어보였다.
    내가 카트를 밀며 앞으로 나아가자 아내가 금방 다시 내 팔춤에 팔을 엮으며 따라 걸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말씀.

    "색시가 참~ 곱네. 좋겠어~."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난 그날 아내의 칭찬소리에 작은 소름이 돋았다.
    뒤돌아 다시 아주머니에게 꾸벅 고개를 조아리며 슬쩍슬쩍 웃는 아내의 모습.

    확실히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비해 객관적인 측면에서 예뻐보였다.

    피부가 밝아지고 어딘지 모르게 머리결에 탄력이 보였다. 슬쩍 입술에 바른 립글로즈가
    환한 매장의 조명에 부딪히며 반짝반짝 윤이 흘렀다. 아주머니의 칭찬이 기분 좋은지
    아내가 나를 응시했다. 내 눈을 바라보는 아내의 똘망똘망한 두눈이 작은 반달모양으로
    매끄럽게 처지며 평소완 다르게 어려보였다.

    아내가 예뻐젔다.

    알 수 없는 아내의 이질감이 조금씩 가슴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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