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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36016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43
    조회수 : 4828
    IP : 119.195.***.230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2/09/09 23:23:55
    http://todayhumor.com/?panic_36016 모바일
    배경음) 그랜드 호텔 404호실 -2부-




    한참 모니터를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 있기를 바랬다만 객실 청소중인 듯 아내가 자리에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4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며 오늘따라 카펫에 벤 쾌쾌한 향이 거슬렸다.

    이불더미를 양손 가득 움켜쥔 아내가 복도 탕비실을 향해 걸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도 아랑곳 안는 듯 자연스러운 발걸음에 기운이 빠지는 듯 하다.

    "여보." 하고 부르자 태연히 고개를 돌리며 걸음을 멈추는 아내.

    "우리 모텔에 언제부터 404호실이 있었어?" 하고 묻자 씨익하고 웃는다.

    멍하니 아내를 계속해서 바라보자 아내는 이불더미를
    탕비실에 대충 던져놓고는 내 손을 이끌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카운터 좁은 방안에 나를 앉힌 아내를 왜인지 자세를 가다듬더니 만연한 미소를 띄었다.

    "인기 좋잖아. 404호실."

    아내의 해맑은 웃음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우리 404호실 없잖아. 사람들이 404호실 가려면 너한테 이야기 해야 한다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인터넷에 올라와있어. 어떻게 된거야?"

    아내가 계속 웃으니 어쩐지 모르게 나에게도 웃음이 베인다.
    내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자 아내는 표정을 한층 더 밝히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404호> 라고 적혀있는 열쇠꼬리. 다만 우리 모텔에서 사용하고 있는 투박하고 네모난 플라스틱
    열쇠자루가 아닌 손으로 만든듯 어딘가 허접한 나비모양으로 오린 종이를 코팅하고 속에 빨간색 매직으로
    404호라고 적어 놓았다. 정성스레 쓰인 404호라는 빨간글자에 아내의 악취미가 느껴지는 것 같다.

    "뭐야?"

    "내가 만들었지! 우리 모텔 404호실 없잖아."

    "그럼 방 문패도 니가 띄었어?"

    아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이 어찌되었든 장사가 잘되면 그만이라는 듯
    아내는 나를 타이르며 열쇠를 카운터 열쇠단지에 가지런히 걸어 두었다.

    "앞으론 예약도 404호로 받아."

    객실정리를 떠나려는 듯 해맑게 돌아서는 아내를 향해 마지막으로 물었다.

    "404호. 원래 몇호실이야?"

    아내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침묵하곤, 내게 대답하지 않은체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 모텔을 오픈했을 때였다. 겨울날 찬바람이 그 전에 비해서 한층 더 매섭게만 느껴지던 때.
    광택이 요란스러운 검정색 다운자켓을 입은 여성이 홀로 모텔을 찾은 일이 있었다.

    밑에는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자켓 밑단에 슬쩍 가려진 허벅다리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마치 잘못보면 웃옷만 입은 형태처럼 허전했다. 그녀는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되려 보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일게했다. 머리칼을 검정색으로 염색했는지 칠흑같이
    어두운 단발머리와 말쑥한 생김세가 도시의 여성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세련되고 도도한 아름다움이
    짙은 향수향과 함께 넘실거렸다.

    그녀는 카운터에 신용카드를 내밀며 14일치를 미리 끊어달라고 했다.

    "저, 글을 좀 쓰려고 하는데 조용한 방 없나요?"

    조용하고 자시고 당시에는 손님이 얼마 들지않아 모텔복도에서 잠을 청해도 좋을 정도였다.
    나는 손님에게 신경을 쓰는척하며 모텔에서 가장 높은 층인 4층의 가장 구석방을 잡아주었다.

    스스로 말하길 글을 쓴다는 그녀였지만 때때로 그녀가 있는 방을 찾는 남성들이 있었다.
    매번 확연히 달라지는 남성들의 분위기, 인상, 연령대.

    그녀에 대한 의아감이 들던 나는 그 이후로도 한달여간 그녀가 장기투숙을
    하게 되면서 의아감이 확신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옛생각에 잠긴체 나는 나비모양의 열쇠고리를 집어 들며 404호실로 발길을 옮겼다.
    4층의 가장 구석진 방. 이곳은 원래 502호실이다. 괴담이 이슈가 되기 전까지 몇년간 손님을 받은 적이 없었다.

    열쇠를 따고 방문을 열자 방안에 향긋한 방향제 냄새가 물씬했다.
    벌써 거의 10년이 되가는 동안 한번도 리모델링 하지 않아 그대로인 방.

    내가 직접골랐던 카키색의 꽃무늬 커튼, 하얗고 얇은 천으로 쌓인 킹사이즈 침대,
    어두운톤의 갈색 화장대, 색바란 꼬마냉장고, 20인치 텔레비전 그리고 그 위에
    손바닥 만치 조그마한 고흐의 해바라기 복사품 액자.

    모두 먼지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는 모습이다.

    귀신따위는 없다. 어디에도.

    방안을 가만히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쿡쿡하며 찔렀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듯한 소름이 일며 눈앞이 잠시 시껌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심히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해맑은 웃음을 띄며 서있었다.
    짙은 검정의 단발머리가 아름다워보였던 도시적인 그녀.

    그녀는 지금 나를 "여보"라 부르고있다.

    갑자기 겁을 먹은 탓인지 아내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이 일어 아내의 웃는 모습이 몹시 애잔히 느껴젔다.
    아내를 가만히 깊게 끌어 안자. 아내도 말없이 양팔을 둘러 나를 가만히 껴안아 주었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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