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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영(許京寧, 1950년 1월 1일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며 민주공화당의 총재이다.(현재는 민주공화당의 당명을 경제공화당으로 바꾸었음.) 제4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보좌를 맡았으며(1970-1979), 현재도 박정희의 이념을 그대로 추진한다.
민주공화당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구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담판을 지어 핵기지를 인수했으며, 정권을 잡으면 엄중히 처단할 3000명의 명단을 이미 살생부에 정리했고 차후에 아시아 연방을 추진할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 등 다소 비현실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딴지일보의 장난 같은 인터뷰 이후 매우 유명해졌다.
2000년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환담을 가졌고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는 제안을 하였다고 하였으나, 그 근거로 제시한 부시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의문의 사진이 있다.
허경영은 2007년 2월 기자 회견을 통해 2006년 7월 열린우리당에 기간당원으로 입당하였으며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딴지일보를 포상하고 경복궁에 탱크를 진격시킬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는 또 2000년 부시 취임식 당시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으며 이에 부시가 허경영을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본인은 대선에 출마할 계획이기 때문에 사양하겠다고 하고 반기문을 추천해 2006년 반기문을 유엔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목차 |
이 문서는 한국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
< 허경영 검증 >
허경영 씨의 가정살리기 10대 혁명공약 및 나라살리기 공약, 그리고 기타 공약들은 모두 33가지이다. 이 공약들을 모두 검증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의 과거 행적들을 검증하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허경영 씨가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라도 검증은 필수이며, 공약에 대한 검증은 그 다음이 될 것이다. 아래에 등장하는 연고지와 그곳에 있는 연고자들을 통해 허경영 씨의 주장의 진위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가 모든 의혹의 눈초리를 걷어내고, 당당히 진실의 반석 위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1. 1~15세.
서울 중랑교 아래 움막에서 유복자로 출생. 생후 6개월에 육이오 발발하여 모친과 함께 서울에서 경남 진주(돌아가신 부친의 연고지)로 내려옴. 진주에서 4세때 모친 사망. 경남 진주 지리산 근처 지수마을에서 한학의 대가였던 농부의 양아들로 15세까지 거주하였다고 주장함. 1950년생으로 유학 서적 30여 권을 마스터하고, 15세인 1964년에 상경. 따라서 43년 전에 이 동네를 떠난 허경영 씨를 기억하는 인물이 소수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경력 : 30여권의 한학서적을 공부하였고, 특히 주역을 완전히 마스터함.
2. 15~16세.
서울에서 삼각산 화계사에 들어가 숭산 이행원 스님 밑에서 상자가 되어 지냄. 상자는 양아들에 해당하는 용어. 숭산 이행원 스님에게 직접 팔만대장경을 배움. 이후 허경영 씨가 협성상업전수학교에 입학한 직후, 숭산 스님은 40세의 나이로 포교 차 미국으로 떠난다. 절에서 매일 300명에서 1천명 분의 밥을 하던 허경영 씨는 공부시간이 모자라고 몸이 힘들어 화계사를 떠남. (당시 고1)
숭산 이행원 스님은 평범한 스님이 아니라 대한민국 불교 포교사에서 가장 유명한 분으로 해외에 300개의 절을 개척한 입지전적인 인물임.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의 스님이라고 볼 수 있음.
주요경력 : 팔만대장경을 공부함. 마스터했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음.
3. 16~18세
세검정의 청룡사라는 암자를 소개받아 가던 중, 기도원에 다녀오던 아주머니 3명에게 이끌려 광화문 내수동 교회의 목사님에게 소개받아 감. 광화문 내수동 교회 홍근섭 목사님의 양아들이 되어 성경을 공부함. 홍근섭 목사님은 이북 출신으로 청력장애가 있었음. 허경영 씨는 목사님께 성경을 배우고 주말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초중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침. 이때 성경을 스스로 한자로 번역하여 모두 암기함. 주로 4글자로 번역하여 구약과 신약을 (표면적으로나마) 완전히 마스터함. 이후로 인류에게 전해진 53개 종교의 경전을 독학으로 차례로 공부하기 시작함.
주요경력 : 전세계 53개 경전을 모두 다 공부한 후 그 핵심과 장단점들을 크로스체크하는 경지에 오름.
4. 19~20세 (1968~1969)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을 우연히 만나서 양아들이 되어 한집에서 거주함. 당시 저택은 장충동에 있었음. 고 이병철 씨와, 현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씨 등과 한솥밥을 먹으며 지냄. 집안에서는 양아들이므로 성을 허씨에서 이씨로 바꾸어 이경영으로 불림.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씨가 1968년에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보았던 허경영이라는 사람을 기억할지 못할지는 당사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음.
주요경력 : 삼성그룹 운영에 수백가지의 조언을 함. 작은 물건을 만드는 사업을 할 것. 가령 설탕과 반도체 등. 노조를 없애기 위해 처음부터 사람을 뽑을 때 관상을 보고 가려서 뽑을 것. 인사정책과 미래예견을 통한 사업선정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그룹 운영에 관하여 이병철 회장에게 조언함. 자동차나 그보다 더 큰 물건에 관여하면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조언함.
삼성자동차는 제대로 망한 후 르노닛산으로 넘어감. 삼성중공업은 대략 망한 후 1989년 볼보코리아로 넘어감. 삼성그룹에서 면접 때 관상을 본다는(보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며, 삼성그룹은 현재 냉장고보다 작은 물건만 만들고 있음.
5. 20~29세 (혹은 32세 까지?)
고 이병철 회장이 허경영 씨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소개함. (1969년 10월 15일 저녁 8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보좌역이 됨. 공적인 직책이 아님. 박정희 대통령은 그전까지는 어떤 비선도 만들지 않았고, 공식적인 상하 명령체계만을 이용하였으나 이때부터(1970)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비선, 즉 비공식적인 라인으로 허경영을 데리고 있다가 가끔씩 자문을 구할 때 독대하였음. 만나는 장소는 처음에는 주로 비밀 연회장(정확한 위치 모름)이었다가 곧 청와대 안에서 만나기 시작함. 이후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비밀 연회장에서 자주 만남.
그당시 10년간 정책보좌역으로 일하는동안 청와대 내에서 박근혜 씨와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알려진 바 없음.
6. 병력
논산훈련소에 입대함. 고아인데 입대하는 게 맞는지, 1970년 전후의 병력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 6주 훈련을 받던 중 4주째 되던 어느날, 박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논산에서 청와대로 올라옴. 나머지 2주 훈련에 대한 기록은 없음.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방첩대였으며, 이곳에서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근무함. 평소에는 청와대 근처에서 근무를 서고, 공부를 하다가 박대통령이 호출하면 불려가서 독대함. 병장 제대
제대 이후에도 박대통령 보좌역을 계속함.
7. 학력
경남 진주 모 초등학교 졸업.
서울 모 야간 중학교 졸업.
협성고 졸업.
일반대학 학력은 없음.
박대통령에게 방송통신대학 설립을 건의하고 유치시킴. 100명이 입학하면 2명만이 졸업한다는 방통대에서 7개의 전공과정을 밟고, 학위를 받음. 법학, 경제학, 경영학, 생명공학, 물리학 등을 전공함.
박정희 대통령 보좌역으로 있던 시절, 행정고시에 합격함. 행정고시 몇회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맞다면 1973~1978년 사이로 추정됨.
8. 재산
서울 변두리에 빌딩 40채 정도가 있었는데, 그동안의 활동자금으로 모두 처분하였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음. 30년간 민주공화당을 깨끗한 정치후원금으로 어렵게 운영하였다느느 표현을 한 적이 있음. 기타 알려진 재산 관련 사항 없음.
9. 스캔들
박근혜 씨에게 청혼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두번 한 적이 있음. 가수 조용필 씨와 그림 소유권 문제로 소송을 걸어 패소함. 기타 알려진 재산, 정치, 비자금, 청탁, 여성 관련 스캔들 없음.
10. 기타 검증 관련 인물
핵미사일 기지
소련에서 핵미사일 기지를 구입하였다고 하였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50년간 임대하였다고 주장함. 현재 임대기간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런 내용을 소련 정부가 확인해 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금도 한국의 소유가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음.
해외영토 매입
바이칼 호수와 캄차카 반도를 매입하기로 하여 소련정부의 승인까지 다 받았으나, 매입 직전 현지인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런 내용을 소련 정부가 확인해 줄 것 같지는 않으므로 당시 바이칼 호수와 캄차카 반도의 지역신문에 그런 내용이 등장하였는지 혹시라도 자료가 있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음. 그런데 그런 장소의 한국편입 반대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허경영 씨와 연관이 있다는 보장은 할 수가 없음.
불우자
지난 수십년간 불우자돕기 단체에서 35,000 여명에게 밥을 먹여왔다가 주장함. 사실이라면 관련자도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됨.
이행원
숭산 이행원 스님. 1926년 평남 순천 출생. (1927년생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숭산 스님이 40세에 미국으로 떠났다고 하였으므로 1965년 경이며, 이때 1950년생 소띠 허경영 씨의 나이는 16세에 해당함. 대략 일치함. 스님 본인이나 측근의 입을 통해 허경영 씨에 대한 검증 가능. 그런데 지명도가 낮은 편이라 별로 무게감은 없을 수 있음.
박근혜
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마다 국립묘지에서 추모회를 하면서 박근혜 씨도 자동으로 만남. 허경영 씨는 그냥 추모식에 참석만 하는 수준이 아니고, 대략 5백여명의 추모객을 대표하여 제주(술)을 올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므로 박근혜 씨는 허경영 씨를 조금은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됨. 박근혜 씨와 허경영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3장 정도 알려져 있으나 별로 중요하지 않음. 박근혜 씨가 허경영 씨의 과거 경력에 대해 진실 여부를 언급할 경우, 검증으로써의 가치가 높음.
이건희
삼성 이건희 회장이 무슨 할일이 없어서 그런 얘기를 하겠냐만은, 게다가 삼성가에서는 고 이병철 회장의 유언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건희 회장이 과거 허경영 씨와 한집에서 지냈던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할 경우 그 한마디로 거의 모든 검증은 끝난다고 볼 수 있음. 공식적인 언행을 꺼리는 이 회장이므로 거의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감이 장난이 아님. 더구나 이런 언급은 심지어는 삼성그룹의 모든 임원진과 사원들에게 허경영을 찍으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건희 씨가 17대 대선 전에 혹은 그 이후로도 허경영 씨에 대해서 언급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수 있음.
반기문
부시 재임 축하파티에 초청되어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남.(2002) 부시에게 유엔 사무총장으로 반기문 씨를 추천함. 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에 오름. (2005)
반기문 씨가 자신을 부시에게 추대한 허경영 씨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추대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음. 만약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고, 그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면, 허경영 씨는 그순간 전세계인에게 검증됨.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전혀 없을 듯.
서울대 교수진
IQ430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함. 필자는 이부분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모두들 그의 아이큐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이 대목을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고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허경영 씨를 소개하면서 아이큐 430의 신동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음. 그런데 나중에 박대통령이 서울대 교수진을 불러 지능검사를 하게 한 후 아이큐 430이 나와서 크게 놀란 적이 있다는 대목이 있음. 이 부분이 시기적으로 서로 모순됨.
일단 그 서울대 교수진이라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겠으나 만약 가능하다면 검증할 필요가 있음.
교수진이 모두 돌아가셨거나 검증 불가능할 경우 당시 기록을 찾을 필요가 있고, 그것도 불가능할 경우 1970년 당시 지능검사에 사용된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음. 그러나 이런 방법은 검증에 크게 유효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음.
허경영 씨는 이와 관련해서 아이큐 430으로 측정된 것은 진실이며, 그때 60문제를 60분 만에 푸는 식으로 검사하였는데, 이것을 5분 만에 다 풀었다고 주장함. 어떤 문제가 등장했었는지도 두세가지 소개하였음.
결어.
이번 17대 대선에 출마하는 허경영 후보의 정책은 이미 완결되었습니다. 약간은 수정과 보완을 하겠지만, 기본 골격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미래의 정책은 알 수 없는 것이고, 과거의 행적이 밝혀진다면, 허경영 씨는 그에 정당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 사료됩니다.
허경영 후보의 정책은 모두 33가지이며, 경제공화당을 창당하여 단일 후보로 출마하며, 여의도의 가장 중심에 있는 맨하탄 빌딩에 선거캠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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