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에서... 역사를 살펴 봅니다.
친구들과 만든 커뮤니티에서 제가 쓴 글을 퍼온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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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은 총 24대를 거쳐 500년을 지속해 온다.
24명의 왕 중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거나 업적이 유달리 뛰어난 몇명의 왕을 꼽을 수 있는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태조 : 이성계, 고려의 무관으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세운다. 조상이 고려 무신 정권을 열었던... 이의방이라나? 조상이 못한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2. 태종 : 이방원, 심약한 형 정조를 이어 왕권 확립을 위해 대부분의 개국 공신들을 피로써 쳐내고 문치 시대의 기틀을 마련한다.
3. 세종 : 아버지 태종이 마련한 견고한 왕권과 형 양녕 대군의 양보로 왕위에 오르고 다들 알다시피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문에 힘쓰고 한글을 창제하며, 장영실이라는 천민을 등용하여 백성의 안위를 돌보는 등 파격적인 인사까지 단행하는 조선 최고의 문화 중흥을 이루는 왕이다.
4. 영조 :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일 정도의 잔인한 아버지라 표현되기도 하지만 조선 중기로 들어서면서 사대부들의 득세로 나약해 지는 왕권을 바로 잡기 위해 아들까지 죽이는 결단을 보인 왕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로써 당파 싸움에 치닫던 사대부들은 영조 앞에서 쥐죽은 듯이 지낼 수 밖에 없었다.
5. 정조 : 사도세자의 아들로 할아버지인 영조가 다시 세운 왕권을 확고히 하고 백성들의 실제적(경제적) 구제를 위해 개혁을 단행한다.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 '정조대왕'의 사상과 시대적 상황을 통해 우리 시대의 대통령 '노무현'을 비추어 보자 함이다.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 '대왕'이라 칭송받는 왕은 몇명이나 될까?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누가 있나? 아마... 정조대왕 이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을 거다...없다고? 그럼 말구~)
그럼 먼저 정조대왕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자.
정조가 등극했을 때 영조의 기행에 한참 기눌려 있던 사대부들은 기가 살아있었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한 것이 할아버지 영조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 사대부들의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정조는 등극과 동시에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바로 남인에 뿌리를 둔 실학파와 노론에 뿌리를 둔 북학파 등의 개혁적 진보세력을 조정에 대거 등용한다.
홍대용,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등 진보세력은 사농공상의 직업적 차별을 없애고 경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사대부들의 절대적 반대에 부딪히며 그 빛을 잃어간다.
예상보다 강력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정조는 자신의 개혁 의지를 가슴속에 잠시 담아둔다.
이들 진보세력은 정조의 밀지를 받아 경세치용, 실사구시, 이용후생에 힘쓰는데 거중기, 자산어보, 과농소초 등... 백성의 궁극적인 생활 개혁에 힘쓰며 민심을 어우른다.
이러던 중 정조의 최후 밀지를 받은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은 정약용 등과 함께 수원에 계획 도시, 수원성을 축조한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은 수원성의 의미이다.
왜 정조는 한양의 아래 쪽에 그리고 거리가 가깝지도 않은 수원에 왜구의 침략도 없고 오랑캐가 관심도 없는 곳에 성을 짓게 했을까? 겉으로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기에 이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지만...
후세의 학자들 중 일부는 아마도 정조가 그곳에 새로운 도읍을 만들어 구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양과는 별도의 터전에서 신진 세력들을 중심으로 개혁적인 정치를 펴려고 하였던 것으로 추축 한다.
실제로 건강하던 정조는 수원성이 완공된 몇년 후 갑작스럽게 병으로 사망(이를 암살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하고 이후 북학파 등의 진보세력은 수구 세력에게 처참하게 몰락 당한다.
조선의 역사에서 왕과 개혁세력 그리고 백성의 뜻이 함께한 최초이자 마지막 개혁운동이 이렇게 막을 내린다.
지금까지의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들어 볼때 우리시대 정치 행태와 민심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지는 맥락이 얼마나 유사하고 맞아 떨어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정조대왕과 실학파, 북학파의 개혁 운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한 개혁의 실패로 인한 것인지 약 100년도 안되서 조선은 세계열강에 의해 침탈 당하고 급기야 나라까지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를 걷게 된다.
개혁은 개혁을 필요로하는 시대가 있다.
시대적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고 변혁이다.. 안정우선이다..를 외쳐가며 시대의 흐름을 억지로 막은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영광스럽게도 근 200여년 만에 우리시대에 찾아온 개혁의 거센 물결을 역사의 뒤안길로 다시 보낼 수는 없다.
주어진 소명과 기회를 안정이라는 이유로 묻어버리면 안된다.
이제 썩은 물을 퍼내고... 썩은 바닥도 깨끗이 청소하고... 수초가 자라고... 물고기가 헤엄칠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상처가 나고 멍이들어도.. 시대가 원하는 소리다...
시대가 개혁을 원한다... 받아들이자...
세월이 흘러 우리 후예들이 땅을치며 무덤속의 우리를 원망하는 소리를 듣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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