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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bestofbest_35796
    작성자 : grandchase
    추천 : 180
    조회수 : 10678
    IP : 211.207.***.72
    댓글 : 12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0/05/07 12:30:15
    원글작성시간 : 2010/05/07 06: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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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채널e - 잊혀진 대한민국 IV 0517034553 그 시절







    민족정기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거든요. 거기서 어떤 문제가 파생하느냐, 우리 자신이 친일파와 마찬가지 인물이 되어버렸어요. 자손들한테 민족정기다 애국해라 무슨 얼굴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겠어요. 친일파를 처벌하지도 못했고, 그 사람들이 날뛰는 꼴을 그대로 봐왔고, 친일파에 대한 단죄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그 세대로서 대한민국 전체가 그런 식으로 되어버렸다는 것, 그게 큰 문제예요. 후세에 대해서 민족정기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 이건 앞으로도 그 구정물이 100년이 지나서 가셔질지 50년 지나서 가셔질지 아니면 200년 지나야 가셔질지 알 수 없는 상태 그거 생각하면 한심할 때가 많죠.

    -임종국 선생





    ========================================================================================



    친일명단 일등공신 임종국 선생은 누구인가? (기고 - 김상웅<독립기념관장>)

    캄캄한 밤길에 초롱불을 들고 걷는 사람이 있었다. 길동무도 없었고 밤길을 헤쳐갈 지팡이 하나도 없었다. 사위는 어둠에 묻혀 있었고 용비어천가만이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지금도 친일파 얘기만 나오면 먹기살기가 어렵고 국민 화합이 중요한데 지난 일을 꺼내 시끄럽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 많다. 1960~70년대에는 지금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때 최고 권부는 물론 사법·언론·검찰·학계·문화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친일세력이 주름잡고 있었다. 내선일체, 천황만세, 귀축영미를 부르짖던 자들은 유신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어용지식인들은 일제강점기에 불렀던 용비어천가를 가사만 바꿔 합창하고 있었다.

    친일파 문제는 용공 좌경과 동류항으로 묶이고 이단이거나 사문난적으로 취급되었다. 실제 분위기가 그랬다.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의 폭력에 짓밟힌 이래 친일파 연구는 한국사회에서 금기의 대상이 되었다.

    친일파 세상에서 친일파를 연구하거나 척결하자는 주장은 사상이 불순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반공이 국시인 체제에서 '사상불순'은 곧 좌경 빨갱이와 같은 등식이었다.




    친일파 연구가 금기이던 시절

    임종국, 그가 맨 처음 초롱불을 들었다. 아무도 걷지 않는 밤길을, '어둠의 자식들'이 가로막고 있는 가시밭길을 혼자서 외롭게, 그러나 의롭게 걸었다.

    임종국 선생은 1929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천도교 청우당 대표로 친일회의를 주재하고 국방 헌금을 모집했던 친일파 임문호이다. 매국노나 A·B급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지방에서는 행세 깨나 하던 친일인사였던 것 같다.

    이같은 사실은 임종국 선생이 본격적인 친일문제를 제기하면서 스스로 밝혔다. 이번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등재 예정자 중에는 그의 선친도 들어있다. 선친의 과오를 참회하는 마음이 친일문제를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1952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1956년 졸업을 했다. 그 무렵 대학 정외과는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그도 한때 판·검사가 되고자 고시공부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임종국은 출세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보다 시인 이상 연구에 몰두한 문학청년이었다. 졸업 후 <이상전집>을 펴내고 1959년에는 <문학예술>지에 시 '비(碑)'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사상계>에 많은 시와 평론을 발표했다. 태평한 세월이었다면 그는 시인으로, 문학인으로 종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의 상황은 역사의식이 남다른 문학청년을 문학의 영역에 안주하게 만들지 않았다. 일본군·만군 출신들이 중심이 된 박정희 정권은 1965년 일본과 저자세 굴욕회담을 벌이고 있었다. 시민·학생들이 반대 투쟁에 나서고 정부는 계엄령과 위수령을 반복하면서 반대를 누르고 굴욕회담을 마무리지었다.




    패전 군인이 노려보며 남긴 말 "20년 후에 다시 돌아온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모습(가운데). 박 전 대통령은 왼쪽에 서 있는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에 포함돼 있다.


    굴욕회담을 지켜보던 임종국은 불현듯 해방 직후 자신의 고향에서 체험한 어떤 일화가 떠올랐다. 당시 17세 소년이던 그는 패전 소식에 주눅이 들어 곧 일본으로 쫓겨나게 될 한 일본군을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소년을 매섭게 노려보던 일본 군인은 소년에게 다가와 "일본의 패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겁에 질린 소년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군인은 "두고 봐라, 20년 후에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8·15 패전이 확인되면서 군·경찰에 사복을 입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은근히 소문을 퍼뜨렸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 일본놈 일어선다"는 유언비어였다. 총독부의 이같은 유언비어는 금방 경향 각지에 소문으로 떠돌았다. 임종국이 만난 군인도 총독부의 지령을 받았을 것이다.

    무서운 눈빛의 일본 군인 말대로 정확히 20년 후 체결된 굴욕적 한일협정은 성인이 된 임종국에게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문학의 이름으로 더이상 음풍농월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진로를 바꾸었다. 배족사(背族史)의 친일연구라는 고난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누구의 가르침이 없는 스스로 체득하고 택한 길이었다.




    혼자 하는 반민특위 활동

    반민특위가 무산된 지 17년이 지난 1966년 '제2반민특위'가 열렸다. '열렸다'는 표현보다는 반민자들의 기소장이 제기되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친일문인들에 대한 임종국의 매서운 기소장이었다.

    임종국은 이 해 <친일문학론>을 펴냈다. 변호사도, 재판장도, 방청객도 없는 역사의 법정에서 친일문인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였다. 그 때까지 한국 근현대문학의 성좌와 같았던 문인들이 대부분 배족의 친일부역자들이었다는 추상같은 고발은 한국문학사에 일대 경종이었다.

    혼자 하는 반민특위 활동은 문학부문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확대되었다. <발가벗고 온 총독>(1970), <정신대 실록>(1981), <일제침략과 친일파>(1982), <밤의 일제 침략사>(1984), <일제하의 사상탄압>(1985),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1·2>(1988, 1989) 등 일제 침략사와 친일파 연구에 기본 사료가 되는 저서와 자료집을 잇따라 출간했다.

    연구 영역도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종교·예술·군사·언론 등 전역에 걸쳐 진행되었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한 실증적 관찰이었다. 그가 한번도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충실한 '자료' 때문이었다.

    친일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친일관련 저서가 환영받을 리 없다. <친일문학론>이 초판 3천부를 소화하는데 10년이 걸렸다. 제도권 학자들은 '넝마주이'라 비아냥대고 이단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는 괘념치 아니하고 '재야 사학자'의 타이틀로 친일연구에 몰두했다.

    생활고로 서울에서 버티기도 어려웠던 데다가 지병인 천식이 폐기종으로 전이되자 그는 천안 교외에 '요산재'라는 외딴집을 짓고 닭을 키우면서 배족사에 관한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원고료 몇 푼 나오면 헌 책방을 뒤지거나 대학도서관의 자료 복사비에 쏟아부었다. 생활은 궁핍하기 그지없고 날이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었다. 병원에 오래 입원할 처지도 못되었다.

    궁핍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배족사 연구는 그칠 줄 몰랐다. 필생의 과업으로 10권 분량의 <친일파 총서>를 기획하였다. 틈틈이 마련한 수천매의 친일파 인명사전 카드는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소중한 사료로 보존되어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텍스트가 되고 있다. 선생은 이 과업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89년 11월 12일 61세의 생애를 접었다.




    그는 철저한 외면과 멸시 속에 떠나갔다



    ▲ 2003년 11월 9일 열린 고 임종국 선생의 14주기 추모제.
    ⓒ2005 박도


    임종국의 배족사 연구는 제도권에서 철저히 외면되었다. 그의 글을 실어주는 신문도 잡지도 거의 없었다. 어쩌다 글을 실었던 매체는 더이상 게재가 어렵다는 통고가 따라다녔다. 그가 사망했을 때도 언론은 1단 기사로 처리하거나 아예 취급하지도 않았다.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해방 전후사의 인식(1)>이 판금된 배경은 이 책에 비중 있게 실린 임종국 선생의 '일제말 친일군상의 실태'란 논문 때문이었다. 일제 말 친일군상의 대부분은 해방 후 분단과 독재군상으로 탈바꿈하고, 이들과 그 후예들이 칼자루를 잡고 '판금'의 딱지를 붙였던 것이다.

    임종국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친일군상들이 활개 치는 암울한 시대에 혼자서 '반민특위 활동'을 전개하다가 쓸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가 동토에 뿌린 씨앗은 몇 후학들에게 이어지고 반민족문제연구소에 이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라는 묘판으로 성장하였다.

    아무리 같은 시대를 살아도 관념의 깊이나 인식의 부피가 같을 수 없다. 임종국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많은 지식인들이 배족자들을 기리면서 평안하게 살아갈 때 그는 외로운 고난의 길을 택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궁핍과 싸늘한 모멸이 따랐다.

    어쩌면 그는 '바보같은 일'만을 하다가 죽었다. 죽은 뒤에도 쉽게 햇볕은 비춰주지 않았다. 배족의 무리에게까지 문화훈장과 각종 상이 추서되는 판에 그에게는 망각의 너울만이 쌓여갔다. 뒤늦게 올 3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설립되어 선생의 뜻을 되새기려 한다. 그리고 '임종국문화상'을 제정하여 역사정의 실현에 활동하는 인사들을 격려할 계획도 세웠다.




    선생은 세상을 뜨기 2년 전 다음과 같은 절규를 유언처럼 남겼다.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도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15년 걸려서 모은 내 침략, 배족사의 자료들이 그런 일에 작은 보탬을 해줄 것이다.
    그것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




    금관문화훈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사는 유일한 존재다. '세(世)'는 시간, '계(界)'는 공간이다. 누구도 시공을 초월한 존재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주어진 시공에서 어떻게 살다 죽느냐는 것이다. 친일배족자들이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행세해도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산자락 빈 터에 묻힘을 면치 못하고, 역사와 후손에게 오명만 유산처럼 남겼다.

    반면에 애국자들의 삶은 험난했지만 그들의 성망은 역사에 정사(正史)로 남는다. 임종국의 삶도 이와 같다. 그의 16주기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이제 임종국 선생께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여 업적을 기렸으면 한다.




    다음은 오늘에 이르러 임종국 사상의 일면이라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선생의 유고 한 대목이다.

    "아일랜드는 300년만에 압박을 벗었고 유대 민족은 2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으나, 그들은 민족의 전통을 상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불과 35년으로 이 지경까지 타락했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민족 전체의 수치로서, 맹성은 물론 환골탈태의 결사적 고행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 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다."

    ========================================================================================









    [친일파의 역사]

    남한의 경우 이승만 정권의 반역사성 때문에 한 사람의 친일파도 제대로 숙청되지 않았다.

    4·19는 그런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렸으나 혁명 주체세력이 정권을 쥐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색이 짙은 민주당 장면정권이 권력을 잡았다 .

    이후 구일본군 장교출신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결국 한국은 친일파의 숙청은 시도조차 못하였다.

    그래서 과거의 친일세력이 아직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 60년에 걸쳐 성장한 친미세력도 사실상 친일파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친일파들은 주인만을 바꾸어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주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미국만을 쳐다보고 미국이 모든 일을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점은 친일을 하건 친미를 하건 독재를 하건 잘살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식이 한국국민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으로는 바르고 희망찬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청산의 의미]

    과거 청산이란 부당한 행사나 불법 행위로 인해 일어난 피해 문제로서

    진상 규명과 피해 규제, 명예 회복 등을 통해 피해자의 한을 풀고

    국가와 가해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과거에 일어난 죄를 다시 환기시켜 정의를 실현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응답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하여

    궁극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확대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청산의 방법에 대하여 역사가 볼프손(Wolffsohn)은 4W (Wissen[앎],

    Werte[가치], Weinen[슬퍼함], Wollen[의지])를 제안한바 있다.

    즉 과거 청산이란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하고, 그 행위를 악한 것으로

    가치 판단을 해야 하며, 피해자의 슬픔을 이해하고 같이 할 준비를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해 좀 더 도덕적이고 일반적인 무엇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은 일어난 사건에

    대해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청산은 반드시 책임 문제로 귀착되어야 한다.

    이것은 죄나 피해의 책임을 밝히고 묻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진상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직접 가해를 가한 사람은 물론, 그런 행위를 하도록 지휘하거나

    방조한 책임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이런 책임은 사회화해 해야 한다.










    [친일파의 10대 궤변과 그 반론]

    1. 색깔론

    ■ 친일파의 주장

    해방 직후에도 친일파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당 사람들이거나

    이들과 가까웠다. 친일파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단골 주장이다.

    지금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자들은 죄다 빨갱이다.

    ■ 반론

    대체로 이들의 조상에는 전직 친일 경찰 군인들이 많다.

    그리고 친일파들은 6 25 때 자신들의 부친이 '북괴의 남침'을 막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애국자(founder)라고 주장한다,

    빨갱이들이 이를 미워해 친일청산 명분을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이 결코 아니다.

    독립국가 건설을 막기 위해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일제의

    주구들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이들의 반공은 생존 본능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2. 공과론(功過論)

    ■ 친일파의 주장

    비록 한때 친일을 했더라도 민족에게 끼친 공로가 많으니, 한때의 친일로 한

    인간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식민지 시기 교육, 언론, 학술, 문화 다방면에서 선각자로서의 활동이나,

    한때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후 반공활동이나 기득권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활동들을 공으로 든다.

    ■ 반론

    친일파들이 부분적으로 공이 있더라도 민족 전체에 대한 범죄행위가 심각할진대

    정상참작이 아닌 면죄부로서 공을 격상시키는 것은 주와 종이 바뀐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공과론에는 '공'은 내세울지언정 '과'는 결코 스스로 언급한 적이 없다.

    모 신문사 사주처럼 친일 행적은 감춘 채 민족운동가로 묘사하는 것은 공과론을 넘어서는 기만행위다.

    김동길이 말하는 16인의 각 분야의 업적이란 것도 일제시기 그들이 친일의 대가로

    보존해 온,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고스란히 유지된 그들의 사회적 기득권을 말한다.

    제대로 친일세력을 청산했으면 이런 기득권이 그들에게 남았겠는가?

    지금의 조선일보, 동아일보처럼 언론의 위세를 빌어 이렇게 설칠 수 있었겠는가?












    3. 공범론(共犯論)

    ■ 친일파의 주장

    그 때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다.

    공범론자들이 곧잘 드는 예가 창씨개명이다.

    다 친일했는데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냐는 주장이다.

    당신도 그 때 태어났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협박도 여기에 포함된다.

    ■ 반론

    친일파 청산 세력들은 창씨개명이나 말단 생계유지형의 소극적 친일을 한 사람을 친일파라 한 적이 없다.

    친일파는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일제에 협력하고 민중에 대해 해악을 끼친 적극적인 인자들을 뜻한다.

    우리 또한 일제시기 태어났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100%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은 누구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따라서 살인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기막힌 논법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4. 망각론

    ■ 친일파의 주장

    과거는 흘러갔다는 논리이다.

    50년이 지난 이 시점 당사자들도 다 죽었는데 친일파 청산은 궤변이라는 주장이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의 해체로 친일파 청산 재론은 일사부재리에 해당한다는 '법리적 주장'도 포함된다.

    ■ 반론

    친일파들에 대한 법적 제재는 불가능해도 이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속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해방 후 이들이 기득권을 포기, 자숙하지 않고 온갖 기념사업까지

    전개하면서 또 한번 역사 왜곡을 저지르는 한 친일문제는 잊혀진 과거사가 될 수 없다.









    5. 범부피해론(또는 호구책론)

    ■ 친일파의 주장

    권력의 강제에 의해 친일을 했기 때문에 연약한 개인(범부)이 이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는 주장이다.

    서정주는 해를 따라 살아가는 무지랭이인 '종천순일파'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 반론

    당시 친일은 강요도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도 매우 중요했다.

    또 백번을 양보해 개인로서 불가항력이었다 할지라도 그에 따른 타인(민중)의 피해에 대한 속죄는 상식이다.

    가난하다고 도둑질하면 용서를 빌지 않아도 되는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제시기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서 공인적 성격이 강했다.

    친일파들이 해방 후 반성하고 자숙했으면 이 주장은 성립된다.

    그러나 해방 후 이들은 범부의 삶보다 '민족지도자'의 화려한 영광을 그대로 누리고자 했다.

    다른 모든 행위는 민족지도자로서의 비범함에서 나오고

    친일행위만은 범부의 것으로 자신을 분해시키는 몰염치성이 더 큰 문제이다










    6. 직분충실론(또는 희생론)

    ■ 친일파의 주장

    박정희는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다녔다.

    민족언론(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다. (김활란, 모 언론사주)'는 주장.

    ■ 반론

    이 같은 직업의 탈윤리화 속에는 기득권의 영속화와 역사의 면책 욕구가 숨어 있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친일의 핵심이다.

    일제가 추구한 친일세력의 구조화는 바로 문필보국, 언론보국, 황도예술 등 '직업봉공'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 언론을 살리기 위해 친일을 했다는논리 아닌 논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7. 순교자론

    ■ 친일파의 주장

    당시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민족의 선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고 주장한다.

    즉 '역사의 희생자(순교자)'라는 논리이다.

    대표적인 논자가 3 1절 명단 발표 후 이른바 문제의 16인을 월간조선을 통해 적극 옹호한 김동길 교수이다.

    ■ 반론

    김동길 교수는 16인의 친일을 일종의 순교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해외 망명 독립운동가에 대한 멸시와 국내 친일파에 대한

    순교자적 숭배라는 뒤바뀐 역사관을 확인한다.

    따라서 친일파에 배한 비판은 민족반역이라는 희한한 논리가 나온다.









    8. 연좌제의 부활

    ■ 친일파의 주장

    이제 와서 친일파 명단을 거론하는 것은, 죄 없는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 반론

    연좌제를 잘못 해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일파 청산의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친일파 청산의 의도는 친일파의 후손을 벌주고 보복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행여 조상의 친일 문제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9. 국론분열론

    ■ 친일파의 주장

    친일청산은 양육강식의 세계화 시대에 민족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담론이라는 주장이다.

    ■ 반론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친일만이 아니라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이나논쟁은 민족 통합의 적이 되는 셈이다.









    10. 정치적 음해론

    ■ 친일파의 주장

    정치권에서 종종 나오는 정치인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모략과 결합된 음해라는 주장이다.

    ■ 반론

    물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문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치음해론을 빌미로 친일청산 그 자체의 필요마저 부정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고 검증된 민간단체에 친일문제를 위임함으로써

    민족 성원 모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극적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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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7 06:57:34  222.117.***.66  
    [2] 2010/05/07 07:12:56  121.1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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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0/05/07 08:44:12  121.154.***.24  진정한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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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0/05/07 08:50:52  180.71.***.231  비슬리
    [9] 2010/05/07 09:00:16  211.24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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