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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법과 도덕이 일치하지 않을때, 그중에서도 특히 그 도덕이 대중적인 공감대를 가진 것일때, 사람들은 '악법'이라는 말 한마디로 혼란을 해결하려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법이 옳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법을 의구심없이 받아들이고, 법과 대중적 도덕이 일치하지 않을시에는 대중덕 도덕을 의구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양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의문을 던지지 않고, 말 그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것은 결국 도덕의 퇴보 또는 도덕적 불감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얘기를 하나 해보자.
우리는 무단횡단을 '해선 안되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으며 거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무단횡단은 '왜' 해선 안되는 것인가? 법이라서? 비도덕적인 행동이라서? 그건 답이 되지않는다.
여기서 답이란 이런거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자신 또는 운전자들에게 심각한 물리적 손실을 입힐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운전자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보행자가 나타남으로서 혼란을 주고, 그로 인해 교통체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것을 막고자 보행자가 이용할 수 있는 육교, 지하도,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것을 적합하게 사용해서 차도를 건너는 것이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에게 안전하고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세세하게 표현하려다보니 조금 장황해졌다.)'
물론 이쯤은 누구나 잠깐만 생각하면 이를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한적한 시골 국도 앞에 서있다. 양쪽으로 쭉 뻗은 차도 어디에도 차는 안보이는데, 차도를 건널 적법한 수단도 없다. 여기서 무단횡단을 하는건 비도덕적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질문을 도전적으로 바꿔보자.
'당신의 앞에 빨간 보행자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가 있다. 횡단보도는 길지 않으나, 바로 앞에는 직진을 기다리는 차량들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이 횡단보도를 수도 없이 건넜으며, 그 경험을 통해 여기에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있다. 즉, 이 횡단보도는 당신이 지금 건너고도 한참동안 아무 차도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신호위반을 하고 건너는건 비도덕적인가? 만약 비도덕적이라면 왜 그런가? 사고가 날 위험도, 당신때문에 교통체증이 증가할 가능성도 없는데. 위에서 무단횡단이 비도덕적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모두 해당되지 않는데.'
마지막 질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무단횡단은 나쁘니까/불법이니까'라는 답변은 적절하지 않다. 이유를 생각해내야한다.
사실 이유는 많다. 3거리 이상일 경우, 우회전 차량을 예상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아무도 지나지 않을 것이란 전제는 틀리게 된다.
또는 나 하나가 건너는 건 문제가 안되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다보면 해당 횡단보도에서 교통혼란이 생기게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치 못한 당신의 행동에 대기하고 있던 운전자들이 깜짝 놀라고, 그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만일의 경우에는 위의 질문과 유사한 사고로 운전자가 진입해 들어와서 당신과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법이니까, 상식이니까, 당연하니까가 아니라,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가치판단을 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가치판단의 결과로 당신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얘기를 하나 더 해보자.
'당신은 지금 막 전철에 올라탔다. 좌석이 가득 차있고 사람이 몇명 서있는데, 노약자석은 텅 비어있다. 그러나 노약자석은 노인/장애인/임산부 등 이동약자를 위한 좌석이다. 이 상황에서 당신이 노약자석에 앉는 건 비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일 이유는 당연히 없다. 만에 하나, 노약자석이 우선권을 부여하는 작은 의미가 아니라, 해당되는 사람들만 앉도록 지정된 좌석이라해도 그렇다. 당신은 거기에 앉아있다가 이동약자가 탑승하면 자리를 비켜주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 변수를 추가하면 어떨까?
노약자석이 텅 비어있는게 아니라, 다른 자리는 다 차있고 딱 한자리만 남은 상황.
노약자석이 비어있는건 맞는데, 서있는 사람중에 노약자가 있는 상황.
노약자석이 비어있기는 한데, 만원전철이라서 서있는 사람 중에 노약자가 있는지는 커녕 탑승하는 사람중에 노약자가 있는지조차 구분 못할 상황.
반쯤 농담을 던지자면, 노약자가 탑승하긴 했는데 당신보다 훨씬 더 건강해보이는 헐크같은 할아버지일 경우엔 비켜줘야 하는건가?(다시말해서, 그 사람이 이동약자가 맞기는 한가?)
이 질문들에 답을 내는 건 당신의 몫이다. 앉으면 안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항상 텅텅 비어있다. 노약자석은 비어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서서간다.
설령 당신이 앉으면 안된다는 이유를 냈다 하더라도, 그건 한가지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버스의 노약자석은 다수의 사람들이 그정도로 신경쓰지 않는다. 비켜야할 상황이 아니면 그냥 앉아가지. (지하철과 버스의 노약자석은 동일한 취지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이 장황한 얘기들은 한가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가치판단 하기보다, 이미 가치판단 된걸 받아들이는데 더 익숙하다는 사실.
예시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으로 들었지만, 이러한 태도는 결국 위에서 말했던대로 도덕의 퇴보 또는 도덕적 불감증을 불러온다.
길게 얘기할거 없다.
한때는 여성이 차별을 받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한때는 장애인이 병신이라 불리며 놀림거리가 되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한때는 성적 소수자가 변태 또는 정신병자로 불리며 모멸을 받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저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다른 종류의 차별, 또는 무인식에 익숙하다.
생각을 해보라.
당신은 다른 인종/민족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한적이 있는가.
당신은 혹시 황우석/디워 사건때 그들의 도덕적 결함을 무시하고 국위선양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지는 않았는가.
당신은 국방의 의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어떠한 가치를 지녔는지 스스로 판단을 했고, 그걸 얘기할 수 있는가.
당신이 하는 말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그것이 옳다고 납득한 당신의 말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판단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한가.
이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법, 보편적 도덕, 상식이라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줄이는 것이지, 사회가 도덕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도덕이라는 것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누가 쥐어주는게 아니다. 그 상호작용으로 주어진 이슈들을 스스로 판단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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