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듯한 더위도 어느덧 한풀 꺾이고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었다. 어느 주말이었다. 누군가는 편하게 누워서 TV를 보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자리에 누워 꿀맛같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몇명의 심기는 몹시 불편했다.
다른이들과는 달리 이 황금같은 주말에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지 보급관님의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투덜대며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가을햇살과
얼굴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작업을 마치고나면
좋은걸 준다고 흘리듯 말한 보급관님의 한마디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작업은 정오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옷을 갈아입고 지친몸을 침상위에 뉘였을때 작업한 인원들을
찾는 보급관님의 호출이 들려왔다. 혹시 포상이라도 한장 주는건가 하는 설레임으로 모인 우리들이 향한곳은 취사장이었다.
왜 취사장에서 모인건지 의아해 하고 있는데 보급관님은 우리에게 니들 닭 좋아하지? 라는 말을 건넸다. 우리가 작업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나가서 치킨이라도 사온 모양이었다. 포상이 아니란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치킨이 어디냐라는 생각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좋아합니다! 라고 외쳤다. 차에 갔다온다며 보급관님은 취사장 밖으로 사라졌고 간만에 사제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시는 차에 보급관님이 다시 취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치킨이었다. 치킨은 치킨인데 제조과정에 약간 문제가 있는듯 보이는 치킨이었다. 잘 튀겨진 튀김옷 대신 깃털이 달려있었고
길다란 모가지 위엔 머리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보급관님의 양손엔 치킨대신 살아있는
닭이 한마리씩 잡혀있었다. 알고보니 보급관님 집에서 키우는 닭들이었다. 보급관님은 큰맘먹고 가져온거라며 우리에게 백숙을
해주겠다며 일반 사병에겐 처음 해주는거니 영광으로 알라는 말을 하셨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우리들은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고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백숙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닭을잡는 보급관님의 손놀림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순식간에
닭 한마리를 해체하는 보급관님의 모습을 보며 보급관님의 노후대책엔 전혀 문제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온 전화를 받던 보급관님은 잠시 행정반에 다녀오겠다며 남은 한마리를 우리보고 잡아 놓으라는 말을 하셨다.
놀란 우리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며 손사레를 쳤지만 보급관님은 방금 본대로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당황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결국은 우리끼리 할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급관님 성격상 이대로 손놓고 기다린다면 불호령이 떨어질게 뻔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다. 다들 생긴것과 어울리지 않게 도시출신들이라 섣불리 먼저 다가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미루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지목된 옆소대 동기는 육교위에 네모난 상자에서 처음 만난 얄리가 생각난다며 도저히 못하겠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고
고참 역시 자신은 개구리 해부도 못한다며 거절했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일치된 곳은 나였다. 짬에서 제일 후달렸던 나는 나 역시
슬기로운 생활 시간에 부레옥잠도 반으로 못자르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임을 피력하며 차라리 괴뢰군의 심장에 총칼을 밖아넣었으면
넣었지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는 거절의 의지를 단호히 했다. 그때 아무말도 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참이 입을 열었다.
자신이 하겠다는 것이었다. 역시 짬은 거저 먹는게 아니라며 우리는 그 고참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있게 내뱉은 말과는
달리 그 고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고참의 손에 의해 닭의 모가지는 비틀어졌고 한참을 푸드덕대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이미 시간은 지체됐지만
처음에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 인지 다음 과정이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담배를 한대 피우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리는
담배를 피기위해 취사장 밖으로 나섰다. 한참을 더 토론한 뒤에야 목을 따서 피를 빼야한다는걸 기억해 냈고 우리는 전쟁터라도 나가는
군인들 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취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닭은 그 자리에 없었다. 아무리 취사장을 뒤져봐도 닭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우리들은 취사장 이곳저곳을 뒤져봤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짬타이거가 물어갔나 취사장 뒤편 짬통으로 가봐도 닭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때 찾았다! 라는 고참의 외침이 들려왔다. 닭은 식당에 있었다. 지져스 치라이스트. 분명 목을 비틀어 죽인 닭이 멀쩡하게
식당을 활보하고 있는것이었다. 과연 치느님이었다. 그렇게 장사한지 사분만에 죽은 닭 사이에서 다시 살아나신 치느님은 유유히 식당을
활보하고 있었다. 보급관님이 다시 돌아오고 왜 아직도 닭이 살아서 돌아다니는지를 추궁했고 우리는 우리가 목격한 기적의 순간을
보급관님에게 간증했지만 보급관님은 한심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보급관님은 확실히 죽은걸 확인하지 않으면 목이 꺾인채로
돌아다닐 때도 있다고 우리에게 얘기했고 우리는 그제서야 이 모든 사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런 놈들에게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을
맡겨야 한다는 이 개탄스러운 현실에 대한 보급관님의 탄식이 취사장에 울려퍼졌다.
그래도 닭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