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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35341
    작성자 : Pass871
    추천 : 2
    조회수 : 458
    IP : 211.215.***.201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03/11/26 16:34:02
    http://todayhumor.com/?humorstory_35341 모바일
    [공포]시체 업은 아줌마




    "저아줌마 완전 미쳤어요.." 

    판자 집으로 만들어진 산 사이로 어둠이 드리운다. 좁은 골목의 쓰레기 사이로 밤은 그림자처럼 찾아온다. 깨진 연탄 위에서 개들이 짖는다. 소리는 메아리 치며 판자촌을 덮는다. 아무도 시끄럽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일상의 편안함을 찾는 것은 이미 찢어진 다이어리 속지처럼 버린지 오래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진다. 낮에 애들이 장난치다 깨먹은 가로등 밑은 어둡다. 그 아이들은 이미 조그만 집으로 들어가 인적이 드물다. 피곤과 빈곤으로 잠은 빨리 찾아온다. 오늘도 개짓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그런데 하나의 소리가 더 들려오고 있었다. 
    골목 끝에, 집이 존재하지도 않을 듯한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은희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의 목소리다. 지금쯤이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만도 했다. 그러나 통곡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만이 낡은 스티로폼 벽을 뚫고 내 귀에 들려온다. 
    남편을 잃은 슬픔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남편을 잃은 지 이미 세 달이 넘었다. 공사판을 전전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지만, 보상금 따윈 없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은희 엄마는 식당 주방 자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등에 메고 있는 아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런 사람은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비심 많은 식당 주인을 만났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냉혹했다. 
    "무슨 일이래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골목에서 나는 소리 같다. 
    "아기가 죽었대요. 아파서 죽은 것도 아니고.... 굶어서 죽었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아이고 무서워라. 아기한테 아무것도 안 먹였대요? 은희 엄마가 미쳤나요?" 
    "모르겠어요. 멀쩡해 보이던데." 
    골목길을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은 자신의 말을 주워담듯이 몸을 추스르고 또 다른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아기.. 그러니까 은희의 죽음은 그들에게 한낱 가쉽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은희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가 화제로 떠오를 것이 뻔했다. 미치거나 죽거나.... 

    좀처럼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이 왔다. 밤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는 떠올랐고, 골목은 어린애들 노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은 더러운 옷을 아끼는 허물인 양 걸치고 일터로 나간다. 오늘 천구씨가 오기로 한 날이다.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두달 넘게 방바닥만 긁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인 것 같다. 어쨌든 벽에 걸어둔 한 벌뿐인 양복을 쓰날이 온 것이다. 
    "자네 아직 준비 안됐나?" 
    천구씨는 뻐드렁니가 크게 드러나도록 입을 내밀며 말한다. 어쩌면 험한 짓은 다해봤음직한 손이 그의 모자를 벗긴다. 다른 손에는 봉투하나가 들려있다. 
    "우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특유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메운다. 내 손에 넘겨진 봉투에는 만원짜리 몇장이 들어가 있다. 오늘은 양복 입고 나가기는 틀린 것 같다. 
    "거기 가서 사람들 겁좀 줘. 꼭 돈을 받아내라는 게 아니라, 우선 오줌 질질 싸도록만 해. 알았지?"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까만 가죽 잠바를 집어든다. 오늘 안으로 집에 들어오기는 틀린 것 같다. 이런 일은 늘 그랬다. 



    피곤이 몰려든다. 신경이 고양이털처럼 곤두서 두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번 일은 말끔하게 처리된 것 같다. 이제는 집에 가서 자는 일만 남았다. 구멍가게에서 담배 두 갑과 라면 세 봉지를 사서 다시 골목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벌레처럼 모여드는 저녁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골목은 너무 조용했다. 
    "그 아줌마, 미친 거 아냐?" 
    복덕방 앞의 노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그 거시기, 랩인가 하는 걸로 애를 싸서 업고 다닌다는 데.." 
    "아기? 죽은 애? 아이구 별 일도 다 있구먼..." 
    은희 엄마가 미쳐버린 것이다. 머지 않아 죽은 체로 발견될 것이 뻔했다. 이 동네에서는 쉽게 만들어지는 결말인 것이다. 입에 문 담배를 깊이 들이킨다. 연기가 쓰다. 
    이상한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났다. 두통이 몰려왔다. 잘못 들은 것인가? 다시 소리가 들렸다. 비명 소리다. 조그만 창문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시계는 2시 30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새벽에 무슨 소리일까? 비명 소리 뒤에 이어 개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 민감한 동물들은 정체 불명의 소리에 인간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조금 뒤 개짓는 소리는 작아지고, 이내 어두운 동내는 적막에 휩싸인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아무렇게나 대 놓은 창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난다.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차가운 바닥이 온몸을 오그라들게 만든 것 같다. 
    "야, 이놈아. 지금이 몇신대 아직까지 자냐?" 
    듣기 거북하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춘식이를 누운 체로 맞이한다. 
    "완전히 폐인이야. 폐인.." 
    작은 키에 빨간 목도리로 온몸을 두른 난장이를 연상케 했다. 창문으로 세어 들어오는 빛을 역광으로 받고 있어, 그의 유난히 큰 콧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무슨 소리 들었어?" 
    춘식이는 이불 속으로 발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천구씨 죽었대. 길거리에서 술 먹고 돌아다니다가 누군가 낫으로 등을 찔렀다는데.. 그것도 수십방. 엄청 감정 있었던 사람이나봐?" 
    천구씨에 대한 애도보다는 그 사람에게 직업 소개 받기는 이제 글렀다는 생각이 앞섰다. 벽에 기대어 앉았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굳은 살이 배긴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긴팔을 입고 있었다. 어제 옷도 벗지 않고 잔 것이다. 당연히 씻지도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얼굴을 더듬어 보았으나, 밤 사이 새로 생긴 여드름 같은 것은 없었다. 
    "오늘 아침 경찰들 왔어. 하지만, 뭐 이 동네에서 일어난 일, 관심이나 갖겠어? 솔직히 살인이야 흔한 일이잖아. 그저껜가? 애기도 죽었고.... 아. 그건 굶어 죽은 건가?" 
    그순간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춘식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하여튼 배고픔에 장사 없다니까.. 라면은... 여기 있고..김친 있냐? 내가 끓일 태니까 조금 더 자라." 
    춘식이는 라면 봉지를 집어들고 조그만 부엌으로 나간다. 라면을 끓이는 짧은 시간에 나는 벽속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를 맡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였지만, 그래도 꿈을 꾸었다. 
    달동내의 좁은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배고픔에 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현실과는 다른 법이다. 어쨌든 어두운 골목골목을 배고픈 개처럼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골목의 쓰레기장에 한 사람이 보였다. 어두워서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먹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는 사람은 은희 엄마였다. 입에는 아기의 팔의 일부가 처절하게 매달려 있었다. 고개를 돌리더니, 아기의 팔로 보이는 것을 내밀었다. 나도 먹으라는 것인가? 
    "야, 먹어." 
    춘식이가 발로 나를 깨우면서 말했다. 라면 냄새가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라면을 몸 속으로 들이부었다. 
    "아. 그리고, 은희 엄마 말인데..." 
    춘식이가 입에 면을 가득 넣은 상태로 말을 시작했다. 
    "그 아기 있지? 굶어서 죽은 게 아닌 것 같던데? 은희 엄마가 가난은 했어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데. 주위 사람들이 먹을 것을 주고 그래서...." 
    라면 국물에 김치를 풀어 넣고, 정신 없이 목구멍으로 부었다. 그 뜨거움으로 식도에 길이 생기는 것 같다. 
    "병인가? 그래도 건강해 보였데... 은희 엄마가 죽였을 리도 없고. 자기가 죽였으면, 저렇게 미쳐버리진 않겠지. 어? 벌써 다먹었네. 하나 더 끓여올게." 
    주전자의 물을 들이키더니 이내 냄비를 가지고, 부엌으로 사라진다.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춘식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천구씨 죽은 것도 그렇고, 이상한 일이 많이 생기니까 밖에 나갈 때 조심해라. 허기야. 네가 당할 놈은 아니지." 
    그 뒤에 춘식이가 뭔가 더 말했으나, 허기를 채우자 다시 졸음이 밀려들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춘식이는 돌아간 것 같았다. 누워있는 것도 지겨운 참이라 싱크대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는데, 출근하는 술집 아가씨들과 눈이 맞는다. 내가 인상을 쓰자,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버린다. 밥맛 없는 것들.... 
    좁은 계단에서는 아이들의 소꿉놀이가 한창이다. 계단 경사가 높아 위험할 것 같지만, 아이들을 제지하지는 않는다. 거기서 넘어진다면 크게 다치겠지만, 그것도 그 아이의 운명인 것이다. 그 운명 때문에 더 굳세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발을 돌려 술집 아가씨들이 나왔던 골목으로 들어가본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다. 그러나, 이 길은 무척이나 길다. 어쩌면 숨겨진 골목인지도 모른다. 이 길은 집들의 뒤로 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문은 보이지 않고, 좁고 어두운 길만이 계속된다. 그러다 보통의 골목과 이어진다. 
    이곳에서 위로 올라가면 머지 않아 길이 끝난다. 그러나 그쪽으로 걸어간다. 판자집들 위로 타들어가는 노을이 보인다. 지금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곧 다가올 밤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밤의 분위기는 썩 좋은 느낌이 아니다. 고양이조차 밤에는 아기 울음소리와 분간이 되지 않는 소리를 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꼬마 아가씨가 말을 옷자락을 잡아 당긴다. 하루 종일 밖에서 논 듯한 더러운 모습이다. 이 골목에서 연탄재를 몸에 묻히지 않고 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얼굴에는 깜댕이가 묻어있지 않다. 다른 애들보다는 깔끔하게 논 것이다. 하지만, 이 애도 결국 어른이 되면... 
    "빨리 안들어와!" 
    골목 한 귀퉁이의 그늘 속에서 문이 열린다. 그리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줄에 당겨 끌려가듯이 그 문 속으로 사라진다. 저 조그만 문으로 들어가면 어떤 풍경이 보여질지 궁금하다. 벌레 같은 사람들....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골목의 끝은 언제나 어둡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좁은 골목의 하늘까지 덮어버리려 하고 있다. 누군가 찢어진 광고지가 덕지덕지 벽에 붙어 있다. 광고지 옆을 지나면 조그만 창문이 보인다. 반쯤 깨지고, 그 부분이 신문지로 덮인 창문이다. 그곳에 얼굴을 살짝 들이 밀어본다. 
    방안에는 은희 엄마가 앉아 있었다. 벽 쪽을 바라보며 앉은 자세가 정신이 나간 사람 같다. 등에는 사람들이 말한 대로 랩으로 씌워진 아기가 업혀 있다. 지금쯤 부패가 되고 있을텐데.... 그러고 보니, 창문 사이로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듯 했다. 
    코를 막고 방안을 잘 살펴보았다. 아무렇게나 펴져있는 이불, 꺼져있는 조그만 티비, 반쯤 열려 있는 옷장. 아기가 죽은 이후로 정리 따위는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방바닥도 아주 차가워 보인다.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2년전 은희 엄마를 봤을 때 내게 했던 말이다. 그녀는 이삿짐을 힘겹게 들고 계단을 오르려던 참이었다. 나는 어떨껼에 짐을 들었다. 그녀는 날씬했고,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눈빛에서는 어둠이 느껴졌다. 그녀는 사양했으나, 나는 짐을 그녀의 새로운 집까지 들어다 주었다. 
    "남편이 일이 있어서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외국으로 일하러 나갔다고 했다. 나를 경계해서 남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편이 여기 없다고 나를 유혹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더 도와줄 일 없냐고 물어보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술집 여자거나 그렇게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것이 빠져나갈 수 없는 골목의 운명처럼 여겨졌다. 
    은희 엄마가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느린 동작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할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등에 업힌 아기가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아기는 죽어 있다.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찌뿌렸다. 아기 머리 위로 내려온 은희 엄마의 머리카락 때문에 잘못 본 것 같다. 하지만, 아기가 나를 잠깐 바라 본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은희 엄마의 손이 보인다. 손에는 낫이 들려 있었다. 낫은 핏덩이가 엉겨 붙은 듯한 검은 색을 띠고 있다. 춘식씨의 피일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뒷발로 플라스틱 쪼가리를 밟았다. 그 소리에 은희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아주 빠른 움직임이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녀가 쫓아오는 듯한 기분이 온몸을 감고 있었다. 이미 골목은 어둠 속에 잠겼지만,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렸다. 머리 속은 그녀가 들고 있던 낫으로 가득 찼다. 
    잠깐 멈추어 숨을 골랐다. 내 숨소리가 골목을 덮는다.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고양이가 쓰레기통 위에서 하얀 눈을 내보이며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담장 너머로 사라지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귀를 기울인다. 눈은 골목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본다. 그곳에서 천천히 기어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마의 땀을 훑어 내며 발길을 재촉한다. 

    악몽은 계속되었다. 깨어나 불을 켜면 언제나 같은 방에 같은 모습으로 거울을 보는 나를 보게된다. 그러나 악몽을 꾸고 깨어나 보면 내방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울 속의 나를 확인하고, 볼을 꼬집어본다. 깍지 않은 수염이 손등을 찌른 후에야 현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몸의 노곤함으로 쉽게 잠이 든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악몽은 다시 습격을 시작한다. 점점 현실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진다. 은희 엄마가 낫을 들고 있었던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도 분간하기 힘들다. 어쩌면 낫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천구씨의 죽음과 그녀의 낫이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잊으려 해도 그 두가지는 굵은 밧줄로 묶은 듯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상. 그녀가 골목의 어둠 속에서 천천히 기어나와 천구씨의 목을 찌는 모습이 머리 속을 장악했다. 곧이어 추악한 상상은 꿈에까지 나를 따라온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아침은 오는 것인가. 

    "계십니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열려 있는 문을 밀고, 까만 몸둥어리를 안으로 밀어넣는다. 
    "아. 주무시고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가죽잠바가 커다란 몸에 맞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불편해 보이지만, 벗으려 하지는 않는다. 손을 포켓으로 집어 넣더니 조그만 수첩을 꺼내든다. 
    "밤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 아십니까? 아. 저는 박수근이라고 합니다. 박형사라 불러주세요." 
    호의적으로 말을 꺼내고 있긴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살찐 볼 사이로 입술 근육이 씰룩 거린다. 천구씨의 죽음을 말하는 거인가. 
    "아.. 아닙니다. 김춘식 씨와는 친구 사이로 아는데요. 어제 춘식씨가 살해당했거든요. 혹시 최근에 이상한 점 보지 못했나요?" 
    먹은 것이 없어서 속이 쓰렸지만, 반쯤 남은 소주를 들이킨다. 뭔가 잘못됐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면 은희 엄마가... 
    "보복이라든지 그런 거 말입니다. 춘식씨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뭐였죠? 확실한 직업이 없더군요." 
    춘식이는 대범하지 못한 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많이 의지했다. 나 같은 쓰레기도 춘식이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춘식이에게 꾼 돈이 생각난다. 이제 갚을 수가 없게 되었군...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여기로 연락해주십시오. 그리고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난도질을 했더라구요." 
    명함을 꺼내 내 옆에 놓는다. 시계를 한번 흘끔 보더니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명함을 집어 지갑에 넣었다. 남은 소주를 마저 들이키고, 잠을 청한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다. 그것보다 갈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잠을 깨운 것은 그 빌어먹을 꿈이었다.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온다. 벌써 밤이 된 것이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스위치를 올렸다. 
    내 옆에 사람이 있었다. 나는 놀라 방구석 쪽으로 넘어졌다. 은희 엄마였다. 등에 아기의 시체를 업은 체로 방 한 모퉁이에 서 있었다. 더러운 머리카락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 손에는 낫이 들려 있다. 전에 내가 본 것이 헛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 채로 죽어버린 느낌이다. 갑자기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 죽은 아기가 우는 것인가? 아니다. 은희 엄마가 내는 소리였다. 분명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지만, 아기 울음 소리였다. 소리는 방안을 가득 메우고, 몽롱한 내 귀를 자극했다.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내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그녀의 눈은 보이지 않는다. 나를 볼 수 있는지도 분간되지 않게 얼굴 전체가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다. 머리카락 사이로 크게 벌어진 입이 보인다. 아기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온다. 손에 들린 낫을 치켜  올린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박형사가 뛰어들어온다. 은희 엄마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박형사의 몸에 밀려 쓰러진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낫도 힘없이 떨어졌다. 쓰러진 은희 엄마의 머리카락이 옆으로 젖혀지면서, 시체 같은 눈이 보인다. 어느 곳도 보지 않는 듯한 눈이다.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으나, 더 이상 아기 울음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헐떡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 아줌마를 미행했죠. 당신이 표적이 될 걸 알았습니다." 
    박형사는 가냘픈 그녀의 손에 수갑을 채우면서 말을 했다. 그녀는 조금전 낫을 들고 걸어올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독하군.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박형사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코를 가린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팔뚝을 세게 잡는다. 내 후각으로도 썩은 과일 같은 냄새가 느껴진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손도 코를 가리고 있었다. 이 더러운 냄새는 오랫동안 방을 빠져나가지 않을 것 같다. 
    "얌전히 있어." 
    그녀를 방구석으로 몰아 넣고 나서,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낫을 주워든다. 한번 휘둘러보더니 내게 말한다. 
    "제가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군요. 아줌마가 이 집으로 들어간 후로 창문으로 계속 보고 있었는데요, 거의 30분간 꼼짝도 안하고 있더라구요." 
    박형사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서려있다. 사건을 해결했을 때마다 나오는 얼굴일 것이다. 구석에 은희 엄마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그녀는 마네킹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박형사는 거칠은 손놀림으로 그녀가 메고 있는 보자기를 푼다. 아기 시체와 그녀가 분리된다. 냄새는 더 코를 찌른다. 
    "제기랄." 
    형사의 입에서 연신 욕이 나온다. 그러면서 그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보자기로 아기시체를 감싸고, 은희 엄마의 팔뚝을 다시 잡는다.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은희 엄마는 노예처럼 끌려나가고, 문 닫히는 소리 뒤에 다시 정적이 찾아 든다. 꼭 악몽을 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가 날 죽이려하다니... 내가 아기를 죽인 것을 알아차린 것인가. 

    은희 엄마가 이사 온지 삼일 뒤, 춘식이는 그녀의 남편이 정말로 외국에 나갔다는 말을 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동네 앞 삼거리 식당에서 일하며, 집은 일곱 번째 골목 끝 쪽에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 집은 이삿짐을 날라 줄 때 나도 가본 적이 있었다. 춘식이는 그의 성격답지 않게 그 여자와 자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안주로 먹던 오징어 다리를 떨어뜨렸다. 옆에는 소주가 세 병이 놓여 있었다. 
    "그 여자 이쁘지?" 
    춘식이가 취한 눈을 흘기며 말한다. 나는 웨이터를 불러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술맛이 좋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들어갔다. 춘식이는 눈을 감고, 턱을 기대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새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말 없이 우리집을 지나쳤다. 춘식이와 이미 눈빛으로 대화를 끝낸 뒤였다. 우리는 좁은 골목을 지나 다시 넓은 골목으로 들어서고, 이내 길의 끝나는 부분에 먼지처럼 존재하는 그녀의 집 앞에 섰다. 
    집 안에서는 희미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창문으로 안을 바라보았다. 불은 꺼져 있었으나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남편이 있을 리는 없었다. 
    춘식이가 갑자기 조그만 문을 연다. 그리고 쥐가 구멍을 찾아 들어가듯이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불을 켜자 반쯤 발가벗겨진 그녀와 한 손에 칼을 들고 그 위를 덮고 있는 천구씨의 모습이 보였다. 천구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자네들은.. 뭔가?" 
    천구씨는 바지를 들어올리며, 일어선다. 보통 때 같았으면 주먹을 날렸을 테지만, 술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꺼져." 
    춘식이가 천구씨에게 말했다. 천구씨는 머리를 조아린 채로 우리 사이를 지나 문을 빠져  나간다. 방바닥에는 그녀가 몸을 떨며 울고 있다. 손으로는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으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하얀 허벅지와 가슴이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고, 춘식이는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포겠다. 나는 조용히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을 했다.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반년만에 돌아온 뒤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멀리서 바라본 그녀의 배는 상당히 불러 있었다. 그때는 내 자식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편도 돌아온 뒤였기 때문이다. 그녀도 그 날의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애가 태어나고 그해 겨울에 그녀와 좁은 골목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등에 업힌 작은 아기가 보였다. 나를 향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너무 닮아 있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기의 눈동자는 줄곳 내 얼굴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 커다란 눈동자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 

    창문을 열었다.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더러운 냄새에 익숙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다. 소주라도 한 잔 먹으면 좋으련만, 텅 빈 소주병만 방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다. 눈을 감으니 아기의 목을 조르던 때가 생각난다. 은희 엄마가 아기를 혼자 두고 잠시 외출을 하는 것을 본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이불 위에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손은 아기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칼로 찔러 사람을 죽인 적은 있으나, 목을 졸라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아기를... 
    아기는 괴로워하면서도 나를 보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죽기 전에 내 모습을 자신의 기억에 박아두려는 것 같았다. 그 눈을 보고 있으니,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에 힘을 주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 우는 소리가 어두운 창문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고양이 소리일 것이다. 이 동네의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는 유독 아기의 그것과 닮아 있다. 가끔은 그 소리들 때문에 잠을 못 잘 때도 있다. 그런데 평소에 듣던 소리와는 뭔가 다르다. 어쩌면 조금 전 그 사건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불 속으로 깊이 얼굴을 파묻는다. 
    바스락. 이불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집 앞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양이들이 지나다닐 때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울음 소리.... 점점 가까워져 집 앞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불을 젖히고, 백열등의 스위치를 올렸다. 노란 불빛이 방을 밝힌다. 조그만 창문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찾아오는 어둠뿐이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면서 전구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만을 알리고 있다. 
    부엌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소리는 방문 앞까지 다가온다. 나는 방구석으로 갔다. 위험이 온다면 피할 곳은 없었다. 조금 전 은희 엄마가 마네킹처럼 서있던 그 자리에 서서 위험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하게 불안했다. 
    문이 열렸다. 문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은 박형사였다. 그런데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그 속에서 아기울음 소리가 세어 나오고 있다. 은희 엄마가 하던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 낫이었다. 검게 굳어버린 피는 그것이 그녀가 들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허리를 조금 숙인 자세로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박형사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것이 있었다. 랩으로 싸인 아기였다. 아기의 손이 두꺼운 랩을 뚫고 나와 형사의 검은 가죽잠바를 잡고 있다. 
    박형사가 낫을 든 손을 위로 치켜든다. 낫은 내 목 아래를 파고든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통으로 인해 정신을 잃어간다. 아기울음소리와 고통이 머리 속을 벌레처럼 파고든다. 형사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아기와 눈이 마주친다. 그 눈이 내게 말을 하고 있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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