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살을 빼겠다고 결심한 이래로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잠시 뒤를 돌아보면, 고요한 듯 싶어도 격렬한 나날과 병신같으면서도 비장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곤약만 삶아 먹은 적도 있었고, 그냥 굶은 적도 있는 등, 잘 생각해보면 변태스러운 기행들이 많았다.
그래도 많은 시행착오들과 인터넷과 책들을 참고하여, 나름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어 방사능에 절여진 좀비새끼처럼 끈질기게 버텨냈다.
두 달이 지나자, 첫번째 목표였던 '한 사이즈 줄이기'에 성공하였고,
네 달이 지나자, 감량한 체중 수가 내 나이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어느 날, 나는 예전 사진을 훑어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이 짓은 그만 해도 될 것 같다고.
다행히도 이 짓거리가 습관화되어 예전처럼 하루에 다섯 끼를 라면 3개를 한끼에 삶아 먹는다던가 치킨 2마리를 한끼에 삼킨다던가 하지는 않았고
좋아하는 음식은 주말에만 먹으며, 평소에는 점심시간에만 시행하던 '보통 사람들의 식사'를 저녁도 그리하는 정도로만 바뀌어서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할 뿐, 예전 몸무게로 되돌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천고마비의 계절을 보내고 눈이 오고, 한 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를 찬찬히 바라보니, 아직도 보통 사람들보다 무거워 보이는 나의 외모를 보고 그 동안 박차를 가하지 않았음에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남몰래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고 다 빼면 한 걸음 더 다가가야겠다는 결심도 한 나였지만,
안 그래도 낮은 자존심에 나보다 훨씬 잘나 보이는 사람들이 그 사람 주변에 산재했다는 걸 깨닫고 사실상 포기한 뒤,
좋아하는 사람의 존재를 잠시나마 잊기까지 한 나 자신에게 증오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고한다.
지금 너는 느닷없이 재개된 '관리 모드'에 당황하여 나에게 술에 취한 듯한 현기증을 선사해 줬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걸어나갈 것이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의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이상을 잊고 잠시나마 방황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끝을 볼 것이니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비어 있는 위장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호구새끼짓은 작년에 졸업해서 말이다.
이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내가 고대하던 이상이라는, 연약하디 연약한 그 녀석은 처음부터 나를 맞아줄 관심조차 없었고,
현실이라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레이드급 맹수가 그걸 잡아먹은 뒤 나를 다음 먹잇감으로 지목하여 기다리고 있겠지.
설령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 한들, 그저 '경멸스러운 돼지가 인간이 됨'정도의 반응만 얻을 뿐,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뭐가 있던 간에 일단은 내 갈 길 갈 것이다.
긁지 않은 복권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이로 인해 좀 더 나 자신이 솔직해지고 자신감을 얻길 원할 뿐이다.
그것들을 그 염병할 비곗덩어리들이 4중첩 5중첩으로 가로막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 이 가시밭길을 다시 걷는 걸 허락해 줬으면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너의 발을 한 발짝 더 내딛어 줬으면 한다.
이 빌어먹을 고통을 다시 겪게 되어 영광이다.
내 안의 지방들아,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