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알게되었는데 너무 감동받아서 리뷰를 써봤어요
원래 책 읽고 영화보는 거 좋아해서 맘에 드는 책 있거나 영화 있으면 리뷰를 남깁니다
블로그도 하지 않고 그래서 그냥 영화게 분들이랑 나눠볼까 해서 씁니다 ㅎㅎㅎㅎ
(다른 곳으로 펌은 금지입니다)
인간성이 보여준 승리
이 영화는 명배우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2001년도 개봉작이며, 미식축구를 다룬 스포츠 영화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리멤버 타이탄은>무엇보다 ‘승리’에 관한 강한 교훈을 남겼다. 등장인물들이 이루어낸 승리는 다름아닌 ‘인종차별’에 맞선 ‘인간성’의 승리이기에 1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뜨거운 감동을 준다. 과연 이 평범해보이는 스포츠영화는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 수 있었을까.
영화의 배경은 1971년도 버지니아주의 TC 윌리엄스 고등학교이다.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야구도, 농구도 아닌 우리가 럭비라고 부르는 미식축구라고 한다. 버지니아 주는 특히 고교 미식축구에 크게 열광한다. 심지어 주대회 결승전의 크리스마스를 압도 할만큼이라고 한다. 바로 그런 버지니아주에서 주교육청은 백인고교와 흑인고교를 통합시켰고 따라서 2개가 있던 미식축구 팀 역시 하나로 통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본래 5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던 백인코치인 요스트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 자리에 흑인코치 분이 들어온다. 백인 학생들은 반발하고, 흑인 학생들은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분은 처음에 자신이 부코치로 임명되었다고 여겨 버지니아까지 이사했으나 알고보니 주교육청과 학교가 내세운 명목상의 수석코치였음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맞물린 가운데 게티스버그로 2주간의 여름 훈련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분 코치의 빛나는 리더쉽이 발휘된다. 코치는 버스를 타고 갈 때도 백인과 흑인으로 나누어타는 학생들에게 일갈하고 공격팀, 수비팀끼리 짝을 이루어 같은 방을 쓰게 한다. 또 서로에 대해 알려하지 않고 식사할 때도 따로 앉는 학생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 서로 알아내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든다.
새벽 3시에 학생들을 깨워 산 속을 달리게 하다 도착한 곳에서 분 코치가 했던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이곳은 게티스버그 전투가 일어났던 바로 그 곳이다. 우리는 그때처럼 흑인과 백인으로 나누어 같은 식으로 피를 흘릴 수는 없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단지 미식축구일 뿐이다.’
학생들은 서로 한 마음이 되어 동료를 위해 몸을 던져 블로킹을 해주고 흑인식 엄마 농담, 노래 부르기에 젖어가며 서로에게 흡수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인 흑인 쥴리어스와 백인 게리는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바깥 사회는 학생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친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TC 윌리엄스 고등학교의 미식축구팀 ‘타이탄’은 거듭된 연승행진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무시하던 알렉산드리아 주민 모두 인종에 상관없이 타이탄팀을 응원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 ‘니케’의 질투였는지, 팀의 리더인 게리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탄은 보란 듯이 극적인 터치다운으로 주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 모든 것은 게리를 위하는 마음, 강한 정신력, 팀을 믿는 동료애, 인종을 넘어선 스포츠 정신이 버무려진 결과였다.
게리는 결승 경기를 앞두고 팀의 승리를 위해서 친한 친구를 쳐낸다. 그 친구가 인종차별의 벽에 갖혀 동료를 위해 적극적인 블로킹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멋진 녀석인 게리가 더 이상 미식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동안의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깊게 감정이입을 했나보다.
이 영화가 더 큰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바로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박사의 활약 이후 미국 사회에 흑백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여러 가지 법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1971년이 되어도 갈등은 여전히 존재했다. 흑인들은 백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겨우 고교 미식축구팀 코치자리를 두고도 인종과의 자존심 대결이 불가피했다. 분 코치가 학생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강하게 밀어붙였던 것도 스포츠가 펼쳐지는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인종을 잊고 오로지 승리를 위하여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971년에 어린 고등학교 학생들이 보여준 놀라운 승리는 바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인간성의 승리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학생들이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1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올렸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것이 상대팀을 무찌르는 것보다 자신들 안에 있는 ‘인종차별’을 물리치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자존심, 상대를 인정하고 싶지 않는 이기심들이 선수들 마음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단 1승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덕분에 진정한 의미의 우주를 지배한 ‘타이탄’이 될 수 있었다.
분 코치의 딸은 네일아트를 좋아하고, 요스트 코치의 딸은 풋볼에 미쳐있다. 하지만 취향이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는 친구가 된다. 선샤인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히피 백인이지만 흑인 레브가 치는 장난을 기분 좋게 받아준다. 이처럼 영화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흑백을 넘어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모든 것은 ‘취향’과 ‘개성’일 뿐 결코 흑백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현재 미국사회는 어떠한가.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일수록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아동범죄자’만큼이나 두려워한다. 마음 속까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흑인들은 과거와 같은 차별을 받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미국의 제 2인종으로서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지난 20세기의 동안 냉전을 치러냈을 뿐만 아니라 흑백갈등이라는 내부와의 적과도 승리한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차별’에 대하여 차분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빈부격차, 남녀차별, 지역주의, 세대갈등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내부에 암덩어리처럼 퍼져있다. 차별을 양산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다. 상대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틀림’이라고 단정짓는 태도 말이다.
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기준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할까. 하루에도 수십 명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스쳐 지나가며 사는데 모든 사람을 다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주는 해답은 ‘인간성’이다. 우리 모두 내면에 인간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나와 ‘다른’ 사람에 주목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에 주목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여름에 방한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본이라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현대사회에 일갈한 바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물질문명은 인류에게 배고픔 대신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기계화되어가며 인간애를 잃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친구가 주는 감동 대신 도대체 무엇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성이 소외되고 외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시대에 차별은 아직도 우리 마음에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타이탄팀’이 보여준 승리처럼 나는 기적을 믿는다. 우리가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헤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