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둘러싼 음모론, 누가 만들어 내는가?
느닷없는 박근혜 효과 논란
3월 31일부터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전화벨이 자주 울리기 시작했다. 아래 필자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나는 지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담당하고 있다. 어떤 전화들이었는지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그 전화들의 요지는 이렇다.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총재가 되니까 MBC가 박근혜씨를 죽이려고 박정희 관련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제는…’은 제작기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3개월이다. 2월 29일에 첫 방송된 이번 시리즈는 작년 말에는 이미 주제가 다 결정이 되었으며 올해 2월에는 이미 모든 프로그램이 취재 중인 상황이었다. 일부 프로그램은 이미 작년 가을부터 취재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정치적인 상황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몇 개월 전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PD들이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올해 초에는 이러이러한 순서로 방송이 될 예정이라는 것이 신문 등을 통해서 보도되었다.
그렇다고 전화를 걸어 우려를 표하셨던 분들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보도가 되었더라도 못 볼 수도 있는 일이고 방송 프로그램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는지를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은 그렇게 판단하고 말할 자유가 있다. 여기에서 자유란 민주주의의 제일 가는 요체인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내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견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민주주의를 그렇게 이해한다. 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은 자유롭게 표현된 다양한 의견들이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의견들은 당연히 사라지고 소멸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경쟁의 공정성이다. 내 표현의 자유를 위해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전화를 걸어오신 분들께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풀어드리려고 애를 썼다. 솔직히 오해가 안 풀린 경우도 있다. 속상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음모론 확대재생산
알만한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박근혜 효과 차단’을 노린다는 음모론을 신문들이 앞장 서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미 배포된 보도자료를 이미 읽어보았을 기자가 그런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긴 하루에도 엄청난 보도자료들이 밀려들어올 테니까 못 봤을 수 있겠다. 그런데 기사를 쓰려면 적어도 확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는 어떤 악의마저 느껴진다.
그 악의가 ‘이제는…’의 한 PD에 불과한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다.
가장 악의적으로 읽히는 기사는 4월 1일자 조선일보의 ‘조선데스크-박정희를 연달아 때리는 이유’(승인배․문화부 차장)이다.
먼저 제목이 ‘박정희를 연달아 때리는 이유’인데 내용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분 토론’,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을 비슷한 분량으로 언급하고 있다. ‘100분 토론’과 ‘신강균의…’는 박정희와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제목을 그렇게 뽑음으로써 마치 방송사들이 너도나도 ‘박정희를 연달아 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 이건 사소한 문제다. 선정적인 제목을 뽑고 내용은 별로 상관없는 것까지 싸잡아 몰아넣는 염치없는 짓이야 그냥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보려는 애교라고 해두자.
익명의 정보원 뒤로 숨기, 그리고 병적 상상력
내용을 보자. 먼저 ‘이제는…’에 관련된 내용이다.
첫 머리를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로 제기되어 온 편파방송 시비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그치질 않고 있다”며 애국적 충정을 내비친다. 여기에서 조선일보의 편파 보도와 그로 인한 해악을 언급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일이므로 그냥 충정으로 받아들이자.
“우선 MBC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클릭해 보자. 올 들어 방영됐거나 방영될 프로그램은 모두 5개. 이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3개다. ‘만주(滿洲)의 친일파’(3월 7일),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병장’(3월 28일), 그리고 오는 4일 방영 예정인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나’ 편이다. 프로그램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비춘다.”
우선 승인배 문화부 차장은 정직하게 정보 소스를 밝히고 있다. 인터넷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에게 확인하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한 후에 썼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게을러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글 쓰기 전략이다. 즉, 익명의 정보원 뒤로 숨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그래도 그가 솔직하게 밝힌 것 한 가지가 있다. 마지막 문장에 ‘프로그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자기가 그 프로그램을 본 것이 아니라는 것(뒤에 조목조목 밝히겠다)을 수줍게 고백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더 뻔뻔스러웠다면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라고 썼을 것이다.
두번째 문장은 팩트가 틀렸다. 올 1차분으로 방송되었거나 방송될 프로그램은 모두 합해 6편이다. 인터넷은 이렇게 불충분하다. MBC 홈페이지에는 보통 그 다음 회에 방송될 내용까지만 올려져 있다. 그는 아마도 서두르다가 그걸 깜빡한 모양이다.
그 다음 문장,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3개’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주의 친일파’는 2월 29일에 방송된 ‘독립 투쟁의 대부, 홍암 나철’과 함께 3․1절을 계기로 해서 기획된 것이며 내용 또한 그렇다. 물론 ‘만주의 친일파’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겨냥’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겨냥한 것은 ‘청산되지 않은 친일인맥’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중 일부분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병장’은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어 온 월남전 참전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기획되었다. 월남전 참전의 빛과 그늘 정도로 이해하는 게 정당하다.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언급된다.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다. 만일 이 프로그램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해 제작했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아무데서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을 발견하는 병적인 상상력이다.
그런 상상력이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일보는 김재규 편에 대해 시비를 걸면 안 된다.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겠다.
입맛대로 쓰기
자, 이제 다음 단락을 보자. 사실 승인배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앞에서 애써 애교로, 또 수줍은 고백으로 이해하려던 나는 그의 품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를 놓고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이유는 ‘박근혜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MBC측은 이 프로그램을 두고 “지난해 12월부터 사전 제작해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박정희 때리기’ 프로가 너무 잦고, 방영 시기도 ‘하필 이때인가’라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도대체 누가?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총재 측으로부터 제작팀은 어떤 문제제기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 의혹의 주체는 누구인가? 문제의 의혹은 맨 처음 네티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 사실을 누락시켰다. 누락시킨 것은 또 있다. 의혹 제기에 대해 역시 네티즌들 사이에서 반론이 활발히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대충 입맛에 맞는 의견만 골라 읽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의견은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첫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의 연결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아야 할 야비한 짓이다. 적어도 문화부 차장이라면 다큐멘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는지 잘 알텐데, 문제제기에서는 자신은 쏙 빠진 체 주체도 없는 의혹을 던져 놓고는 명백한 주체로서의 MBC ‘주장’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설명’도 아니고 ‘주장’이다. 저널리즘이 구사하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주장’이란 ‘그게 사실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우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자, 마지막 문장을 보자. ‘우연치고는 ‘박정희 때리기’ 프로가 너무 잦고, 방영 시기도 ‘하필 이때인가’’, 이것이 일반 시청자가 한 말이라면 몰라도 메이저 신문사의 문화부 차장이 한 말이라면 우기기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 게 아니라, 한나라당 총재로 박근혜씨가 선출되었기 때문에 이런 음모론이 생겨났다는 것을 말이다. 더 얄미운 것은 끝내 ‘시청자’라는 모호한 주체에 자기자신을 숨긴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기사는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자기를 숨기며 다른 주체를 내세운다.
아마 모호한 주체를 내세우는 게 걸렸던 모양이다. ‘신강균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처음에는 CBS 기자의 이의 제기를 인용했다. 그러다가 이 부분이 나중에 수정되었다. “문화비평가 진중권씨”가 “30일 민주노동당 지지 인터넷사이트인 ‘진보누리’에 ‘MBC 신강균 프로그램, 진상이 밝혀졌네요’”를 인용한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수정한 이유는 ‘진중권씨’의 영향력, ‘진중권씨도 이렇게 말했다’는 감동적인 연대감, 그리고 이의 제기가 아닌 단정적인 표현 때문일 것이다. 조선닷컴에는 수정된 기사가 올려져 있다.
조선일보는 ‘김재규’ 편에 대해 말할 자격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나’ 편은 조선일보에서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마치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꼴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출자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 김재규에 대한 조선일보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을 정보 소스로 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왜 자기 신문사의 기사를 검색해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시리즈에서 김재규에 관한 부분을 읽은 기억을 더듬어 '카인즈' (http://www.kinds.or.kr/ )를 통해 검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인터넷 사이트 (http://myjokbo.com.ne.kr/jongchin_kimjaekyu8.html )에 올려진 조선일보 97년 11월 7일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조갑제)를 찾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는 김재규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하는 부분만 옮긴다. 왜곡 인용할 가능성을 우려하시는 분은 위의 사이트를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우선 ‘내 무덤에…’를 보기 전에 [월간 조선] 85년 6월 호에 실린 ‘한국을 뒤흔든 격동의 10일간’(조갑제)의 마지막 부분을 보자.
“…10․26과 정치인 김재규는 동기로서가 아니라 결과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10․26은 부마사태의 연장이 아니라 그 배신이었고, 역사 발전의 중단점이었다. 정치인 김재규(金載圭)도 실패했고, 역사는 그를 외면할 것이다. 다만, 인간 김재규(金載圭)에 대한 평가는 달리 나올 수 있는 바, 그것은 문학의 장르에 속할 듯하다.”
같은 사람이 쓴 글이 ‘내 무덤에…’이다. 그는 인간 김재규에 대한 문학적 평가를 시도하려 했던 것일까?
“…김재규는 인간적인 바탕은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격동기를 주도할만한 안목과 추진력은 갖지 못했다. 상황이 너무 커지면서 김재규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고 있었다. 이런 과부하 상태에서 차지철에 대한 증오심, 열등감, 차지철을 편드는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든지 담판을 하여 차지철의 월권을 저지시키려 했을 텐데 김재규는 이 수모를 참기만 했다. 대통령이 워낙 어렵게 보이기도 했고 자신의 논리가 부족하기도 했을 것이다. 울분이 발산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폭발성은 증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총을 대통령에게 겨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 행동을 했다는 점에 김재규의 남다른 면이 있다. 그가 지녀왔던 인간적인 선량함과 정의감에다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소신, 그리고 이런 소신을 확인시켜준 부마사태의 민란화가 보조적인 요인이었을 것이다…”
조선 사단 최고의 이데올로그에 의해서 김재규의 대통령 시해의 원인은, 그의 성격에서 오는 폭발성 외에 인간적 선량함과 정의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소신, 소신을 확인시켜준 부마사태의 민란화라고 정리되었다. ‘이제는…’의 ‘김재규’ 편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 프로그램도 결국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나는 조선 사단의, 혹은 조선 사단 최고의 이데올로그의 평가가 왜 세월을 두고 바뀌었는가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역사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달라진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앞으로 또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문제삼는 것은 조선일보가 그런 평가를 하는 것은 괜찮고, 다른 매체가 하면 박정희를 겨냥한 거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일보가 김재규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읽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혹시 과문한 탓에 모르는 거라면 알려주기 바란다.
책임있는 언론인의 자세
나는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누구나 자신의 견해와 의견을 내놓는 것이 허용되고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말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가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책임은 다른 사람의 책임보다 훨씬 무거워야 한다. 모호한 정보원에 자신의 주장을 의탁하는 것은 책임있는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속한 매체에서 내린 평가를 잊어버리고, 혹은 무시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일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비겁하거나 덜 성숙했다는 증거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 온라인 미디어 오늘 '교양PD의 세상보기'에 기고한 글, 2004.04.05.
http://www.mediatoday.co.kr/news/serialsearch.php?section3=SR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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