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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서울은 1999년 겨울, 친구들과 영등포 역이었습니다. 새벽에 도착해서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데 양아치 한 무리가 와서 욕을 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라면을 먹었습니다. 웃음을 참으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서울말로 하는 욕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왜, TV에서 본 것과 실제로 들은 서울말은 그다지도 달랐던 걸까요?
표준어 :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의 서울말.
초등학교 때 배운 이 규정 때문일까요? 서울 사람들은 자신들이 표준어를 쓰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서울 '방언'을 쓰면서 강원 방언, 전라 방언, 충청 방언, 경상 방언을 촌스럽다고 합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대한민국에서 표준어를 쓰는 사람은 아나운서뿐입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표준어와 다른 서울 방언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1. 바뀌는 음운 체계
서울 방언을 살펴보기 전에 현재 바뀌고 있는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1.1 ㅔ/ㅐ
'ㅔ'와 'ㅐ'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어르신 중 일부는 그분해서 발음하시고 들으실 수도 있지만, 현대인들은 대체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 예는 노랫말에서 찾아봤습니다.
* 하여가(서태지와 아이들, 1993)
"부풀은 내 마음 속엔 항상 네가 있었어. 하얀 미소의 너를 가득 안고서"
서태지는 '내'와 '네'를 구분해서 발음합니다. 저는 수 백 번을 들어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 니가 참 좋아(쥬얼리, 2003)
쥬얼리는 제목에 아예 '네'가 아니라 '니'라고 표기해 버립니다. 반면 서태지는 2004년에 발표한 <10월 4일>에서도 "네가 없기에, 너는 내 속에서"라며 'ㅔ'와 'ㅐ'를 끝까지 구분합니다. 서태지는 특수한 경우이고 요즘 가요에서 '네'는 거의 '니'로 대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 ㅚ/ㅟ
먼저 'ㅚ'와 'ㅟ'를 발음해 보시겠습니까? 입술이 움직였다면 지금 잘못 발음하신 겁니다. 둘 다 단모음이라서 발음할 때 입모양이 바뀌지 않습니다. 'ㅚ'는 'ㅗ'의 입모양을 하고 'ㅣ'를 발음하는 방식으로 발음하고 'ㅟ'는 'ㅜ'의 입모양을 하고 'ㅣ'를 발음하는 방식으로 발음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ㅙ'나 '우이'로 발음합니다.
10모음 체계 | - 변화중 → | 7모음 체계 | |||||
ㅣ | ㅟ | ㅡ | ㅜ | ㅣ | ㅡ | ㅜ | |
ㅔ | ㅚ | ㅓ | ㅗ | ㅔ | ㅓ | ㅗ | |
ㅐ |
| ㅏ |
| ㅐ | ㅏ |
|
2. 서울 방언
서울 방언의 국어학적 연구(2000)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내용도 방대해서 쉽게 접하는 네 가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논문은 파일로 첨부할 테니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 방언의 국어학적 연구.pdf
서울 사람들은 아래 문장을 어떻게 말하나요?
[거지가 내 빵을 아기에게 먹여도 아무렇지도 않아.]
2.1 ㅓ → ㅡ
개그맨 유상무 씨가 4월 초에 PC방을 개업했습니다. 유세윤이 준 화환에 거지가 '그지'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지'는 방송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서울 방언입니다.
요즘은 '정말'같은 것은 거의 '증말'로 굳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본 남자가 한국 남자보다 여성성이 강하듯이, 한국에서는 서울 남자들이 다른 지역의 남자들보다 여성성을 띄는 것 같습니다. '예쁘게' 말하려고 하죠. 거지가 그지로 변한 것도 예쁘게 보이려는 경향의 일환은 아닌가 합니다. (음운론적으로 들어가면 변동이 어쩌구저쩌구하면 머리 아프니 패쓰하겠습니다.)
* '수란'님의 제보 : 더럽다도 드럽다로, 어이구는 으이구로, 어처구니는 으처구니로 허옇게는 흐옇게로....
이런 경향, 댓글로 더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2 ㅏ→ ㅐ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이 말했습니다.
"애기야, 가자."
국어 사전에서 '애기'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검색됩니다.
이 외에도, 애끼다, 홀애비, 곰팽이 등도 있습니다.
2.3 ㅗ → ㅜ
조사 '도', 어미에 나오는 'ㅗ'를 'ㅜ'로 발음합니다.
[저도 밥을 먹고요]인데, "저두 밥을 먹구요."라고 하죠?
방송에서도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구어로만 쓰이더니 요즘은 '그지' '애기'처럼 문어로도 옮겨오는 것이 보입니다.
2.4 ㅏ
→ ㅓ
"장기하가 부릅니다. 싸구려 커피!"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 이젠 아무렇지도 않어."
방언이 대중 가요에서 터지네요. 경상 방언 화자인 제게는 귀에 거슬렸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모음조화라고 하죠. 어간의 모음이 양성모음으로 끝나면 어미의 모음도 양성모음으로 옵니다. 모음조화는 검색하시면 되니 예만 들겠습니다.
막어서, 속어서, 깎었다, 앉었다 (x) → 막아서, 속아서, 깎앗다, 앉았다
우렁쉥이가 뭔지 아십니까? 멍게의 표준어입니다. 멍게는 (남해인지 어디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은데) 특산물로 내는 지역의 방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어 세력이 더 커져서 우렁쉥이를 밀어내고 표준어가 된 경우입니다.
삼겹살 먹을 때 파를 새콤하게 무친 것을 서울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파무침? 경상 지역에서는 '재래기'라고 합니다. 합성어가 아닌, 단일어로서 독자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교수님은 이것이 세력을 확장하면 표준어가 될 것이라도 하던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겠습니다.
방언은 언어를 풍부하게 합니다. 서울 방언 화자님들, 다른 지역에서 온 화자들이 그 '지역 표준어'를 쓰더라도 너무 웃으시진 말길 바랍니다.
말은 영혼의 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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