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등장한 글로배웠어요입니다.
저는 90년대 초부터 말까지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다 전역한 사람입니다.
해군 출신으로서 <진짜 사나이> 해군편을 보면서 감회에 젖을 때가 많았습니다.
기초교부터 1함대 광개토대왕함을 거쳐 2함대 PCC와 고속정까지...
그런데, 지난 주 2함대 편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정확히는 방송이 끝나고 오유 밀게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대부분의 의견이 내무 부조리를 유발하는 나쁜 간부라는 의견이더군요.
네, 일정 부분 동의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소위를 대신해 변명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출입항 시 장 소위의 행동
지난 기초교 편과 광개토 편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해군에서 15분 전과 5분 전은 절대적입니다.
출항 15분 전이면 이미 출항 준비가 완료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5분 전이면 계류색을 걷고 자력 항해를 위한 준비를 하는 상황입니다.
긴급 출항을 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서는 15분 전 5분 전 개념이 아예 없습니다.
출항 준비 지시가 나옴과 동시에 계류색 걷고 출항해 버립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배 못 탑니다.
운이 좋으면 배가 부두를 빠져 나가기 전에 YTL(예인정)을 이용해 배에 타기도 합니다.
이렇게 엄중한 상황인데, 15분 전에 집합 조차도 하지 않았다면
갑판사관으로서 당연히 싫은 소리를 할 만도 합니다.
방송에서 보면 진짜 사나이 멤버들은 15분전 방송이 나오고 나서야 어슬렁 거리며 자켓을 입더군요.
그건 선임병들의 책임이 큽니다.
그런 엄중한 상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선임병들이
갓 전입 온 신병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고 이끌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으니까요.
보통은 그런 경우 갑판사관이 아닌 갑판장이 나섭니다.
그런데, 장교와 병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진짜 사나이의 특성 상
부사관인 갑판장 보다는 갑판사관에게 포커스를 더 맞춘 것 같습니다.
진짜 사나이 각본 논란도 있습니다만,
아마도 일정한 이야기 구조를 가져야 하는 방송의 특성 상
대본이 없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 대본에 따라 갑판장의 역할을 갑판사관이 떠맡은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 "점호 때 보자"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그렇게 협박을 하면 안되는 거였습니다.
저도 긴 군생활 동안 꽤 당해봤던 거라서 그 심정 잘 압니다.
하루종일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죠.
그건 장 소위가 실수한게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장 소위가 그렇게 협박성 발언을 할 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장 소위가 사병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 소위가 그날 당직사관이기 때문에 퇴근을 하지 않고 배에서 저녁을 먹은 겁니다.
원래 장교들은 모든 식사를 사관실에서 해결합니다.
당연히 사관 당번들은 장 소위 한 사람을 위해서 밥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 경우 성격 좋은 장교들은 C.P.O(원상사)실에서 그날 당직인 C.P.O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 소위는 그것도 마다하고 사병식당에서 부하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사관 당번이나 C.P.O 당번들을 배려한 조치일 것입니다.
그정도 인품을 가진 사람이 손진영에게 "점호 때 보자"며 협박을 했다?
저도 이부분에서 대본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3. 점호 때 행동 (1)
아시다시피 해군 순검(점호)은 산천초목이 벌벌 떤다고 할 정도로 엄격합니다.
광개토편에서 나왔던 흰장갑은 그냥 일상입니다.
점호 시간에는 청소 상태 뿐만 아니라 개인 위생 상태, 체스트(관물함) 정리정돈 상태, 임무 숙지 상태 등을 모두 점검합니다.
정말로 성격 좋고 친한 장교가 당직사관이라고 방심했다가는 뒤통수 맞고 배신감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장 소위가 이병에게 한 질문은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었습니다.
상황별 자기 임무와 위치도 모르면서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겠습니까?
전입 온 지 1주일이 됐든, 1개월이 됐든 무조건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지난 광개토편에서 보셨다시피 폭뢰 투하 시에 폭뢰 투하 요원인 서경석과 손진영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바람에 폭뢰 투하를 제때 하지 못했습니다.
실전 상황이었다면 대잠 공격 시기를 놓침으로써 적 잠수함으로부터 피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선임병들은 신병에게 Meanig Station(상황별 임무)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최우선적으로 숙지하도록 가르쳤어야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실전 전투배치 상황이 발생하는 2함대에서
전입 온 지 12일 된 이병이 자기 임무도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못한 것은
그 이병의 책임도 크지만 그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선임병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의견들이 이병의 실수를 가지고 선임병들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내무 부조리가 발생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더군요.
'너 때문에 내가 혼 났으니 너도 한 번 당해봐라'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장 소위의 행동이 내무 부조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생각들이 내무 부조리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선임병은 짬밥 대우만 받는 위치가 아닙니다.
후임병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과 노하우를 가르치고 인도해야 하는 자립니다.
당연히 후임병의 실수에 대해 선임병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다.
짬밥 대우는 받겠지만 책임은 지기 싫다?
이런 이기적인 생각이야말로 내무 부조리의 근원 아닐까요?
4. 점호 때 행동 (2)
체스트(관물함)을 점검하면서 지나쳤다는 얘기들이 있더군요.
제 경험과 지식으로는 당연한 행동입니다.
좁디 좁은 함정에서 많은 인원이 생활하다보니 정리정돈은 필수입니다.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도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특히나 예고 없이 갑자기 전투배치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체스트에서 자신의 옷과 장비를 챙기다가 늦어버린다면
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누구는 세탁하지 않은 옷을 체스트에 넣어둬서 비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체육복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로 남의 체스트에 넣어놨습니다.
이건 당장 집함해서 얼차려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경웁니다.
그리고 재점호를 실시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며...
장 소위에 대한 논란은 해군의 병영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 소위의 일부 협박성 발언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해군에서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집함이나 구타 등 내무 부조리가 발생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후임병이 잘못을 했으면 선임병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선임병은 후임병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해군의 병영 문화입니다.
물론 그것도 사람 성격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근무했던 여러 함정들에서는 그렇게 교육 받고 행동했습니다.
게다가 해군 2함대의 긴장감과 엄격함을 보여주려는 제작진과 해군 본부의 의도가 반영되다 보니
실제로는 성격 좋은 사람을 독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쪼록 방송은 방송일 뿐이니 오해없이 봐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