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기간인지 날씨가 쿠리쿠리 한 것이, 오전부터 조금 기분이 우울하네요. 어제는 오전에 그렇게 천둥번개가 쳐서, 집에서 혼자 자던 저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떨었더랩니다:d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항상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LA VIE EN ROSE[라 비 앙 로즈]
Written by. 김희성
5화.
“한잔 더!”
“해준씨, 많이 취했어요…….”
“딱! 딱 한잔만 더 하자 진짜 딱 한잔마안…….”
“벌써 그 한잔만이 몇잔이 됐는 줄 알아요? 안돼요.”
“아냐 이번엔 정말이야. 혹시라도 더 마신다 그러며느은! 내가 소예 아들이다 아드을!”
목소리에는 취기가 잔뜩 묻어, 혀가 꼬부러진 소리를 내며 해준은 소예에게 검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주정아닌 주정을 부렸다. 소예는 그런 해준을 만류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곤란한 표정을 보였지만 해준은 막무가내이다.
가게는 어느새 꽤 한산해졌다. 한산하다 못해 이제는 소예와 해준 단 두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남아있지 않다. 시계는 이미 두 시를 훌쩍 넘겨있다. 소예가 일하는 바의 영업종료시간은 자정. 손님은 이미 진작부터 모두 우르르 집이나, 혹은 아침까지 영업하는 호프집 등으로 행선지를 두고 빠져나갔고 소예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역시 모두 퇴근을 마쳤다. 그래서인지 그렇잖아도 어두컴컴한 실내 조명으로 인해 스산한 내부가 황량하기까지 하다. 그나마 가게 구석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어 황량함은 덜 했지만.
“소예야아, 한잔만… 한잔만 더…….”
이제는 애원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해준을 안쓰러운 감정이 잔뜩 배인 눈으로 보다 소예는 그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마티니를 만드는 대신, 가게 한쪽에 놓인 진열장 앞으로 가 진열장 가득 정렬된 씨디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해준은 그런 동안에도 연거푸 한잔만, 한잔만을 외치다 곧 조용해졌다. 취기에 잠이 든 모양이다.
소예는 한참 진열장을 들여다 보다 찼던 것을 찾았는지 꺼내어 컴포넌트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예는 컴포넌트 앞에 서 씨디를 넣지는 않고 한동안 손에 들려진 씨디 케이스를 멀뚱히 내려다 봤다. 소예가 고른 씨디는 영화 'Once'의 OST들이 수록된 씨디었다. 소예는 뭔가가 떠오른 듯 살풋 미소를 짓더니 케이스에서 씨디를 꺼내어 컴포넌트에 집어넣고 재생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무슨일인지 곧바로 재생된 첫 번째 목록의 곡은 듣지 않고 넘겨버리고, 두 번째 곡이 시작되었을 무렵 반복재생 버튼을 눌러 그 한곡에 고정시켰다. 그것은 Once의 두 남녀 주연인 글렌 핸사드와 마르게타 잉글로바가 듀엣으로 부른 If you want me(당신이 진심으로 나를 원한다면)라는 제목의 곡으로 앨범에 수록된 여타 다른 곡들 중 소예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소예는 낮게, 한 소절 한 소절을 흡사 시를 읊는듯한 억양으로 따라부르며 해준의 곁으로 가 해준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아 바에 팔을 괴고 머리를 뉘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해준을 향해 돌리니 곤히 잠이든 해준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였다. 취기로 인해 달아오른 해준의 숨결이 조금은 달큰하게 와닿았다. 소예는 문득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에 해준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좀 더 얼굴을 가까이 해 해준의 입술 근처에 그녀의 입술을 가져갔지만 점짓 멈추어 입을 맞추지는 못하고, 편안한 해준의 얼굴로부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어 그녀는 곧 재빠르게 그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러고는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윤희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눈물을 흘리던 해준의 모습을 떠올리자 돌연 죄를 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쿵쾅쿵쾅 달음질을 쳤다. 아주 어렸을 적 바깥일을 했던 엄마가 외출을 하고 나면 엄마의 화장대에서 멋대로 화장품들을 꺼내어 바를 때의, 퇴근을 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어른 세계의 동경심으로 인한 설레임이 멋대로 섞인 감정을 그녀는 다시금 의외라면 의외의 상황에서 맛보았다. 소예는 단지 해준의 평온함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죄의식을 갖는 저의 처지에 약간의 억울한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내 그것도 죄라면 죄일것이라 마음을 다잡았다.
소예는 다시 가만히 이번에는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해준의 얼굴을 관찰했다. 훤칠한 이마, 짙은 눈썹, 감은 눈꺼플 위의 선명한 쌍커플 라인, 딱 떨어지는 콧망울, 콧망울 아래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콧수염, 남자치고는 얇고 섬세한 입술. 그녀는 몇 번이고 가슴을 차고 오르는 죄악감에 괴로웠지만 못내 해준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비키지는 못했다. 얼마간을 그렇게 해준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소예는, 아까 그녀가 골라 손에 쥔 씨디를 내려다 볼때의 것과 같은 그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문득 해준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 덕분이었다.
그것은 2년 전이었다.
손꼽아 고대하던 영화의 개봉으로 소예는 한껏 들떠있었지만 정작 함께 보러 갈 사람이 없었다. 약 3년을 가까이 사귀었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몹시도 어정쩡했던 그가, 돌연 얼마전에 그녀에게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하고 증발되어버린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그와의 헤어짐에 있어 오히려 후련하다 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영화의 개봉일이 되자 영화를 함께 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조금 착잡해졌다.
결국 그녀는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딱히 모난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도 아니었어서 그녀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은 많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 편력이 심했던 터라 이런때 딱히 불러낼 만한 친구가 없는 이유이기도 했고,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이 군대에 가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표를 예매하고 삼십여분정도 시간이 남아 그녀는 영화관 구석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그저 예매한 표를 손에 쥔채 만지작 거리며 곧 개봉할 영화들의 티져영상을 보여주고 있는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얼마간을 그러고 무의미하게 앉아있었을까, 문득 어깨가 결려 시선을 돌리던 중 왜인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한 남자를 그녀는 발견했다. 그리고 그 동질감의 이유를 그녀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럴만한것이, 말쑥한 정장차림에 왼쪽 어깨에는 서류가방을 들추어맨 깔끔한 인상의 그 남자는 소예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녀와 같은 모습으로(손에 쥔 예매표를 만지작 거리며 시선은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티저영상에 꼿꼿하게 고정한 채) 앉아있었다.
“영화, 좋아하시나봐요.”
동질감이 넘쳤던 모양일까 나아가 넘친 동질감이 반가움 마저 유도해낸 탓이었을까. 소예는 반 무의식적으로 남자에게 질문이 담긴 말을 건넸고, 소예의 목소리에 스크린에 펼쳐지는 티저영상을 거의 넋을 놓고 보고있던 남자는 조금 의아한 눈빛을 해 소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허공에서 남자와 시선을 맞닥드리게 된 소예는 금새 스스로가 저지른 일에 대해 크게 당혹감을 느꼈고 정작 말을 붙인 본인이 민망해져 남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여버렸다. 남자는, 말을 걸어놓고 저의 반응은 무시한채 고개가 바닥까지 닿을 기세로 숙이고서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고있는 그녀의 행동이 어쩐지 몹시 우스꽝스러워서 그녀가 알지 못하도록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며 조용히 웃었다. 소예는 입술에 이어 엄지손톱까지 씹어대기 시작했고 남자는 말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었다.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남자의 의외의 반응에 소예는 번쩍 고개를 추켜세웠다. 더욱이, 알 것 없어요. 혹은, 이상한 사람이군요 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 당연하다 라고 생각했던터라 의미를 알 수 없는 옅은 웃음이 서린 그의 얼굴에 잔뜩 긴장이 된 소예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멀뚱멀뚱한 눈으로 남자를 봤다. 가까이서 보니 웃을때 눈매가 반달모양으로 휘어져 서글서글 하면서도 순한 인상이었다. 소예는 조금 무례할 수 있는 그녀의 물음에 거리낌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웃음과 억양으로 대답을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어, 바짝 조이고 있던 긴장을 조금 늦추며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영화관에 혼자 와요? 엔간하게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어려운일 아닌가요?”
“처음부터 혼자 올 목적은 아니었거든요, 보세요.”
남자는 소예의 눈 앞에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영화표를 팔랑거렸다. 이제와 보니 그의 손에 들려진 표는 두 장이었다. 소예는 일행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금세 처음부터 혼자 올 목적은 아니었다는 그의 말머리를 떠올려 처음부터? 그럼 왜 지금은 혼자에요? 하고 물었다.
“여자친구가 보고싶어하던 영화에요. 오늘 함께 보기로 약속도 했었구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두 시간 전부터 연락이 안되네요. 아마, 약속을 잊어버렸거나 갑자기 일이 생긴거겠죠 뭐.”
“아…….”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괜한 걸 물었다고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고요. 저에겐 익숙한 일이거든요, 하하하.”
예상하지 못한 남자의 대답에 소예가 난처한 듯한 탄성을 내자 그는 익숙한 일이라 말하며 소리를 내어 웃어버렸지만, 소예의 난처함을 지우려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소예는 남자의 얼굴에서 씁쓸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 보였지만, 아주 미세한 표정의 변화나 웃음으로 인한 입술의 움직임에서 그것은 충분히 베어나왔다. 소예는 딱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불편했지만 그런 소예를 눈치챘는지 남자는 몇 번이고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오히려 그녀를 다독였다.
“그런데, 그쪽은 왜 혼자에요? 혼자 보는 걸 좋아해요?”
“저도 어쩌다 보니 혼자 오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여러모로 처지가 비슷한데요?”
“하하, 그렇네요. 음… 그런 의미에서,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조금 갑작스럽지만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요.”
“뭔데요?”
“영화, 같이 보지 않을래요? 저에게 좌석이 나란히 붙은 표가 두 장 있으니까 그쪽 표를 환불하면 되겠네요. 영화는, 그냥 제가 보여드리는 걸로 하구요.”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불편하다면 별 수 없겠지만, 괜찮다면 같이 봐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불편해요?”
“아뇨, 딱히 불편하지는 않은데… 처음보는 분께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아서요…….”
“하하하, 실례가 되는 말이라면 제가 먼저 한 것 같은데요? 그런거라면 사양말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어쩐지 남자 혼자 영화를 보는 건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요?”
“…….”
“음… 그럼 이건 어때요? 제가 그쪽에게 부탁을 드리고 있는거라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겠어요?”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신다면… 네, 그럼 함께 봐요. 저도 영화는 좋아하지만 혼자 보는 걸 그리 즐기지는 않거든요. 대신, 저도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그쪽이 지불한 표 두 장분의 금액 중 한 장분의 금액은 돌려드려도 될까요? 그러는게 여러모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혹시, 보여주신 호의에 실례가 되나요?”
“아뇨, 실례라뇨… 음…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지만… 부담이 되시는 거라면, 원하는대로 하세요.”
“고마워요. 그럼, 잠깐 기다려줄래요? 표, 환불하고 올게요.”
“네.”
소예는 남자의 제안에 조금 머뭇거렸지만 곧 승낙해버렸고 더 망설이지 않고 좀전에 예매했던 표를 환불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그녀가 제안한 대로 환불받은 금액을 그에게 건넸다.
“정말 주는거에요? 괜찮은데…….”
“부담이 되면 원하는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괜찮지 않아서 그래요… 그럼, 이것 역시 부탁이라고 생각해 줄래요?”
“하하, 참 고집있는 아가씨네. 알았어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받아두도록 하죠.”
“고마워요.”
그는 좀 더 만류했지만 소예는 좀처럼 의견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재차 부탁이라고까지 말하며 재촉하는 소예에 그는, 더 이상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더 아무말 않고 그녀가 내민 오천원 짜리 한 장과 천원짜리 세 장을 받아들었다. 그제야 소예는 두 손을 가볍게 탁탁 털어내며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했고, 남자는 그런 소예를 보며 어쩔 수 없는 아가씨군요 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 말에 오히려, 이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라고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반문하는 소예에 남자는 좀 더 크게 웃어버렸다.
“당찬 아가씨네요. 나쁘지 않은데요?”
뜻밖의 남자의 말에 소예는 지금 칭찬한거에요? 하고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었고 남자는 여전히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싱글거리며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덕분에 소예는 잔뜩 발갛게 물이든 얼굴을 해 민망함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칭찬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속내를 들키기 싫어, 아예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딴청을 했다. 소예는 우연과도 같은 만남으로 인해 조금은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시간이 다 됐는지 상영관 입구에 달린 전광판에 입장을 알리는 글귀가 떴고 소예와 남자는 조금 어색하기도 한 움직임으로 나란히 입구를 향했다.
“참,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아직 안했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요?”
입구에서 직원에게 표를 확인 받고, 여러개의 상영관이 늘어져 있는 복도를 별 대화 없이 걷던 중 남자는 문득 소예에게 물었다.
“제 이름이요? 소예에요. 윤소예. 그쪽은요?”
“차해준이에요. 뜬금없지만, 만나서 반가워요 소예씨.”
두 사람이 관람할 영화에 해당되는 상영관 앞에 다다랐을 때 해준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소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소예는 그녀의 앞으로 뻗어진 그의 손을 가만히 마주잡으며 쑥쓰러운 듯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주잡은 손을 유지한 채 멀뚱히 상영관 앞에 서 있다가 그들의 뒤를 이어 상영관에 들어서려는 다른 이들로 인해 그제야 화들짝 손을 떼어내며 어두컴컴한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 나중에 잊을 것 같아서 미리 얘기할게요.”
컴컴한 내부 조명 덕분에 좌석을 찾아 이곳 저곳 두리번 거리던 해준이 문득 할말이 떠오른듯 소예에게 되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얘기해요.”
소예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신경쓰며 낮게 말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즐거웠어요 소예씨.”
겨우 좌석을 찾아 앉으며 해준이 다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갑작스런, 해준의 독특하기까지 한 인삿말에 약간 당황한 소예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곧, 결정한 듯 옅은 미소와 함께 곁에 앉은 해준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해 대답했다.
“저도, 만나서 즐거웠어요 해준씨.”
소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영관 맨 앞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 곧 상영을 예정한 영화들의 예고편과 각종 광고들이 펼쳐지며 컴컴했던 상영관이 밝아졌다. 그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얼굴을 마주한채로 밝게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생각했다 이 우연이 우연에서 그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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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E E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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