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씨 청명한 날이었음

휴가 전날 위병소 근무를 섰음

중대 본부 계원이라 웬만하면 근무를 안 서는데

그날따라 5대기에 훈련에 근무 인원이 도저히 안나오는데다가 

내일 휴가라고 자정까지만 4시간씩 2교대를 서달라고 했음

2교대 ㅅㅂㅅㅂ했지만 내일이 휴가라니 별로 힘든지도 모르고 섰음

위병소는 딴거 없고 차량만 잘 받으면 됨

우리부대 위병소랑 연결된 고지 정상에 독립중대가 있어서

그 차량들 신원 확인만 철저히 하면 별거 없었음

차량 들어오면 일단 차단기 밖으로 가서

용건 물어보고 차량번호 등 정보를 위병조장에게 전달해주면 끝임

근데 대대장 차량의 방식은 조금 달랐음

101호 차가 들어오면 미리 차단기를 열어놓고 기다려야 함

지나가기 전에 위병조장도 뛰어나와 셋이서 우렁차게 경례를 해야함

약간의 실수라도 할라치면 바로 군기교육대행

지난주 옆중대 사수랑 부사수가 그거때메 군기교육대행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사실 조금 쫄았지만

계원이라 대대간부랑도 친해서 가벼운 실수는 유머러스하게 넘어갈 수 있었음

아무리 지가 대대장이래도 나는 A급이니까 바보같은 실수는 하겠어? 하며 별 걱정 안했음

보통 2시간인데 4시간짜리 근무를 서다보니 너무 지루했음

위병소는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차량도 별로 없음

그래서 부사수랑 단어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음

그러던 중 멀리서 레토나 한대가 옴

게임을 하던 중이라 넋을 놓고 있었나 봄

바로 앞까지 왔는데

씨발

101호차인거임

어쩌지? 어쩌지? 머리속으로 몇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던 상황인데

막상 닥치니 개 당황함

사수인 내가 빨리 차단기를 열어야 하는데

레토나가 차단기 앞에 설때까지 그냥 얼음이 되었음

부사수 얼굴을 보니 사색이 되었음

 이때라도 차단기를 빨리 열어야 했는데

미쳤는지

다른 차량 하듯이 차량 조수석 쪽으로 갔음

대대장이 떡하니 타고 있음

경례를 했으나 굉장히 불쾌한 얼굴로 경례도 안 받아줌

마치 자기가 누군지 모르냐는 얼굴이었음

알지 잘 알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빨리 열라고 함

열면서 갑자기 생각남

아차!!! 위병조장한테 대대장이라고 말을 안했음 

차 지나가는데 위병조장 뛰어나와서 차 뒤통수에 대고 뒤늦게 경례함

위병조장도 선임이었는데 존내 지랄함...ㅠㅠ

아 ㅅㅂㅅㅂ 조때따 하며 중대에 전화 걸어 봄

혹시 무슨 일 없냐고

그랬더니 당직 서던 선임이 너 휴가 짤리고 군기교육대행이라고 함

하늘이 노래짐

막 눈물이 그렁그렁해짐

아니 겨우 이게....이런 이유로 휴가를 짜르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이후로 멘붕이 와서 근무도 어떻게 섰는지 기억이 안남

막 엉망이었던거 같음

근무 철수하고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워댔음

부사수가 나를 위로함

눈물이 막 쏟아짐

저녁 식사시간에 밥도 안먹고 벤치에 탈진한 상태로 앉아 있었음

아까 통화했던 당직선임이 옴

장난이고 휴가 안짤렸다고 함 군기교육대도 뻥이래

헐~!!!! 와우~~~!!!!!!!!!!!!!!!  장난 친 선임이 갑자기 천사로 보였음

진짜 인생의 구세주 구원자 하여튼 막 그런거

장난쳤다는게 화가 나는게 아니라 진짜 고마웠음

그 선임이 휴가 보내주는거 같은 그런 기분

몇 시간동안 스스로를 병신이라 자책하며 휴가를 포기하고 있었기 떄문에 그런거 같음

몰래카메라 당하는 사람 기분이 이런거 일까 싶기도 함

쓰고 나니 재미없네.... 지우기 아까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