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의 어느날
학교를 다녀온 나는 처음 컴퓨터라는 물체를 접한다.
이름하여 대우 386DX 아버지가 가져오셨단다.
"너도 이제 컴퓨터를 배워봐라"
컴퓨터를 주신 당시 아버지 회사 아저씨가 허허허허 하면서 우리맥콜이 컴퓨터박사 되렴 하고
멋지게 전원을 넣는 그순간.
컴퓨터 본체 전소 사인은 110v짜리 코드를 220짜리 콘센트에 꼽아버린 것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왔다갔다 함. 그리고 이 시기 우리집에도 119가 오는구나 하고 깨달음
1997년 어느날
컴퓨터따위는 사치일뿐
그날의 아픈 기억이 잊혀진지도 3년
여전히 친구집에 있는 286컴퓨터로 하드볼을 하거나 질의 모험, 브루스 브라더스 따위를 즐기며
오락실을 집보다 더 많이 출입하고 엄마지갑이 곧 내 지갑이니 마음껏 뒤져라 하다가 뒤지게 쳐맞던
나날을 보내던 그때.
아버지께서 내인생의 머스트해브라고 호언장담했던 그 물건을 들여온 그날
매직스테이션 M510, 15인치 모니터 풀세트.
인텔 펜티엄 166mhz, 그것도 mmx가 아닌 그것. 메모리는 무려 EDOD-16MB RAM, 하드디스크 2기가
컬쳐쇼크!!! 시디롬도 장착이 되어 있다!
옆집 아저씨가 컴퓨터박사-_-라고 떠들어대던 옆집아줌마의 오지랖이 아저씨를 우리집으로 끌어들여
컴퓨터를 처음 산 우리집은 이웃들과의 잔치로 아수라장이 됨
윈도우 95를 셋팅하자 그 맑고고운 소리가 온 거실에 울려퍼지니 그자리에 있던 모든이들이 감탄을 하며
"역시 최신컴퓨터는 뭐가 달라도 달라"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어른들과 "오빠 이거 뭐야?" 라고 묻는
여동생. 이제 나도 pc통신에 접속해서 atdt01411과 함께 bob를 쳐주리라 꼭 최진실 사진을 다운받으리라
마음먹었으나 현실은 pc통신따위 아웃오브 안중.
컴퓨터에는 매직월드라는 부가 프로그램이 깔려있었는데, 이게 지금 생각해보면 윈7 가젯과 비슷한
개념의 프로그램이라서, 한번 클릭하면 컴퓨터에 깔린 모든 프로그램들을 실행시킬 수 있다거나
컴퓨터 상태를 볼 수 있는(그래봤자 '지금 좋아요!' '너무 오래했어요!' 따위의 애니모션만 나왔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컴퓨터가 생기자 디스켓을 가져와 성당 자료를 봐달라고 하거나 운세정보-_-같은걸
켜고 오늘 운세는 어떨까 하고 보는 엄마. 학교숙제를 당시 포함된 백과사전에서 찾아 하는 동생.
그리고 게임만 죽어라고 하는 나 -_- 우리가족은 드디어 최첨단 21세기에 진입했다며 매우 좋아했다.
밤 열시가 넘어서도 나는 열심히 브루스 브라더스를 하다가 아버지한테 걸려 컴퓨터가 장농에 쳐박히는
일도 겪었고, 컴퓨터를 구입한지 4년뒤에는 그렇게 염원하던 인터넷도 달고 그렇게 7년가까이를
나와 함께 해주던 컴퓨터는 다음 주자가 우리집에 들어옴과 동시에 저멀리 사라졌다.
7년간 펜티엄을 만지던 내가 펜티엄4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 듯 했다.
일단 기본사양으로 윈도우 xp가 깔린것도 그랬지만 OpenGL의 개념을 이해하고 둠 런쳐를 설치하기 위해
인터넷을 밤새 돌아다닌다거나 세상에는 voodoo3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그래픽카드가 존재했구나
하고 느낀것도 그랬다. 나는 더이상 브루스 브라더스 따위의 게임을 하지 않았다. 대신 프린터가 생겨
학교숙제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한다거나 입시정보따위를 알아보곤 했다. 아버지는 인터넷 고스돕을
치기 시작했고 동생은 여기저기서 쿠키샵이나 심즈 따위의 게임을 가져와 깔아놓는다거나 했다.
엄마는 더이상 컴퓨터에 적응하지 못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불평하고 인터넷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 만큼의 편리함과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컴퓨터는 아버지와 나, 동생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로부터 또 3년이 지난 뒤 난 군에 끌-_-려 갔다. 백일휴가를 지나 일병정기휴가를 나왔을 때
우연찮게 당첨된 로또 3등의 위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아버지는 컴퓨터를 하나 사자 하셨고,
근 4년을 넘게 우리집을 지켜주던 또 하나의 컴퓨터가 사라지고 나는 프레스캇을 기반으로 한 PC를
조립했다. 지금생각해보면 미친짓이었지. 듀얼코어가 흥했던 그때 어쩌자고 하이퍼스레딩따위에 혹해서
그딴 시피유를 기반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쩄든 하루동안 쇼핑하고 다음날부터 가동을 시작한
그 컴퓨터는 내가 전역하자마자 동생방에서 드라마나 보는 pc로 전락했다.
군생활 내내 쓸거 쓰고 절약한 돈과 함께 전역하자마자 구한 직장에서 몇개월간 돈을 모아 나는
현재 PC의 근간이 되는 E7200 기반의 시스템을 하나 조립하게 되었다. 원래 내가 일하던 곳이
컴퓨터 조립매장이라 pc구매의사를 밝히고 견적서 하나를 팀장님이 작성해줬는데, 일하는 틈틈히
조립해 퇴근할때는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팀장님 저 다른거 쓰면 안되나요"
"7200써. 제일좋아. 메모리는 1기가... 아니 2기가로 하자 그래픽카드는 86gt정도면 되겠지?"
"팀장님 저 케이스는요?"
"뒤에 굴러다니는거 하나 깨끗이 해놔 상품가져오면 죽여버린다"
"아 케이스..."
"씨발 컴퓨터 케이스가 성능 올려주냐? 조용히 안하면 박스에 쑤셔넣는다"
"-_-"
그렇게 맞춘 컴퓨터가 4년뒤에는 어떻게 변할 지 아무도 몰랐지만(심지어 나도 -__-) 어쨌든 그때
팀장님이 7200을 선택해 준 것은 선견지명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도 그 컴퓨터를 쓰고 있다. 몇년전에 나오긴 했지만 775 울프데일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고
얼마전에 업어온 P5KPL과 1년전에 용산 어디서 구입한 이엠텍 9800gtx, 랩터 500w 파워와 4기가의
메모리는 아직도 현역 쌈싸다구 때릴만큼 좋은 성능을 내주고 있다.
어쨌든 길게 쓰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예전에 날 설레게 했던 브루스 브라더스를
하던 고사리같은 손으로 이제는 와우를 하고 있다. 그 예전에 그 아저씨가 했던 말처럼 컴퓨터박사가
되라는 말은, 내가 박사학위가 없어서-_-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근 10년전 인터넷을 처음 깔았을 때
온라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그들의 인생과 내 인생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 뒤로는 더이상 그만큼의 유대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과거의 감상이라고 하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보다 사람들은 컴퓨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어도
예전과 같은 설레임을 갖지는 않는 것 같다. 컴퓨터 한대가 생겨 온 이웃이 잔치를 벌였던 그때를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마음이 초라해진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왔던 모든 컴퓨터를 사랑했다.
실제로 나는 그들이 내 손을 떠나 고물처리장이나 다른이의 손에 넘겨지던 날 잘가라고 인사를 해줬다.
그동안 고마웠으니 다음에 어쩌면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그때가 되면 조금 감상적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우리집의 그녀석을 사랑해줘야겠다.
그렇게 사랑해주다가 때가 되어 예전의 그친구들과 같은 운명을 가지게 될 때면 나는 또 잘가라고
인사해주겠지. 그런 생각을 해보며 나는 오늘 봄비와 함께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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