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도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삶이다..
간신히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나는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매일아침 출근시간...
만원 지하철을 타기위해 바삐움직이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많은 업무에 치여산다. 쫓기듯 때늦은 점심을 먹고, 퇴근시간을 훨씬 넘은 시간까지 부장의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선 녹초가된 몸으로 소주를 들이키다 잠이 든다.
어디에도 나는 없는것 같다....
그저 오늘은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를.. 점심시간전에 회의가 끝나기를...
오늘은 부장새끼가 일찍 집에 가기를 바라는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분명히 살고는 있는데 나는 어디에도 없다..
편두통이 또 심해진다...머리가 너무 아프다....
아...
하필 이럴때 소주도 다 떨어졌다.
정말이지 난 재수없는 놈이다.....
집앞 편의점에서 소주와 라면, 참치캔을 샀다.
집에 가는데 유리에 비친 내모습이 보인다.
회색 추리닝에 손에는 검은봉지와 슬리퍼...
무엇보다 하얗고 앙상한 내 몰골...
깊은 한숨이 나왔다.
혼자 밥먹기 싫다....
핸드폰을 뒤져 친구 몇 놈에게 전화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집밖엔 아무데도 갈곳이 없다니..마치 감옥처럼 느껴진다.
집앞 골목으로 들어서자 평소에는 눈에 안뛰던 노래방이 들어왔다.
여기 노래방이 있었나...
갑자기 낯선 기분든다...
예전에 혼자 노래방에 갔었다던 친구녀석이 생각났다.
할짓이 그렇게 없냐며 타박했었는데...
나도 집에 가기싫은데 한번 가볼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딸랑~ 하는 소리와함께 주인아주머니가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아...아닙니다....죄...죄송합니다..."
당황하며 황급히 문을 닫아버리고 나와 맞은편 피씨방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피씨방 한켠 의자에 앉아 몇명이냐는 노래방 아주머니의 뻔한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것을 자책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나도 모르게 친구녀석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피씨방 알바와 눈이 마주쳤다.
알바의 쏘아보는 눈이 날 비난하는듯 했다.
또나갈순없다...
한시간만 있다 가자...
난 다른사람과 거리를 두고 앉아 컴퓨터를켜고 포탈에서 뉴스거리를 뒤적였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뉴스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빨리 한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그냥 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갑자기 옆자리 의자가 젖혀지더니
뛰어온듯 숨을 헐떡이는 한 남자가 왔다.
그는 컴퓨터 파워를 킴과 동시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윈도우가 실행되자마자 헤드셋을 키고 게임을 실행하더니 게임속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과 손은 게임속 케릭터를 움직이고 있지만 입으로는 직장, 거래처, 저녁메뉴부터 하다못해 여자친구 얘기까지 모든 얘기를 하고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눈은 포털 뉴스기사를 향해있지만 이미 내 귀와 머리속은 온통 그남자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로 가득찼다.
저 남자는 도대체 뭐하는 것일까?
게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의 모습은 너무 즐거워 보인다.
저 남자는 자신의 모든 하루일과 고민얘기까지 거리낌없이 털어놓는듯 했다.
게임도 재밌어보이고 얘기도 재밌게하고 저게뭘까 궁금했다.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무슨 게임 하시는거예요? 재밌어 보이는데..."
"아! 이거요? 리니지예요. 들어보셨죠?"
"아니요. 게임은 해본적 없는데...재미있나요?"
"아... 네... 해보고 싶으시면 가르쳐드릴순 있는데 왠만하면 하지마세요. '폐인'소리 들어요."
"가르쳐 주세요. 해보고 싶네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평소에 나였다면 낯선이에게 말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더군다나 게임이라니...
회사밖에 모르던 내 인생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의 이름은 결이다. 3살이나 많은 나에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살갑게 대했다. 나는 나를위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생각에 약간 설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전날 4시간 밖에 못잤지만 오늘 클래스를 정하고 케릭터를 만들기로 해서 지하철안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본능적으로 지하철을 내리고 나서야 알차렸다.
매일 땀을 뻘뻘흘리며 몇정거장 남았는지 정거장마다 세어보기 바빴던 출근길이 오늘은 언제 탔는지도 내렸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내가 원해서 무언가에 집중해본게 너무 오랜만이다...
반가웠다...
퇴근후 결이를 다시 만났다. 저녁에 결이를 만나기 위해 난 회사업무를 초집중해서 처리하고 부장이 퇴근하자마자 바로 샌드위치를 사들고 피씨방으로 향했다.
"형 케릭터 정하셨어요?"
"응. 난 법사가 좋은것 같아. 내 성격하고도 맞는것 같고..."
"어제 설명드렸다시피 법사가 처음엔 키우기 힘든 케릭터인데 나중에 정말 재밌어 지실거예요."
"그냥 해보는거지뭐..."
사실 케릭터 만드는데 5분도 안걸린다. 하지만 나는 게임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에 이해가 느렸고 시간도 오래걸렸다. 결이는 이런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었다.
법사케릭을 만들고 마법을 마구 쏘다보니 레벨이 15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결이가 있는 혈맹에 가입하게되었다.
결이네 혈맹은 25명정도 있는 친목위주의 중립혈맹이다. 중립혈맹은 전투를 하지않기 때문에 사냥을 하면서 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간단히 혈원소개가 이어졌다. 나이어린친구들도 있지만 30대후반 40대초반 형님 누나들도 많았다. 이어서 나에대한 질문공세가 시작됐다.
이름, 지역, 나이, 직업, 결혼여부, 여자친구 있는지, 회사 개인적인 질문들까지...
옆에서 결이는 형 진짜 잘생겼다며 너스레를 떨기까지 했다.
낯선이들과 헤드셋으로 대화하는것이 너무 신기하고 나에게 질문이 집중되니 정신이 없었다.
한참 진땀흘리며 난감해 하고있을때 어떤 여자가 톡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해온이 왔어요"
"오늘 새로오신분 있다고 들었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네...피동건 이라고 합니다."
"ㅎㅎㅎㅎ 긴장푸시고 말놓세요 저 결이랑 동갑이예요."
"오빠 케릭아이디가 '초보예요'니까 초보오빠라고 부를께요ㅎㅎㅎ"
초보오빠라니... 나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옆동네 산다고 한다. 몇년전 외국에서 유학생활할때 친구한테 리니지를 배웠고 지금까지 혈원들이 좋아서 계속 한다고 했다.
몇일 혈원들과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45렙이 되었다.
회사에서 틈틈히 맵이나 아이템, 몬스터를 검색하는게 어느새 하루일과가 됐고,
퇴근을 일찍하려면 업무를 빨리 끝내야하니 업무처리 시간도 확실히 전보다 줄었다.
요새는 가끔 부장보다 빨리 퇴근할때도 있다.
혈원들과 대화하면서 파티사냥도하고 인던도한다.
해온이가 요정이다보니 상아탑같은 곳에 사냥갈땐 같이 가자고 할때가 많다.
해온이와 사냥할때는 그녀가 하자는데로 다 따라준다.
다른여자혈원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말투는 귀기울이게 된다. 나말고도 혈원 다른 모든 남자들이 그녀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는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수있다.
매일 그녀와 여기저기 사냥터를 다니며 그녀가 점심엔 뭘먹었는지 누굴만났는지, 그녀의 친구는 어떤 성격인지, 직장 상사는 얼마나 그녀를 짜증나게 만드는지 들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회사 부장얘기에 나쁜부장새끼라며 욕을 할땐 나도 모르게 그녀가 너무 귀여워 크게 웃었다.
난 그렇게 얼굴도 본적없는 그녀에게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무렵 결이가 직장때문에 평택으로 이사를가고 나는 굳이 피씨방에 갈 필요가 없어져서 컴퓨터를 한대 사서 집에서 게임하기 시작했다.
유료게임인것도 몰랐던 터에 한달 정액결제를하기위에 홈페이지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게임사에서 파는 아이템들이 참 많았다.
일단 아이템들을 보다보니 처음 시작할때 결이가 줬던 6검에 4~5셋만 있는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잘 아는 결이와 전화로 상의를 했다.
"결아 홈페이지에 아이템팔던데 인형같은거...나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템 업그레이드 하고싶은데..."
"지금 아이템으로도 충분해요. 법사는 마법 몇가지랑 기본아이템만으로도 재밌게 노실수 있어요."
"응 근데 다른애들이 인형같은거 달고 다니던데 엠탐도 난 너무 오래걸리고...다른 사람들이 기다릴때가 많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네. 그럼 홈페이지 아이템 필요없고요. 돈 보내주시면 형케릭에 맞춰서 아이템 제가 사드릴게요. 사기꾼이 많아서 조심하셔야해요."
그렇게 난 처음으로 50만원을 게임에 썼고 결이는 나중에 팔수있으니 필요없을때 팔아주겠다고 했다.
난 결이의 도움으로 아템 몇개를 바꾸고 법사마법을 추가로 배웠다.
해온이와도 몇달 지나고나니 점점 더 친해져 낮에 회사에서도 카톡을 보내고 근무시간에 가끔 해온이의 카톡을 보며 가끔 킥킥 거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주말저녁이었다.
해온이에게서 우리동네라며 밥사달라고 카톡이 왔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난 모태쏠로다...
남중 남고에 공대까지...
졸업후엔 매일야근에 여자만날 기회도 생각도 못했다.
해온이와 그동안 게임하면서 좋긴했지만 만날꺼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기회가 생기다니...
집이라 꼴이 말이 아니라고 말을 했지만 해온이는 무슨 상관이냐며 배고파 죽을것 같으니 밥이나 먹자고 했다.
난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없이 난 해온이를 만나러 나갔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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