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숙군 작업은 그야말로 김영삼스럽다고 할까, 쿠데타 가능성 그런거 상관없이 앞뒤 안가리고 잘라 버리는 무대포스러운 위엄을 과시했다.
1993년 당시 김영삼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하나회 출신인 서남수 기무사령관을 보고 "앞으로 대통령과 독대하지 말고 국방장관을 통해 보고하라" 라고 말을 하는 한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국군의 명예외 영광을 되찾아주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말을 통해 에둘러서 군을 엎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영삼이 본격적인 숙청에 들어간 건 취임 11일 째인 1993년 3월 8일. 이 순간까지 군 수뇌부는 물론 청와대 비서진들까지도 김영삼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는데, 김영삼은 몇몇 최측근들과 일을 의논하다 이날 아침 국방부장관인 권영해를 불러서 독대를 했다.
"장군들은 정권이 바뀌면 사표를 내지 않느냐" 라고 일단 김영삼이 운을 뜨자 국방부 장관인 권영해는 "대통령이 새로 취임한다고 군인들이 사표를 내지는 않는다" 라고 답했고, 김영삼이 "그럼 군 장성들을 언제 바꿀 수 있느냐" 고 말하자 권영해는 "대통령이 통수권을 행사한다면 언제든 가능하다" 라고 했으며, 그러자 김영삼은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로 바꾼다고 선언해 버렸다. 장관이 극비리에 육군본부 기무사 수방사 특전사 등의 동향을 체크하도록 지시를 내린 상황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김영삼과 권영해가 수뇌부에 대한 인선에 들어갔고, 비 하나회 출신인 김동진과 김도윤으로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교체해 버렸다. 여기까지 과정이 단 네 시간.
여기에 이르러서도 이 일이 군 수뇌부 교체 정도가 하나회 숙청 과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김영삼 자신과 몇몇 측근에 불과했다.
1993년 4월 1일에는 수방사와 특전사의 사령관까지 기습적으로 교체했고, 이런 교체 의도를 권영해 국방부 장관이 알게 된 건 겨우 발표 하루전이었을 정도로 이러한 진행은 김영삼과 측근들에 의해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단위로 각군 사령관과 사단장급까지 교체하는 일이 4월 동안 벌어졌으며, 이러한 기습적인 교체로 군 주요 보직에서 하나회 인사들이 제거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이 이어지는 중에 당시 대령이던 백승도(하나회 회원은 아니었다)가 하나회 명단을 군인 아파트에 뿌리는 일을 벌였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하나회의 깊은 뿌리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하나회 명단 살포 건으로 인해 하나회 숙청이 시작되었다는 말들이 간혹 있으나, 앞선 내용에 있듯이 하나회에 대한 숙청은 이미 진행중이었다.
이러한 수뇌부에 대한 1차 숙청 과정 이후 하나회 출신이 군 내 주요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하나회 회원이던 이충석(당시 소장)이 술자리에서 정부가 군을 막 대한다며 술잔을 던지며 소동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하나회 숙청에 대한 저항이라고 간주한 대통령과 주요 지도부에 의해 하나회 출신의 주요 장성들은 아예 조기전역까지 당하며 군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그후에도 하나회 출신은 군 승진인사에서 계속 배격당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나회 숙청 과정에서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이 되고 국방부 장관까지도 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훗날 인터뷰에서 "내가 하나회를 해체하지 않았다면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나회 자체가 군대를 실제로 동원할수 있는 군 장성들의 사조직이었던 만큼 그들이 해체에 반발하여 쿠테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하나회 해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애써 이루어낸 민주화가 도로아미타불이 될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기도 했다. 실제로 하나회 출신 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상황때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 지도부가 쿠데타 상황까지 경계하며 보름동안 철야 대비를 하기도 했고, 실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숙청 과정에서 쿠데타 설이 돌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회를 숙청하고 빈자리에 주요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비밀 유지를 위해 김영삼은 국방부나 군 관련 인물을 배제한 채 최측근들하고만 일을 논의했는데, 이런 인선 과정에서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후 김현철은 권력 실세로 우뚝 섰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권력 실세가 된 김현철은 이후 부패권력의 상징이 되어 몰락하고 만다.
좌우지간 이 일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더불어 김영삼 대통령의 주요 업적중 하나다. 이때 하나회와 같은 군내 사조직을 없애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처럼 군부가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
출처: 엔하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