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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freeboard_345159
    작성자 : 김희성
    추천 : 5
    조회수 : 229
    IP : 210.97.***.216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09/06/15 19:06:36
    http://todayhumor.com/?freeboard_345159 모바일
    [소설] 라 비 앙 로즈 2화
    * 아직까지는 악플이 달리지 않고 있어요. 안도감이 담긴 한 숨을 돌리고 2화 올립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LA VIE EN ROSE[라 비 앙 로즈]
    Written by. 김희성



    2화.

     해준의 통화 연결음은 파가니니의 라캄파넬라.
    초반을 미적지근하게 끌어올리는 식의 패턴은 통 좋아하질 않는다. 윤희도, 해준도. 처음 순간부터 무언가 펑 하고 터뜨려 주며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음악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영화도 소설도 마찬가지. 그것은 둘 모두 초반 집중력이 최후까지 좌우하기 때문인데 초반이 미적지근 하다던가 그닥 이렇다할 충격이 없다면 그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평가를 불문하고 삼분의 일도 채 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채 한 몸에 받았던 관심과 기대를 빼앗겨 전락하기 십상이다.
     현의 미세한 떨림, 현의 위를 활이 어떤식으로 노니는지에 까지를 잠시 마음도 가다듬을겸 눈을 가만히 감고 집중했다. 이럴때엔 해준과 취향이 비슷한 점에 대해 윤희는 감사함을 느낀다. 한음 한음에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가슴에 아로 새기듯, 천천히 느긋한 마음으로 집중을 하고 있으니 언제 심장이 말을 듣지 않고 날뛰었냐는 듯 조금씩 안정과 함께 제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 이대로 해준이 전화를 받으면 된다. 딱딱한 여성의 기계음이 아니라, 언제나와 같이 응, 윤희야. 하고 이제는 익숙해진 해준의 음성과 말투가 그녀를 반겨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 해준이 전화를 받아 로우톤의 감기는 듯한 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렇기만 하다면 윤희는 어떠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응, 윤희야.]

     그 순간 모든 긴장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윤희는 하늘위를 걷는듯한 망상에 사로잡혔다. 부처도 예수도 마리아도 믿지 않는 그녀가 처음으로, 신은 내 편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했다. 해준의 목소리에 울컥, 울음이 비집고 나올 것도 같았지만 간신히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해준아, 오늘 저녁 시간 되니? 주말에는 외출을 삼가던 그녀가 먼저 청하는 저녁약속에 적잖이 당황한 듯, 해준은 대답대신 무슨일 있어? 하고 되물어왔다. 윤희는 적당히 웃어 넘겼고 해준은 당혹감이 묻어 있는 목소리로 늘 보던 거기에서 일곱시. 괜찮아? 했다. 응 괜찮아 그때 봐. 대답을 끝으로 통화를 끝냄과 동시에 윤희는 긴장으로 인해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을 쫙 펴 앉아 있던 정류장 벤치의 가로로 된 끄트머리 부분을 꽉 움켜쥐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 무엇도 저의 일상을 위태롭게 할 것은 없을거라 자신했다.





     퇴근 시간의 강남역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은 인파속에 윤희는 약속시간이 다가올 수록 다시 급하게 뛰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그녀의 앞을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확인한다. 그리고 일곱시 정각. 그 수 많은 인파 속에 해준이 있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어.”

     해준은 시간 약속에 결코 늦는 법이 없다. 더군다나 홍윤희, 그녀와의 약속에 있어서는 해준 자신에게 지각이란 물론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 남자는 아마 전철이 불통이 되면 전철을 두 팔로 떠받친 채 뛰어서라도, 러시아워로 인해 도로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다면 도로 중앙에 그가 그토록 아끼는 애마인 Z4를 내팽개 치고라도 정해진 약속 시간과 정해진 약속 장소에 칼같이 나타날 남자라고 윤희는 우스개 생각을 했다.
     해준은 그런 남자다.
    이성에 눈을 뜨고 설레임을 깨닫고 누군가에게 가슴이 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그 무렵부터 이미 윤희는 해준에게 [세계] 그 자체였다. 해준에게 윤희는 창조주였으며, 자신은 윤희로부터 빚어진 창조물이라 여기며 그렇게 윤희를 온 마음으로, 온 몸으로 사랑해왔다. 해준은 윤희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듯, 윤희를 사랑하는 것은 이미 저가 태어날 적부터 저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는 듯, 그렇게 윤희를 사랑했다. 정작 윤희는 그런 해준을 오랜시간 함께 자라왔기에 남자로 느낄 수 없고 연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말하며, 그를 외면한 채 다른 누군가들과 몇 번인가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해준은 그것마저도 이해하고 포용하며 윤희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토록 헌신적이고 순정적인 해준의 마음을 하늘이 헤아려서 였을까. 그들이 스물 두 살이 되던 해에, 윤희는 해준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런것이 어느새 십 년을 바라보고 있다.
     햇수를 헤아리다 윤희는 문득, 종전에 미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고 마음 한 구석에 잠재워 두었던 의혹이 다시금 슬금 슬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에게 나는 [세계]인 채로, [창조주]인 채로. 그리고 그는 그것을 넘어 주어진 명이 다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사랑할 운명을 지닌채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윤희는 목끝까지 차오르는 의혹들을 억누르고서 만나지 못했던 약 이틀간의 소소한 일상을 늘어 놓는 그의 말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며 마주잡은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오늘, 혹시 별다른 일 있어?”

     아직 저녁 식사 전이었던 터라 대학시절부터 종종 들렀던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마주앉아 느긋이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윤희는 해준에게 다음 일정에 관해 물었다.

     “아니, 아직 정해놓은 건 없는데… 왜?”
     “꼭 이유가 필요한가아? 오랜만에 이렇게 느긋이 마주보고 앉아 있으니까 옛날 생각도 나구… 좀 더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해서 말야… 요 몇 해 동안, 너도 나도 많이 바빠서 그럴 틈이 없었잖아… 뭐, 너 바쁘면 어쩔 수 없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윤희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해준은 졸업 전부터 취직이 결정되어 있었지만 윤희는 취직은커녕 자신이 어떤 길을 걷고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좀 체 방향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방향을 잡지 못했다 라기 보다 그 길을 가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관한 잣대들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윤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잘 알았고, 그 일을 하려면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도 그녀는 물론 알고 있었지만 옳고 그름의 흑백논리에 발목을 잡힌 그녀는 좀처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고 그와 동시에 글을 쓰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 혹은 교수이자, 여류 작가가 되어 그녀의 글에 대한 소신을, 같은 길을 걸어올 아이들에게 제시해 주고 싶었으며 그녀의 경험과 연륜을 토대로 대중이 공감할 수 있고 그 공감으로부터 치유와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글을 써 절망에 잠식되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만 한줄기 빛이라도 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욕심이었다. 그렇지만 그녀 자신조차 자신이 그 길을 올바르게 걸을 수 있을것이며, 해낼 수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이 좀처럼 서질 않았고 그럼에 확신조차 명확히 가지지 못하는 자신이 그 길을 우연일지라도 얼토당토 않게 걷게 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스스로 고립되어 갔고 외부 누구와도 일체 접촉을 삼갔다. 그것은 해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윤희는 프라이드가 높은 여자였고, 저 자신의 일은 오로지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일 뿐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일은 저의 프라이드와 소신에 흠집을 내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옳은 일이었다. 설령 해준이 느끼기에는 그른 일이라 하더라도.

     “아, 아니… 괜찮아. 이 근처에 얼마전 알게된 칵테일 바가 있는데 칵테일 맛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여러모로 취향에 맞더라고… 그렇잖아도, 한번쯤 함께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해준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윤희는 그런 해준의 반응에 그럴만도 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오랜만에 둘이서 한잔 할까?”
     “나야 환영이지.”

     그리고 그녀는 약 칠년 만에 지금 자리에 서게 될 수 있었다. 아주 느린 발걸음이지만 그녀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곧 저의 소신이 담긴 그러나 허황된 꿈으로만 생각해 왔던 일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렇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던 간에, 그간 윤희가 해준에게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럼으로써 단 한번도 서로에게 [거리감]이란 단어를 떠올린 적도 느낀 적도 없던 두 사람이 최초로, 소원해 진 것 역시 물론이었다. 그렇기에 해준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그것은 조금 복잡한 감정으로써 당황스럽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환희도 조금은 서려있었다. 언제나 억지를 써가며 겨우 얼굴을 마주하고 그나마도 채 얼마 되도 않는 시간으로 만족하고 넘어가야 했던 해준이었기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갈까?”
     “오케이!”

     어느새 디저트 까지 말끔히 비운 윤희는, 조금 명쾌하게 말했고 해준역시 별다른 의의없이 윤희의 말에 수긍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윤희는, 익숙한 모습으로 검은 모직 자켓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카운터로 향하는 해준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쥐며, 오늘은 내가 낼게. 하며 웃었다. 해준은 조금 고집을 부리다 이내 윤희가 바라는대로 하도록 두었다. 레스토랑 출입문을 나서며 윤희는 조금은 수줍게 해준의 손을 슬쩍 잡았다. 그리고는 쑥쓰러운 듯 싱긋 웃었고, 그런 윤희를 바라보던 해준은 어쩐지 조금 경직된 표정이었지만 곧 윤희를 따라 웃어주었다. 아, 이러고 있으니 대학시절 생각난다. 우리 참 이곳저곳 많이도 다녔는데. 윤희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준은 그런 윤희를 가만히 바라보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조금 달싹였지만 이내 그만 두고 단지, 윤희의 손을 마주잡은 왼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윤희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어느새 짙게 물이 들어 있었고, 어쩐지 비가 조금 올 것 같았다.
    김희성의 꼬릿말입니다
    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하고 버려진 여자 홍윤희.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절대적인 사랑을 버린 남자 차해준.
    이제껏 본 적도 내것이 될 수도 없었던 헌신적인 순정을 욕심낸 여자 윤소예.
    믿음을 잃어 추락한 여자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남자 윤호진.

     

    LA VIE EN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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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5 20:33:56  118.44.***.88  찌질학박사
    [2] 2009/06/15 20:36:04  114.129.***.7  그날밤의흥분
    [3] 2009/06/16 01:13:51  121.160.***.101  
    [4] 2009/06/16 07:10:41  112.1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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