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변호사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광화문과 국회에서 단식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지 20일째 되던 날이다. 농성장을 돌던 박주민 변호사는 유가족이 있는 천막을 발견하자 메고 있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를 붙잡아 대뜸 명함을 내밀었다.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인터뷰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여러 달이 지났지만, 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법은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여당과 야당의 '세월호 특별법'이 아니라, 가족대책위가 원하는 '4·16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아래 4·16 특별법)을 알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아래 가족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진행되었다. 원래는 오전에 계획된 인터뷰 일정이었지만, 교황의 방한으로 하루 종일 가족대책위의 회의가 이어졌다. 인터뷰 시간이 세 차례나 미뤄진 끝에야 박주민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계속된 회의에 저녁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식 있는 변호사는 기본권이나 정의라는 단어에 민감- 현재 세월호 특별법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당의 법안도 있고, 야당의 법안도 있다. 가족대책위, 대한변호사협회(아래 대한변협) 그리고 시민단체가 함께 만든 4·16 특별법도 있다. 4·16 특별법처럼 여러 단체가 모여 법안을 만든 전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대한변협이 시민사회들과 함께 법안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대한변협은 법률에 의해 인정된 변호사 직무단체이다. 굉장한 대표성을 가지고, 특검추천 권한이나 여러 기관에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공식적 권한을 가진다. 대한민국의 모든 변호사들을 포섭하는 단체라서 시민단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해본 적도 없는 단체다. 그런데 이번에 대한변협이 4·16 참사에 대한 법률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결정해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법률적인 대리인이 되었다. 가족대책위는 대한변협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체를 통해 정보를 모으고 도움을 받아 최선의 법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나 참여연대 등과 함께, 범국민대책회의를 수립하여 법안을 만들게 되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대한변협은 잘 움직이지 않는 단체인데, 어떻게 나서게 된 것인가? "가족들을 대리하지 않는가. 가족들의 의사가 있으면 대리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대한변협에서 오신 분들도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고, 또 가족들의 뜻도 굉장히 강력하다. 예를 들어 진도 VTS 근무태만, 제주 VTS 5분간 교신기록 삭제와 같은 문제들에 있어 모두 대한변협 변호사들이 증거보전을 했다. 국정원 지적사항도 마찬가지다. 법이라는 것이 원래 우리 사회의 룰이다 보니, 정의나 기본권 등에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상식 있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기본권이나 정의라는 단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족대책위와 대한변협, 시민단체가 만든 4·16 특별법의 내용을 보면 특별위원회(아래 특위)의 권한이나 활동 시한을 다른 법안에 비해서 가장 오래 주고 있다. 반면 여당이나 야당이 내놓았던 법안은 그렇지 않다. 며칠 전 이루어진 여야의 합의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유독 특위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거나 긴 활동기간을 보장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가족대책위나 법안을 만드는데 참여한 단체들은 4·16 참사가 단순히 한 사람, 한 기관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굉장히 많은 기관과 사람들, 회사가 얽혀서 이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고, 관련된 제도나 법령들도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대책위가 항상 주장해온 것은 (4·16 특별법 제정을 통해) 4·16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반의 안전시스템을 점검하여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짧은 기간 안에는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긴 활동 기간을 준 것이다. 또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에 관해) 관여를 안 한 곳이 없을 것 같다'고 의심한다. 이처럼 가족대책위는 청와대나 국정원과 같은 권력의 핵심도 수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위의) 강력한 권한을 원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대책위가 원하는 것- 우리나라는 기소독점주의에 따라 검사만 기소를 할 수 있다. 여당도 "일반인에게 어떻게 기소권을 주냐"고 말한다. 특위에 기소권을 부여한다면 어떤 형태로 부여하게 될 지 궁금하다. "특위 자체에 기소권을 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진상규명소위원회의 상임위원 한명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법령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법령을 보면 오히려 이해가 더 쉽다. 이 상임위원은 자격요건이 있다. 10년 이상의 변호사, 판사, 또는 검사의 직에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 새누리당은 '일반인'에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사법체계를 흔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11번이나 특별검사 제도를 시행했다. "어떻게 일반인에게 검사의 권한을 주냐?"고 하면 그동안 11번이나 특검이 있었다고 반박할 수 있다.다음으로 수사권에는 특별사법경찰관(아래 특사경)의 수사권이 있고, 검사의 수사권이 있다. 이에 따르면 수사권이 있는 경찰도 항상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은 특위에 특사경의 권한까지만 부여하자고 말해왔다. 가족대책위는 특위에게 수사권, 기소권, 조사권 모두 부여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새정치의 안 또한 사법체계를 흔든다고 말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이미 우리나라에 50개 이상의 기관이 특사경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가족대책위로 4·16 특별법을 만든 입장에서 7일 이루어진 여야의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영선 의원은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 추천 특위 위원이 한 명 더 늘어나면 표결 처리에서 이점이 있기 때문에 수사권보다 특위의 구성요건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조사권은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은 특검에 주겠다는 것이 새정치와 새누리당의 이번 합의 내용이다. 새정치는 7·30 재보선 선거 전에 특검을 야당이 추천하거나 특위에서 추천하고 특위의 의결구조에 유가족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여당은 현행특검법을 따르자고 말했다.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지금은 여당의 의견대로 가는 상황이다. 지금 국정조사로 밝혀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없다. 계좌를 추적할 수 있는가, 제출하지 않는 자료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가, 사람을 구속·체포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수사권이다. 수사 중에도 경찰은 영장을 청구할 권한이 없다. 검사가 청구하는 것이다. (야당이) 조사권만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번 합의에 대한 야당의 설명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인가."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대책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대책위는 조사권, 수사권, 기소권이 하나로 묶이길 원한다. 이번 합의에 따른다면 조사권을 가진 특위는 이른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검은 특검법에 따라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가족대책위는 이를 하나로 묶어 달라는 것이고, 적어도 이렇게 분리해 놓을 것이라면 특위가 특검에 영향을 준다거나, 적어도 가족들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피해자가 특검을 추천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냐" 혹은 "이것은 보복 아니냐"고 말한다. 검사는 원래 피해자를 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구이다."- 현재 가족대책위는 4·16 특별법안과 조금 차이가 나는 여야의 안으로 가더라도 수사권과 기소권만큼은 살리는 방향으로 타협하는 것인가."(법안에 대한) 협상 테이블에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앉아 있는가? 그렇지 않다. 가족은 그냥 농성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족들의 뜻에 따라서 진상규명을 위해 가장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검사가, 혹은 그런 사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아니니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는 것이 단식, 도보행진이고 국회에서 한 달 넘게 노숙하는 것이다. 농성이라도 하지 않으면 기존 제도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입법에 그만큼 국민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사실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검사가 탄생한다면 두려울 것이다. 자신에게 칼날을 겨눌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여야는) 늘 적당히 타협을 하고, 큰 틀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다. 가족들이 보기에 이 밀고 당기기는 국민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가족대책위의) 타협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지난 12일, 가족대책위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위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거나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독립적인 수사와 기소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에 버금가는 독립적인 수사와 기소 방안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 그런데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이야기만 계속해서는 여야가 받아들이지를 않으니, 가족대책위를 설득할 만한 그에 버금가는 것을 가져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여지를 열어 둔 것이다. 4·16 특별법을 따른다면 특위의 상임위원은 가족대책위의 추천에 따라 그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이 상임위원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이 부여된다. 가장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정치권이 두려워할 만한 사람을 추천할 것이다. 그런데 (여야는) 이 4·16 특별법의 방안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해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특위와 같이 중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고 말하는 이유가 여당이나 야당, 대통령 모두 수사나 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는 다 수사하고 도려내야 할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특검의 선출과정에 관여하고, 대통령이 관여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겠냐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4·16 특별법으로) 뽑힌 특검은 검찰도 수사할 것이다. 경찰도 수사하고."비상식을 상식으로, 거짓을 진실로- 여야 대표들이 13일 본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을 통과시키기로 했는데, 가족대책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가족대책위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합의를 막아내기는 했으나, 향후에 4·16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통해서 해나갈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사실은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하나하나 정해 놓고 행동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각오는 있다. 교황이 가고 나면 전단지를 5천만 장을 찍고, 이를 가지고 5천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겠단다. 만나서 (국민들의) 생각을 바꿔보겠다고 한다. 아까 말했듯이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실로 좀 바꾸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특별법도 통과되고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겠냐고 하신다.""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광화문 단식 농성 현장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쓰여 있는 문구다. 4·16 특별법은 결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침몰된 '진실'을 기억하고,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바라는 모두를 위한 법이다. 하지만 여야의 협상 테이블에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도, 국민들도 없었다. 그들'만'의 합의가 있던 지난 7일 이후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또 다시 아파야 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광화문 단식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한 달이 넘게 단식 농성을 하며 지키고 있는 곳이다. 이들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